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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이 꿈에 보여요

본문

질문

요즘 들어서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조상님이 자꾸 꿈에 보이고 그럽니다. 천도재를 지내야 하나요? 아니면 어떻게 마음을 내서 보살펴 드려야 하나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지혜롭지 않아서 그러는 거예요. 부모님이 잘못 돌아가셨거나, 무슨 일이 있어서 총에 맞아 죽었다거나, 6·25때 무슨 일이 있어서 죽은 그런 사람들, 물에 빠져 죽었다든가 목을 매서 죽었다든가 이런 분들도, 아무리 어렵게 살고 아무리 악하게 살고 잘못하고 살고 그랬어도 아주 열심히 공부하면서 모든 걸 돌려놓으면 그냥 바꿔지는 겁니다. 그래야 편안하게 살 수 있구요.

예를 들어서 내가 먹으면 먹는 대로 먹을 거고 입으면 입는 대로 입고 걸으면 걸은 대로 걷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뭘 뜻하느냐 하면, 공부를 할 때는 모습이 있어야만 부딪침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습이 없으면 공부를 못한다고 하는 게 나옵니다. 그래서 영탑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는 것도 모습이 없으니깐 그 탑에 모습을 두고선 모두 공부를 하게 만든 겁니다. 그 뜻이 그렇게 된 겁니다. 게다가 내가 내 탑을 지금 가지고 다니는데 내 탑 속에다 다 넣어도, 이 세상 만법 만 중생들 만 부처님들을 다 넣고 다녀도 손색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이 뜻이 이해가 가십니까? 마음공부를 못해서 깨치질 못했다고 ‘우린 깨치지 못해서 그걸 못해.’ 이러지 마시고 그거를 하시는 동시에 그게 벗어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고, 우리 모습도 벗어날 수 있는 거지만 돌아가신 영령들도 벗어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깐 집안이 편안하게 된다 이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못 보지만 살다 보면 남인데도 영령들이 ‘저분한테만 들어가면 내가 참 세세생생을 아주 벗어날 텐데.’ 하고선 그냥 달려듭니다. 달려들어서 꿈에도 보이고 그냥 그럽니다. 그러면 그거 얼른 응해 줘야죠. 응해 주고, 하다못해 법당에 와서 응해 주는 동시에 절이라도 서너 번 해 드리면, 서너 번 해 드리고 주인공에다 다 집어넣으면 아주 좋은 일이죠. 늘 얘기하지만 어저께도 내일도 없이 오늘입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저께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늘 말입니다. 오늘이 영원하다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예전에도 말을 했지만 조상들의 영령들, 모두 내 앞에 거론되는 사람들을 전부 주인공 안에다 다 흡수하라고 그랬습니다. 이해가 갑니까? 하나하나가 너무도 살기가 바쁘고 어렵고 지금은 더더욱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런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빠르게 뛰면 빠르고 느리게 뛰면 느린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뛰고 안 뛰고가 없이 빠르게 생각하면 되고 빠르게 생각지 못한다면, 이해가 안돼서 느리다면, 그 이해가 안되면 말입니다, 뭐든지 결정이 안 나고 적응이 되지 않죠. 이해가 돼야 뭐든지 결정적으로 흡수할 수가 있으니깐요.

그리고 그렇게 넣으면 넣는 대로 없어진다 해야 되나요? 넣는 대로 둘이 아니다 이런 소립니다. 넣어도 넣어도 둘이 아니요 늘어나지 않는다.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고 꺼내는 사이가 없다 이런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령들을 다 집어넣으면, 그러면 나한테서 우글거리고 집안이 외려 더 문제가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집어넣어서 공심으로 공생으로 공체가 된다면 정말 따뜻하고, 더하고 덜함도 없이 따뜻하고 자기를 자기가 죽이는 법이 없으니 가정에서도 평화스럽단 얘깁니다.

여러분도 가정에서 무척 애를 쓰시죠. 그래서 이것이 이해가 되고 이것이 정말 적응이 돼야만 이런 소릴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소릴 못하죠. 그런데 이런 소릴 해도 적응이 돼야 합니다. 이 도리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둘로 보지 않는다면, 둘로 하지 않는다면 둘로 보지 않는 것이고, 둘로 보지 않는다면 공생으로 되는 것이고, 공생으로 되면 공심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봐도 혼자 보지 않고 서로 더불어 보는 거니까요. 그렇게 해서 공심으로만 볼 수 있다면 불안(佛眼)이 되죠. 육안으로 보는 거는 그냥 우리가 지금 현실에 보는 거고 심안으로 보는 거는 마음으로 보는 거고 그렇다 그러지만, 그 경지가 참 많아서 법안(法眼) 혜안(慧眼) 불안 이렇게 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차원이 모두, 여러분은 모르시고 올라가야 되죠. 모르면서 올라가고 올라가면서 알게 되고, 또 살다 보면 알게 되고, 누가 가르쳐 줘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알게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게 우리가 더 좋은 게 뭐냐 하면, 내 마음 주인공 하나가 겨자씨라면 일체제불을 다, 일체제불도 각 처 각 업의 부처님 상이죠. 부처님의 모습이고. 그런 걸 다 이 가죽 속에다 넣고 다닌단 말입니다.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모시고 쫓아다니면서 받들고 그러지 않아도 될 수 있겠죠. 일체 중생들도 다 넣고 말입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요. 우리가 몽땅 이 세상의 모든 일체를 다 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아주 어려운 일들이 아니죠. 한 주먹 쥐어다가 넣어도 쥔 사이도 없고 넣은 사이도 없다. 그러면서도 넣어졌다. 또 꺼내서 풀어 줘도 풀어 준 사이가 없이 풀어 줬다.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보살의 법도입니다. 공법 도리인 것이죠.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모두 편안하게 사시려면 이 도리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지금 각 세계를 봐도 진짜로 자기 근본처에 직선적으로 들어가게 하는, 자활을 하게끔 하는 데가 별로 없습디다. 그리고 모두 자활이라고 해도 화두를 갖게 한다든가 이래도 그것은 자활이 아닙니다. 화두는 내 모습이 벌써 화두입니다. 내 모습을 보고 ‘내 모습 속에 모든 일체제불이 있는 것도, 중생도 있는 것도 다 한꺼번에 공체로구나. 공체이기 때문에 내가 있다고 말도 할 수 없겠구나.’ 이런 것쯤은 알아야 전체를 알게 되죠. 일하시는 것도 답답하게 때로는 이쪽으로 들어갈 걸 갖다가 저쪽으로 들어가니깐 참 답답하죠. 답답한데 그것을 ‘골수를 찾아서 잘 들어가게 당신만이 할 수 있어.’ 그러고 자기가 쑥 빠지고 자기 주인공을 내세우면 그냥 옳게 들어가게끔 다 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래요.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항상, 여러분이 바다와 같이 아신다면 나도 바다와 같고 여러분이 우물 안처럼 생각하시면 나도 우물 안이고 연못 안이고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다처럼 탁 터져서 훨훨 턴다면 나도 훨훨 털 것이고요. 그런데 여러분이 방에서 한 치도 못 나간다면 이 세상 정신계의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타개를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정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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