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마음 어떻게 공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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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위없는 법에 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달마스님께서는 무심이 곧 견성이다. 견성이 성불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없다하니 이해가 잘 안됩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가르침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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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럼 그것을 바꿔서 이렇게 한번 얘기해 보죠. 세상에 쥘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을, 그리고 고정된 게 없는 마음을 어느 누가 거기 와서 붙을 자리가 있겠습니까? 감히 그 마음이 말입니다. 어느 것 하나 붙을 자리가 없는 자체가 시공을 초월했고, 고정됨이 없이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자체입니다. 금방 아버지가 됐다가 금방 또 “여보”하니깐 남편이 되고 이러듯이 그렇게 그냥 돌아갑니다. 그렇게 그냥 여여하게 돌아가요. 한 바다의 물이 지구를 끼고 돌아가듯이.
그렇듯 아무것도 붙을 게 없이 여여하게 돌아가는 마음인데도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마음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십시오. 꿈을 잘못 꾸어도‘아이고 이거 오늘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세상에 이 걱정 저 걱정 하다가 한 생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고 살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벌어서 먹고살랴, 다스리랴, 기르랴, 온통 야단법석인데 말입니다. 그렇듯 마음을 옹색하게 쓰고 화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람이 산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본래 여여한 마음을 가지고 걸림 없이 여여하게 쓰면서 어떠한 일이 내 앞에 닥치더라도 즉각즉각 대치하고 자유스럽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나가서 공부 안하고 온통 야단법석을 쳐도 마음이 아니고는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익 없는 일을 왜 합니까? 욕심이라고 하겠죠? 그러니까 몽땅 다 집어먹을 욕심을 부려라 이거예요. 그래서 몽땅 놔 버려라 이거예요. 내가 몽땅 버리지 않는다면 몽땅 얻을 수가 없어요. 그까짓 거 조그마한 거, 그런 거를 놓지 못해 가지고서는 큰 걸 잊어버리는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애당초에 그렇게 가르치신 겁니다. “너희들부터 먼저 알아라. 내 모습을 보고 믿지 말고 네 마음부터 깨달아 안다면 바로 네 마음이 내 마음을 알 수 있고, 내 마음을 너한테 줄 수도 있고 네 마음을 나한테 줄 수도 있느니라.”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첨단의 공부이면서 첨단을 넘고도 남음이 있는 공부입니다. 일하는 게 그대로 여러분의 공부 재료고 생활 자체가 그대로 재료예요. 여러분을 이끌고 가는 영원한 자기의 ‘자신’입니다. 그걸 자부처라고도 하고 불성이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공부란 자기 마음 세계부터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존재한다 안한다 할 것도 없이 그 도리를 알아서 그대로 여여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죽은 세상 산 세상도 다 한자리에 있어요. 천당 지옥도 이 한자리에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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