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과 칠성부처님에 대해서...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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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과 칠성부처님에 대해서...

본문

질문

칠석은 일월성신신앙, 특히 칠성(七星)을 신앙하던 토속신앙이 불교와 습합된 전통신앙으로서 칠석이 되면 치성광 부처님께 정성어린 공양을 올리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의 뜻으로 볼 때 칠석과 칠성 부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칠석날 촛불을 켠다, 이런 것은 우리가 마음의 밝음을 그대로 연결해서 내가 밝아짐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칠석날은 산 사람이 촛불을 밝히듯이 내 마음을 밝혀서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칠석날이 산 사람을 위해서 정해진 날이라면, 백중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정한 날이니 마음이 육근 안에 있음으로써 님과 같이 있으니 ‘칠’이요, ‘각’이라고 하는 건 밝음을 뜻하는 겁니다. 이것이 둘이 아니기에 항상 만나려고 애쓸 일도 없거니와, 항상 밝았으니 죽고 사는 게 어디 있으며 맴돌 게 어디 있겠느냐는 얘깁니다. 동서가 둘이 아니고 남녀가 둘이 아닌데 어찌 이것이 둘이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항상 마음의 불을 켜야지요. 노예로서 남의 덕만 보려고 해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남한테 지배만 받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느 부부가 참 정답게 살았더랍니다. 비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답게 살면서 못 잊어 하다가 한 사람이 일찍 죽었습니다. 한쪽이 일찍 죽으니까 남은 사람은 항상 그 마음으로써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살다가 말입니다, 그 아내를 쫓아가니까 그 여인은 벌써 남편을 쫓아서 이 세상으로 나왔더랍니다. 그랬으니 또 못 만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인은 다시 또 염원을 하다가 남편을 쫓아가니깐 남편은 또 들어오게 됐죠. 그러니 그거를 맞추려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안타깝게도 나중에는 돌다, 돌다 스쳐가기만 하고, 즉 북쪽을 향해서 스쳐가기만 하면서 그렇게 애원을 했답니다. 애원을 해서 만나보기를 그렇게 염원했건만 기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걸렸는지 모른답니다. 그 기일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나이가 맞지 않으면 안 되죠. 나이가 맞지 않으면 부부로서 살 수가 없는 거죠. 10년이 위다 20년이 위다 30년이 위다, 어른하고 애하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맞추려니까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뒤쫓아 나왔는데 뒤쫓아 나와도 어린애더랍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살면서 또 닦고 닦아서 왔다가 또 다시 가면서 맞지 않는 것이 뭐냐 하면, 그저 허덕지덕 하다보니까는 하나는 상놈의 집 딸로 나오고 하나는 양반의 집 아들로 나왔으니 또 맞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그 집의 종으로 들어가 살면서 그렇게 빌었답니다. 나는 언제나 상놈을 벗어나서 저 양반하고 살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 은연중에 인연이 돼서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얘기이니깐 그렇지, 여러분도 그렇게 인연 따라서 도는 겁니다. 인연 따라서 식구들이 한데 모인 거고, 인연 따라서 정치인들이 한데 모인 겁니다. 또 차원 따라서 상업가들이 한데 모인 겁니다. 은은 은대로 한데 모이고 금은 금대로 한데 모이는 겁니다. 그 차원에 따라서 만남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차원이 다르니까 차원에 따라서 그것을 맞추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보니 나중에는 종으로까지 살게 됐고, 주인이 일찍 죽으니까 부처님 앞에 가서 염원을 하면서 그렇게 3년 동안, 산등성이 밑에 가서, 그 분의 자손들이 시묘살이 하고 있는 거를 피해 그 밑에 가서 그렇게 염원을 하고 애를 썼더랍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똑같은 문벌을 가지고 똑같은 양반의 집으로 태어나서 둘이 재미있게 살았다 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한번 만나서 살기가 인연에 따라서 너무도 어려웠다는 얘깁니다. 그랬는데 그 부부가 살면서 그거를 알았답니다. 부부의 인연이라는 건 잠시잠깐 뜬구름같이 사는 건데 우리가 모르고 이날까지 염원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거를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부처님 앞에 가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양쪽이 다 그것을 알고는 30이 넘어서 40이 가까울 때 입산을 해서 승려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출가를 해서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은, ‘칠성’이라는 것은, 바로 육신 안에 바로 내 님이 계시고, 내 님 안에 밝음이 있으니 이것이 칠성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한마음에 의해서 여러분의 명과 또는 아픔을 다 가시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돌면서 너무도 헤맸던 그 인연에, 자기의 깨우침에 의해 눈물을 흘리면서, 명이 길게 해주시고, 항상 잘 살게끔 노력을 해주시고, 또 길을 인도해 주시고, 항상 보배로서 길잡이가 됐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오늘날 칠성이라는, 칠성각이라고 하는 그 뜻은 밝았다는, 여러분이 사람이기에 바로 부처가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밝음을 가질 수가 있고, 밝음을 가졌기 때문에 님은 나한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차로에서 얽매이고 찾으려고 애를 쓰고, 만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이날을 정해놨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산 사람을 위해서 촛불을 켜야 한다는 그 뜻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걸 아셔야 합니다.



오늘날 살면서 차원에 따라서,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항상 차원에 따라서 지배를 받고 밟히고 또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 이치 아닙니까. 우리 인간만 그런 게 아니라 일체 만물이 그렇듯이 우주의 섭류도 역시 그렇다는 겁니다. 나 하나가 별을 낳았으면 그 별은 바로 내 미래이고 바로 나이기 때문에 별성의 그 능력을 다 거기에, 에너지를 다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건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껍데기만 떨어지고, 껍데기가 떨어져도 여기 땅에까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땅에까지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녹아버리기 때문에도 그렇죠. 그러니까 허공에도 그렇게 전력이 흐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가 올 때나 어떠한 때는 쇠붙이나 이런 것을 지니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물기가 쇠에 붙으면 언제나 전력이 붙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몸에도 그러한 물기가 있기 때문에 그 전력이 올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수화풍으로서 이 몸뚱이가 생기고, 모든 물체가 지수화풍 아닌 게 없고, 생명 없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그 깨우침을 상징해서 칠석날로 정해놓은 거는, 다 각자 여러분의 몸 자체가 칠성각이요, 몸속에 바로 님이 계신 거고, 부처님이 계신 겁니다. 그 부처님은 항상 밝으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밝히면 그대로 밝아있는 칠성각이요, 칠석날은 영원한 오늘의 자기 마음 그대로가 밝음이 아니냐는 얘깁니다. 그러니 바로 인등이요, 항상 꺼지지 않는 불이요, 항상 꺼지지 않는 그 불은 그렇게 원자력이, 큰 능력이 풍부하고, 천차만별을 다 가지고 응용하기 때문에 바로 자유인의 응용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동쪽이 있고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고 서쪽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꿈과 생시가 둘이 아닌 그 까닭에 오늘의 밝은 칠석날을 정해놓은 것도 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칠석이라고 가시다보면 부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자기가 부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 영향력을 가지고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분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날의 몸을 가지고 그 뜻을 모른다면 세세생생에 끄달리면서 업보의 고를 어떻게 받으시렵니까. 그러니 몸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가 이러한 것을 다 알고 넘어가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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