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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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지금처럼 첨단과학의 시대에 마음공부를 해서 정신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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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 인간이 살아나가는 걸 가만히 보십시다. 여러분은 애고(哀苦)가 많으니 고(苦)가 많으니 병고가 많으니 온통 야단들인데 난 병고다 애고다 고통이다 이런 생각 안 합니다. 그런 고통을 받아 보신 분들이 그 낙(樂)을 알 수가 있는 거지 고통을 모르면 남의 고통도 모르고, 또 사람이 발전을 하고 진화돼서 창조력을 기를 수가 없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동시에 평등한 겁니다. 그래서 항상 재료로 알라고 그러죠. 여러분이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이치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알아야 될 일인데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그걸 말을 어떻게 해야 여러분한테 잘 비벼서, 비빔밥을 맛있게 해서 먹게끔 하고 나중엔 소화를 잘 시키고, 나중에는 대변을 잘 눠서 속이 시원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도 때로는 부실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한테 표현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걸 생각해 보십시다. 영화를 찍는데 미리미리 대사나 모든 것을 준비해서 촬영해 가지고 영화를 찍지요? 인간들도 자기가 살아나가는 데에 자동적으로 촬영이 되고 자동적으로 입력이 돼서 그걸 가지고, 우리가 생활을 해 나가는 영화를 돌린다 이겁니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영화 제작이 되고, 또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서 대사와 모든 것이 그렇게 정신력에 의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영화를 볼 때에 때에 따라서 국민이 ‘이렇게 이렇게 이거는 잘못됐다.’ 하고 말을 하면 좀 고치기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80%, 90%는 고칠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벌써 그렇게 역할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한 것대로. 그래서 자기가 한 것대로 방영을 해 주는 겁니다. 아주 요만큼도 빈틈없는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태양계가 모든 행성을 이끌고 다니되 태양이 잘나서만이 아니고 행성들이 잘나서만도 아니에요. 서로 주고 서로 받고 이렇게 공용(共用)하는 겁니다. 공식(共食)이 없다면 공용이 없습니다. 상대성이 아니라면 우리가 움죽거릴 수가 없고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람이 아주 이 도리를 확실히 안다면 한 치도 어긋날 게 없고, 진리에 순응하고 부처님의 뜻을 따르고 우리 생활도 시대에 따라서 용어가 변천되고 바뀌고 하는 대로 발전이 돼서 아마 시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나갈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테두리 안에서, 이 지구 안에서 벗어나면 벗어나는 대로 정신계와 통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꾸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저 우주의 근본과 직결이 돼 있다고 그랬죠? 이 세상 살아나가는 건 가설이 돼 있다고요.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그렇게 가지고 나온 거죠. 이 세상에 나왔다 하면 내가 나온 게 바로 화두요, 앉고 서고 생활하는 게 그대로 참선이요, 그 모든 살림살이 하는 것이 바로 자기이기 때문에,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자기이기 때문에 우주하고도 직결이 돼 있다 이겁니다.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말하고 행하고 그런 거를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정신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세계와 통해야 우리가 정신세계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옷을 벗고. 즉 말하자면 원자가 발전을 해서 은하계라든가 태양계라든가, 만약에 거기의 지배자가 된다면 수명은 더 길어지고 모든 각계각층 중생들을 다 건지게 되고 살리게 되는 거죠.
그런 반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 나가 다 내가 되지 않는 생명들이 하나도 없고 나 아닌 게 하나도 없느니라.’ 한 뜻이 뭔 줄 아십니까? 만약에 이렇게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태양계의 지배자라면 모든 행성, 혹성을 이끌어가고 있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마음의 줄에, 염주알이 한 줄에 꿰어서 돌아가듯이 다 돌아갑니다. 진리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인간의 한마음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서로가 주고 받고 공생 공용 공체 공식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조금도 빈틈없이 저 갈고리에 걸려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고기가 바다를 벗어나서 살 수가 없듯이,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서 살 수 없듯이,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과 둘이 아닌 까닭에 나는 한 사이도 없고, 어떤 거를 집어서 나라고 할 수 없으니 나는 한 사이도 없다고 했겠지요. 허나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그 길을 일러 주시지 않았다면 반드시 우리가 지금도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거다 이겁니다. 역력히 지금도 그분의 마음은, 진리와 그분의 마음과 세상과 전부 일체 만물만생과도 더불어 같이 마음을 한마음으로 돌렸기 때문에, 지금도 진리는 여여하듯 부처님의 그 뜻과 말씀은 여여하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데서 만약에 원자에다가 입자들을 그냥 수없이 이 우주 공간에 있는 걸 다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 이름만 다르지 뜻은 다 똑같애요. 다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다 내놔서 활동을 해도 줄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될 수 있으면 처음에는 절대적으로 여기만, 자생중생들이 모인 이 세계만 믿고 모든 걸 ‘주인공의 뿌리에서 뿌리가 가닥가닥 헤아릴 수 없이 있는 이 자체 여기서 모든 게 나오는구나. 여기서 모든 게 드는구나. 나고 드는 게 여기구나. 그러니까 너만이….’ 이렇게 해서 다 거기다 놓고, 자생중생들이 ‘아, 이거 마음의 선장에 의해서 모두가 돌아가는구나!’ 하고 다 알았을 때, 그때는 털구멍을 통해서 보이지 않게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듯 다 나가서 조절하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같이 돌아갈 수가 있죠. 예를 들자면 미국에 아들이 사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곳까지 가서 자꾸 도와줄 수도 없고 이럴 때는, 내 마음에서 탁 나가면 벌써 거기서, 그걸 이름을 하자면 입자로서 그 활동을 하게 돼 있죠.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내가 그래요. 허허.
그러니까 입자로서 거기 가서, 입자라도 원자가 될 수 있고, 원자 속에서 입자가 나오고, 나온 그 입자가 바로 원자가 될 수 있는 거니까요. 일할 땐 원자가 되는 거죠, 그 속에 둘이 아니게 가니까. 그래서 순간순간 찰나찰나 원자에서 입자가 돼서 나가서 그쪽에 가서는 원자가 되고, 원자가 돼서 그쪽에서 그 뜻을 알았으면, 그러면 또 전화를 해 주고 아, 이러면 자연적으로 공부가, 느끼고 체험하고 이렇게 되면 자연적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데 여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죠.
그러니 여러분이 정신계의 이 공부를, 마음공부를 아니하신다면 앞으로 살기가 극난히 어렵다 이겁니다. 왜냐. 앞으로 물질세계의 발전은 고도로 진전이 되겠으나 이 정신세계의 공부가 없이는 물질세계도 광대하게 발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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