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작용 지켜보는 수행에 대하여...
본문
질문
‘우리에게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이나 스스로 지어서 받는 고락은 각자의 육근(六根)을 운용하여 짓는 결과이니 찰나 찰나로 육근을 동작하는 바가 모두 고로 화하여 진정 고해가 한이 없다.’는 가르침에 따라 육근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육근의 허망함을 관(觀)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고 수행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 몸뚱이 안의 육근 작용을 지켜보는 수행을 통해서 불법의 불가사의한 도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것은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바라밀이니 팔정도니 하는 거를 일일이 따진다면 너무 어지러워서 방향을 어떻게 둘지를 몰라 공부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공부하는 데 몇 십 년씩 걸려도 빗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할 것은, 바깥 경계를 여섯 가지 구멍으로, 즉 색(色)을 보는 거, 냄새를 맡는 거, 소리를 듣는 거, 맛을 아는 거, 몸의 부닥침을 아는 거, 의식으로 드는 여섯 가지를 바깥으로 내다보면, 여섯 경계가 바깥으로 한데 합쳐서 나갑니다. 여섯 가지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육근의 이치를 따로따로 보지 마십시오. 눈이 가면 귀도 거기 속해서 가고 냄새도 거기 속해서 가고 맛도 속해서 가고 나한테 접근이 되는 상대도 동시에, 의식으로 드는 것도 동시에 듭니다.
여러 가지가 한데 합쳐서 해야지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눈 따로 귀 따로 따진다면 언제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일심으로 들어갑니까? 그냥 본래 있는 거니까 눈 가는 데 귀가 가고 귀 가는 데 눈이 간다, 둘이 아니니까 마음으로부터 모두가 한마음이 된 거다 이겁니다. 내 몸에서부터 알려고 하세요. 바깥의 것을 먼저 알려고 한다면 내 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움죽거림이 바로 한마음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한마음에 있으니 몸이 지수화풍으로서 아니 뭉쳐진 게 없고, 지수화풍 아닌 게 없고, 지수화풍이기 때문에 지수화풍으로 이어지는 연관 있는 것이 전부 나 아님이 없다는 겁니다. 몸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 물질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비와 지혜로 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나’를 내세우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나라는 게 없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이 세상에 짊어지고 나온 내 탓이지!’ 이렇게 돌린다면 싸울 일도 없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내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식구들이 마음이 풍족치 못한 것도 우리가 차원이 똑같으니까, 금은 금 방에 가고 넝마는 넝마대로 모이듯이 우리 식구가 차원이 같기 때문에 만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저 ‘주인공, 당신만이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당신만이 우환 병고를 없앨 수 있어.’ 하고 모든 거를, 낫게 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믿고 맡기고 관하는 겁니다.
그러니 주인공을 찾는 것도 둘로 찾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인공을 찾았는데도 안 된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벌써 한 다리를 건너가니까 미신 짓이에요. 주인공이라고 이름만 해놨지 그것이 기복하고 뭐가 다릅니까? 내 주인공밖에는 잘 이끌어줄 수 없다는 믿음을 항상 떠나지 않게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실험하고 거기서 체험하고, 체험함으로써 믿음이 더 단단해지고, 그렇게 되면 불가사의한 법도 거기에서 다 나오게끔 돼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청정하고 청정치 않고를 나누어 분별하지 말고 모든 생각이며 의식들이 다 그 한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말로 믿고 들어간다면 참으로 청정한 한 바다의 맛을 다 보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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