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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시련에 대해서

본문

질문

요즘 들어서 불교계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안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불법을 통해서 이 사회가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러한 일들이 불교계 전체를 호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한 불교계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것을 사람들이 넓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다 불상사라고 하지만 온기가 물 밑 찬 데까지 서로 대치를 해 주지 않는다면 살 수가 없고 대치를 해 주지 않고 소용돌이치지 않는다면 밑에 있는 게 못 삽니다. 그래서 밑의 것이 위로 올라오고 위의 것이 밑으로 내려가야만 같이 먹고 사는 겁니다. 서로 주고 서로 살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다 물도 모든 생명들이 있기 때문에 사는 거지 생명들이 없으면 물도 죽는 겁니다.

그렇듯이 우리 인간들이 살아나가는 데도 역시 그렇습니다. 인간들뿐만이 아닙니다. 물에서 사는 것이든지 들에서 사는 것이든지 다 그렇죠. 들에서 풀을 태우는 일들도 다시 새싹이 나와서 다시 먹게 하기 위한 도리도 됩니다. 그게 자연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어느 누가 잘못해서 불이 났다 이러기보다는 ‘더불어 같이 살기 위해서다’ 하는 것이죠. 그러면 태풍이 일어서 사람이 많이 죽는데 그거는 어쩐 일로 그러냐 이러겠죠. 넓게 본다면 그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어떤 사람은 외아들을 데려갔다고 하는데 그것도 쓸모가 있기 때문에, 외아들이고 아니고 간에 다시 대치해서 내보낼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깐 죽는 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고 사는 것도 그냥 사는 게 아니에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이 살고 있는 겁니다. 그냥 자동적으로 자유스럽게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공기주머닐 한 발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반면에 모든 게 자유스럽게 살 수 없다는 거죠.

우리가 공부하는 이치는 그런 것을 다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크게 돼라는 얘기죠. 그럼으로써 대치를 다 할 수 있고 그런 거죠.

보십시오. 바다의 물이 파도를 이루지 않고 곱게 잔잔한 대로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물속 깊숙하게 있는 그 고기들이 살 수 있으며, 위에서 다니는 고기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뒤집어 놔야 밑에 있는 양식을 위에서 먹고, 위에 있는 양식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태양열도 밑으로 내려보내고 온기와 찬 기를 서로 섞어서 다 공식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공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공용도 할 수가 있죠.

모든 게 교훈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련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되죠. 이건 바로 공생 공심으로서 공용하기 위한 사부대중의, 즉 말하자면 순환이라고 그럴까요? 정맥·동맥이 서로 돌아가서 순환이 돼서 이 몸뚱이가 아주 건강하게 잘살 수 있게끔 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깐 입 꼭 다물고 눈 지그시 감고 싱그레 웃으며 돌아서서 부지런히 정진하면 되는 일입니다. 말로 만들어진 일들은 자취없이 사그라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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