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힘을 기르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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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힘을 기르려면…

본문

질문

삶은 고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습니다. 스님, 내면의 힘을 길러서 자유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분들이 힘들고 괴로운 일상을 벗어나서 자유스럽게 살아가게 할 수 있을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언제나 우리가 항상 한자리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겨나서 살아가는 이날까지 이끌어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금까지 이끌어 가기에 노고가 얼마나 많으셨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다, 가정마다 크고 작은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뒤따르고 있는 이것들을 어떻게 타파하고 나갈 수 있겠느냐는 문제죠. 부처님이 정법을 가르쳐 주시고 핵심을 불어넣어 주신 것은 바로 강설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학식도 아니고,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에 그 내면에서 나오는, 좋은 것만이 아니고 슬프면 슬픈 것대로 아프면 아픈 것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것대로 어떠한 것도 고정됨이 없이 나오는 그 진실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다스려 가면서 아무리 고가 있다 할지라도 내 탓으로 돌리고 내면에 맡겨 놓는 그 작업을 우리가 항상 해야만 용광로에 헌쇠, 잡쇠, 짧은 쇠, 부서진 쇠든 다 집어넣듯이 우리들도 괴로운 모든 것들을 다 자기 주처를 믿고 거기다 다시 집어넣는다면 자동적으로 재생돼서 다시 새 쇠로 재생해서 나갈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는 순간마다 자꾸 아픔이 느껴집니다. 아픔이 느껴지고 왜 이렇게 걸어야만 했고,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만 했고, 왜 이렇게 아파야만 했고, 왜 이렇게 허덕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그런 생각도 해 보면서 살았습니다. 사실은 길을 걷다가도 남이 볼까 무서워서 눈물을 씻고 했습니다. ‘네가 뭐길래, 중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이 길을 걸어야 하느냐.’ 하고요.

그런데 남들은 강설을 듣고도 허세스럽게 생각하고 이론적으로 얘길 하고, 그것을 허세 삼아서 나의 아픔은 감추어 놓고 바깥으로만 웃고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웃음도 어디로 간 곳이 없고 집안의 걱정과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있죠. 그러나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듣고 강설을 들어서 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커버해 나가고 실천을 하고 그대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그런 방법은 바로 내면에서 나를 끌고 다니는 나의 주처, 본래 자성불은 자기가 스스로 청정함을 알고, 본래 자성불은 본래 자기가 여여함을 알고, 본래 자성불은 자기가 갖추어 가지고 있음을 알고, 본래 자성불은 자기가 그대로 만법을 들이고 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래 자성불은 자기가 스스로 자유스러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의 소리 듣지 말고 자기 본래 자성불을 믿고 관하면서 공부하세요. 어느 날 어렵게 사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근근이 살다가 이제는 남편도 없고 그런데 돈 조금 나오는 걸 가지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데 자식들은 점점 자라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쩔 수가 없어서 증권에다 넣었다고 합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애들은 다섯씩이나 되고 엄마 혼자 어떻게 할 양으로, 저게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내 가슴속에서 뇌리를 울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남이 ‘이거를 팔아라. 이거를 사라.’ 이러는 소리를 듣지 말고 네 마음속에서, 주인공에 맡기고선 스스로 네가 사고 싶은 그것을 사고 남이 뭐라고 하더라도 듣지 말라. 사고 싶으면 사고 팔고 싶을 때 얼른 팔아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돼서 애들하고 원두막이라도 하나 살 수 있게끔 17평짜리 아파트를 사게 됐습니다. 그리고 조금 나머지 가지고 어물전을 내는데 시장에서 조그만 가게를 얻어 가지고라도 그것을 하라고 하면서 아예 손대지 말라고 그랬죠.

사람 사는 게 이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법이 저 강당에, 아니 법당에 부처님 법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안방에 부처님 법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또 여러분 안방뿐만 아니라 저런 일터에도 그 한 분 한 분이 일을 하면서 거기 계신 그 반면에 바로 마음을 내면세계에 깊숙이 나를 이끌어 가는 내 주처가 바로, ‘여기 있구나. 감사하구나. 이렇게 일을 해서도 먹고 살게 했으니 감사하고, 부모의 은혜로서 이렇게 육신을 얻었으니 감사하고, 길러 줬으니 감사하고, 이렇게 이끌어 가니 감사하구나. 또한 우리 식구를 이끌어 주는 것도 당신밖에 없어.’ 하고 참 깊은 마음으로서 그렇게 한생각을 내 놓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그 걸음걸이는 아마도 여러분의 가정에 빛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거든지 큰 거든지 어떻게 해야만 우리가 그런 모든 것을 커버하고 나갈 수 있을까. 여러분은 팔자 운명 때문에, 아니 죄업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고 아예 체념하고 사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체념할 때가 아니라 실험을 해야 합니다. 체념을 하시지 말고 체험을 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알뜰히 능력을 기르는 도리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도리를 길러서 위로는 묵은 빚을 갚고 아래로는 햇빛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서 우리가 실천을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백 마디 해 봐도 한 번 실천하는 것만은 못할 겁니다, 아마.

그러니 여러분이 잘 생각하셔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고, 모두가 생각에 아무것도 아니라 할지라도, 이성계가 아무 뜻도 없이 떡을 파는 노인네 앞에 가서 떡 그릇에 가서 그냥 엎드러진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안다 모른다를 떠나서 내가 모두를 얻으려면 이 우주 천하의 모든 것을, 만약에 하나도 가질 게 없다면 하나도 버릴 게 없이 이 주먹 안에 꼭 들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을 버리지 않는다면 얻을 바가 없습니다. 하나라도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의 찌꺼기가 남아서 다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몽땅 놓으십시오. 몽땅 맡기시고 사십시오. 그저 여러분이 ‘들이고 내고 살고 있는 자체, 자기까지 더불어 같이 이끌어 가는 주인공 자체가, 운전수가 차는 끌고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다면 어느 땐가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빛이 나고 스스로, 참으로 지혜가 생기고 물리가 터져서 하늘을 보고 한 번 울고 땅을 치고 한 번 울어야 하는 그런 인간의 삶의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이 말의 뜻이 지금은 이해가 안 가고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럭하는 건 곧바로 들어가는 길을 인도하고 싶어서입니다. 만약에 자기 근본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빙글빙글 돌려서 무슨 옛날 얘기 하듯이 한다거나, 무슨 옛날 역사를 얘기하듯 한다거나 하고 옛 조사들의 업적을 얘기한다거나 한다면 이건 그냥 그림의 떡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누가 이렇게 살았고,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고 그냥 지나가는 얘기 하듯이 하면 하나도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내면의 힘은 길러지지 않는 것이죠. 하나를 들어도 자기가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데 귀로 한번 듣고 그냥 지나가버린다면 그건 들을 때 그때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든 알든 작든 크든 자꾸 관하면서 실천으로 옮길 때 나도 자유롭게 되는 것이고 주위 어려운 사람들도 밝게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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