'뜰 앞의 잣나무'라 한 뜻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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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잣나무'라 한 뜻은?

본문

질문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하고 말씀하셨다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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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에는 그렇게 물으면 ‘할!’하기도 하고 ‘부처가 어딨습니까?’하면 주장자로다 골통을 치고 또는 ‘부처님 법은 어떤 겁니까?’하면 손가락 하나를 들기도 하셨습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 없어 방편상 내리신 말들인데 그것이 전부 생사를 갈라내는,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바로 함이 없는 말씀을 모두 해 놓으셨거든요. 똥둑간에 가다가 부처가 무어냐고 물으면 ‘똥 친 막대기다’이렇게 대답을 하시고 뭐 말할 수 없이 일화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왜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죽였을까? 한마디 이르지 않는다고 죽였을까? 그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것이나 또 조주가 왜 머리 위에다 신발을 얹어 가지고 나갔을까 이런 등등 말입니다.

이 도리를 알면 그건 정말 부처 아닌 부처가 돼서, 그 마음이 일체 보살이 돼서 허공에 꽉 찰 겁니다, 아마. 그런데 왜 잣나무만 부처겠습니까? 전체 어느 거 하나 공안 아닌 게 없고 법안 아닌 게 없고, 부처님 아닌 게 없고, 생명 없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스승이고, 우리가 그네들의 스승이고 모두가 서로 서로의 스승입니다.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얕고 이런 게 없습니다. 단 하나 여러분이 이 도리를 몰라서 차원이 낮으면 낮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오니까 그건 낮은 중생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따라서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모습이, 행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만나는 것도 전부 거기에서 그 빛이 풍기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그러죠. “주인공에다가, 오직 한 군데다가 몰입을 해서 거기 놓아라. 잘된 거든 잘못된 거든 모든 거를 감사하게 놓고 또 거기에서만이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전부 놔라. 일거수일투족 다 놔라.”이랬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촛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촛불을 켜면 초는 닳습니다. 녹습니다. 그 녹는다는 그것이 바로 업 덩어리인 이 몸체 속에 들은 모든 인과성, 유전성, 업보성, 영계성, 또는 세균성, 다섯 가지의 문제를 다 몸으로 태우는 거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놓지 않으면 녹지를 않아요. 이건 절대로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해서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칼로 베어서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촛불을 켜놓을 때는 진짜 마음의 불을 켜서 내 몸과 같은 초가 다 녹게 되면 그게 어떻게 되죠? 불도 없고 초도 없죠? 그 도리를 알면 바로 깨우친 겁니다. 초도 없고 불도 없다, 그 가운데 뭐가 있느냐.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모두 난 것이, ‘이 육신을 가지고 나온 것이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니까 그대로 그 공이 화두니라.’한 겁니다. 내 육신 나온 것이 화두이자 공이고 공이자 화두니까, 지금 원형을 이루고 돌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과거심도 현재심으로 돌아오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그대로, 내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고정됨이 없이 공하였으니, 공에서 나오는 것을 화두로 삼고 그대로 공에다 일임해서 맡겨 놔라.’고 한 겁니다. 일일이 그것을 맡기다 보면 진실로 내 참나를 발견하고 찾는 데에 아주 지름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단이 나온다 할지라도 모든 것은 주인공에다가, 오직 한 군데 다가 몰입을 해서 거기 놓으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참뜻이라는 것은 부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체 내가 하는 거, 악을 썼다든가 화를 냈다든가 하는 것도, 내가 불자로서 이렇게 악을 쓰고 화를 내서 되겠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시죠? 그런데 화나는 것도 욕하는 것도 모두가 자기 마음의 주인이 한 겁니다. 돌아가는 전체가 마음의 주인이 한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나오지 않고 자기 나오기 이전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모두가 지금 마음의 주인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게 하고, 이리 다니고 저리 다니고, 이런 생각이 나고 저런 생각이 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즉 실상입니다. 비행기 프로펠라가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그렇게 돌아가니깐 어디에 붙을 자리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것도 붙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쉽고 간단하게, 모든 것을 일임해서 놔 버린다면, 그러면서 그대로 여여하게 생활을 하면서 돌아간다면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이 따로이 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것이 나의 실상을 말한 것임을 안다면 그대로 간단하게, 누구 말마따나 펄럭 하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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