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욕과 불을 밝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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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가보면 아기 부처님께 관욕을 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연등에 불을 밝히는 의미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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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지극한 정성을 들이는데, 부처님께서는 과거 미래 현재를 한데 합쳐서 항상 그 날이 그 날, 오늘이 오늘, 영원히 인연의 줄을 끊지 않고 오시고 가심이 없이 항상 오고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습이 부처님 모습과 같다고 하는 겁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이 그냥 형식으로 부처님 몸에 물을 끼얹어서 씻어 봐도 그것은 자기 몸을 닦느니만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항시 자기를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모두가 있는 것이지 자기가 없다면 아예 없습니다. 요만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거를 잘 참작해서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한테 항상 말씀드리죠. 우리가 모두 공심으로 사니까 공식으로 인연돼서 돌아간다고요. 공식은 우리가 평소에 들이고 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들이고 내는 것을 누가 합니까? 여러분이 갖은 각색으로 마음을 쓰지만 하나입니다. 하나로 들이고 낸다 이겁니다. 그래서 공생으로 살더라도 공식으로 굴리고, 또는 공심으로 산다 하더라도 공식으로 인연이 되는 거고, 공체로 사니까 공식으로 드는 겁니다.
공식으로 들고나고 굴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둘로 보지 말고 꼭 그렇게 하라 하는 뜻이죠. 너와 내가 둘이 아닌 까닭에 네 몸을 깨끗이 씻으려면 내 몸을 씻어야 하느니라 했겠지마는 네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이 내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맑은 물이 있는데 저 맑은 물이 깨끗한 물이냐 더러운 물이냐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아주 옥수 같은 깨끗한 물인데, 그것도 깨끗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겠죠. 찰나찰나 바뀌니깐 말이에요. 금방 구정물이 들어올는지 금방 흙물이 될는지, 우리 살림살이가 금방 깨끗하다가도 금방 흙탕물이 되고 그렇기 때문이죠.
그리고 초파일이면 모두 등불을 켜고 가족들 이름을 써서 붙이고 정성을 들인다고 하는데 내 마음의 불을 켜고, 마음의 향을 사르고 마음의 떡을 할 수 있다면, 마음의 꽃을 향기로써 공심으로서 공용으로서 공생으로서 공체로서 공식화하면서 돌아갈 수 있게끔 공양을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 공부는 우주 천하가 다 먹고도 되 남는 공부며, 뇌성벽력이 치고 비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불은 영원하지마는 물질로 켜는 불은 바람만 불어도 금방 꺼지게 되고 타버립니다. 여러분이 영원히 금강과 같은 마음으로써 대성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도리를 밝히고 사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죠. 비바람이 치니까 등불이 다 꺼졌는데 한 여인의 불만 꺼지지 않고 밤새도록 켜져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한테 가르치기 위해서 얘기하신 겁니다. 마음의 불은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꺼지지 않습니다. 방편으로 켜 놓은 건 비바람이 치면 꺼지고 말지만 마음의 불은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그 뜻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각 사찰에서도 아기 부처를 물로 씻습니다. 미래에 깨닫는다고 해서 인정을 하고 그러는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문제란 말입니다. 생각이 문제라면 손짓을 안 해도 손짓이 저절로 닿고, 말을 안 해도 말이 저절로 닿고, 인연이 닿지 않아도 인연이 저절로 닿고 그래서 공덕이 되는 거죠.
예전에 산으로 다닐 때 얘기인데 그 날이 사월 파일이었던 모양이에요. 건너다 보니 등들을 여기저기 켜 놓아서 붉게 비추고 있는데, 그걸 보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었어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느냐는 얘기예요. 저기의 거리와 여기의 거리가 어떠며 너와 나 거리가 어떠냐 이거죠. 그러고 비가 쏟아지는데도 일체제불을 갖다 넣으니깐 내 중심은 꼼짝도 안 해요. 바로 내 꼬챙이 내가 끼니깐 그렇게 되는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대신 살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나 이외에 대신 불 켜 주는 사람도 없죠. 그래서 항상 제가 그러죠.
우리가 불 켜는 것만이 아니라 끄는 것도 켜는 것도 둘이 아니라구요. 만약에 촛불을 켰다가 끄게 되면 그 초는 남아서 있듯이 끄고 켜고 하는 것이 둘이 아니게 항상 같이 돌아가게끔 돼야 되겠죠. 이 도리가 상당히 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거같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복잡한 거 같이 생각이 드실 거예요. 그러나 복잡하지 않아요, 생활이니까. 생활을 하는 데 찰나찰나 내가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롭게 해야 되나 하는 것만 관하시면 되겠죠.
여러분 대신 이 세상에서 대신 살아 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부모자식지간이라 해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요, 모두 홀로 나예요. 그러고 자기를 위해서 옆의 사람을 돕지 자기가 아니라면 옆에 있는 사람을 도울 수가 없죠. 자기로 인해서 옆에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항상 자식들도 부모와 자식 간에 밝게 불을 켜주려면 관해 주라고 했습니다. 둘이 아니니까, 둘이 아닌 까닭에 관해 주면 거기까지도 마음의 불이 들어올 수 있는 겁니다. 마음의 불이 들어오면, 그 마음이 오게 되면 육체는 저절로 따라 오게 되니까요. 그러고 잘되고 못되는 것도 여러분에 달려 있습니다. 그건 아주 규정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그러지만, 그 날만 오시는 게 아니라 오늘 아닌 오늘이 영원한 오늘이면서 끈이 항상 어느 날짜라고 증명할 수도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대사의 인연을 갖추셨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니 불을 방편으로 켜더라도 아주 정성스럽게, 돈이 없어서 정성금을 조금 냈어도 생각은 크게 할 수 있죠. 등은 요만해도 마음은 우주에 닿게끔 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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