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있으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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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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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매한 질문을 드립니다. 요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어느 스님의 “항상 깨어 있어라.”는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 항상 깨어 있으려고 더욱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다가도 자신을 의식하게 되어 얘기가 끊기기도 하고, 워드를 치다가도 자신을 의식하게 되어 빠르게 워드를 못 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이것은 착인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그렇게 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인공에 모두 놓고 지켜보는 거와 깨어있으라는 뜻과 집중하는 것, 삼매에 드는 것 그리고 집착과의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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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래 알고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믿어라. 타의의 신을 믿으면 그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느니라.” 하신 것도 여러분 자신을 찾으라고 한 겁니다. 자신이 하는 것이니 ‘자는 부가 하는 것을 지켜보라. 자와 부가 둘이 아니게끔 서로 상응하면서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면서 이렇게도 나투고 저렇게도 나투면서 그렇게 지금 걸어가는 그 길을 지켜보라.’ 이런 말이죠. 무겁게 짐 진 거를 다 놔 버려라. 네 마음으로써 짐을 지어놓고 무겁게 왜 짊어지고 다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것을 놔버리고 쉬라. 그대로 돌아가면서 여여하니라.” 이런 말의 뜻을 우리가 새겨서 거름으로 알고 주춧돌로 알고 기둥으로 알고 참고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생활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바로 생활이 종교요, 종교가 생활이라는 그 뜻을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이 높다 저 가르침이 높다 한들 높은 게 따로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고에 허덕이고 물에 빠져서 허덕이는 사람을 보신다면, 여러분도 누가 물에 빠져서 헤매고 있을 때 그 보는 순간 손을 잡아서 끌어주고 건져주는 그게 부처님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가만히 있어야만 부처님이냐 이겁니다. 부처님의 마음일수록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건져줘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깐 부처님 법이 따로 있고 예수님 법이 따로 있다고 가릴 게 아니라,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지금 그대로 행을 하는 게 부처님 법이에요. 그러니까 마음을 잘 써라 이겁니다. 한생각을 잘 내라는 겁니다. 부적을 안 붙여서 요거 잘못 돼 돌아가면 어쩌나. 이사를 이렇게 가라고 했는데 요렇게 갔기 때문에 잘못되는 거 아닌가 하고 끄달리고, 자기 마음 자체를 그렇게 못 믿으면 안 돼요. 일체 만물만생이 다 공했는데, 우주 법계가 공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무시하고서는 아니, 조금만 어디가 이상해도 방방방방 뛰면서 병원으로 어디로 닦달하듯 달려간다면 자활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부처인 것이고, 법신인 것이고, 여러분의 한생각이 바로 법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근본을 믿기가 상당히 어렵다고들 얘기하지만, 난 그렇게 어렵다고 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이름에 끄달리고, 남의 육에 끄달리고, 허공에 끄달리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못났든 잘났든 자기 마음의 주인이 제일인 것이죠. 마음의 주인이 모든 일체를 하고 있어요.

그것을 모르겠거든 하루하루 해나가면서 누가 하는가 지켜보라 이겁니다. 그러면 알 바가 있을 테니까요. 누가 똥을 싸고 누가 잠을 자고, 누가 말을 하고, 누가 생각을 하고, 누가 생각을 잘못해서 구덩이에 빠져서 우는가를 한번 잘 지켜보라 이겁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을 겁니다.

급한 일이 닥칠수록 마음의 주인한테 일임시켜 탁 놔버리면 그대로 편안하고 일은 일대로 해결됩니다. 그렇다고 몸을 가만히 두라는 게 아닙니다. 몸은 그대로 따라다니면서 일을 하되 함이 없이 해라 이겁니다. 주인이 하는 거니까. 그냥 주인에 따라서 함이 없이 그냥 따라만 다니는 종이나 마찬가지예요. 육신은 마음의 그림자와 같아요, 자기 마음의 그림자. 그래 시자라고 하는 거죠, 시자! 심부름하는 시자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까딱하지 않고 방 안에 들어앉아서 문 걸어 잠그고 지켜보라는 게 아니에요. 방 안이나 방 바깥이나, 들이나 산이나 똑같은 자리예요. 자기가 앉은 자리가 바로 법당이니까요. 그래서 공부한다고 해서 꼭 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거는 거푸장한 짓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이 소리예요. 산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달라지고 들로 나오면 마음이 달라지나요? 자기 몸이 있는 자리에 그냥 있는 거니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움죽거려라 이거지요. 믿지 못하면 편안하지 않을 것이고 믿으면 편안할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재차 말을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그 누가 하는가?’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해라 이거예요. ‘주처, 주인공이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지금 웃으면서도 찾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냥 상을 찌푸리고 그냥 고달프게 하고 찾아요? 웃으면서 즐겁게 하면서 찾아요. ‘야! 이거 웃는 것도 주인공이 하는구나. 주인공! 당신이 이렇게 하고 있구나. 일체를 다 주인공이 하고 있구나.’ 이렇게.

또, 지금 일을 죽도록 하다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아, 이거 잊어버리고 이렇게 여직껏 한 것도 바로 당신이, 주처에서 한 거로구나.’ 하고선 자꾸 하나만 붙들고 늘어져요. ‘하나에서 이렇게 모두 하고 있구나. 하나로 모든 게, 일체만법이 하나로 드는 구나. 하나에서 모든 것 하는구나.’ 이것만 알면 웃는 것도 ‘허허, 이거 주인공이 또 웃게 하는군.’ 이렇게 웃으면서도 나의 주인, 주처를 찾을 수 있다 이겁니다. 그게 바로 놔버리는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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