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급박하고 답답해요!
본문
질문
처음에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나갈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환희로웠는데 지금은 제 앞에 아무것도 비치치 않는 어둠처럼 모든 것이 차단된 느낌입니다. 평탄대로의 길처럼 모든 게 원만했던 사업도 절벽을 만난 듯 가로막히고 연로하시기는 했지만 정정하셨던 어머님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모든 게 급박하고 옴폐부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계도 저의 근본에서 나온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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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세상은 뛰어가는 것도 없고 안 뛰어가는 것도 없어요. 그냥 뜸뿍뜸뿍 걸어요. 그것이 바로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이 진리와 같다는 얘기예요. 그 가운데서 우리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아주 철두철미하게 내가 믿는 동시에, 그냥 그대로 활을 쏘면 정면에 쏴야지 설 쐈다가 그쪽에서 오히려 도로 살이 들어오면 내가 맞아 죽어! 그와 똑같아요.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얍삽하고 천차만별로 변질이 되고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요런 걸 요렇게 생각도 하고, 사람이 착잡하고 괴롭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이런다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지만 그렇게 됐을 때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쉽다 이겁니다. 그것을 모조리 그냥 놓는 겁니다. 일체 만법을 확보해 돌아갈 수 있는 그 근원에다가, 근원에서 나오는 거니까 근원에다 다 놓는 겁니다. 맡겨 놓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아주 그냥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이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요렇게 아주 급박할 때에 내가 공부하기가 쉬운 거예요. 그 급박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바로 어떻게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것도 자기 주인공이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자기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몸도 만들었는데, 자기가 살기 위해서 또 공부를 하는 거라고요. 공부를 시키는 거라고요. 그러면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럴 때에 어떻게 하나 이겁니다. 그러면 이 색(色)으로만 생각하고 사량으로 생각한다면 당장 죽겠으니까 내가 어떡하든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쓴다고요. 그건 소용없는 겁니다. 벌써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나 그걸 보느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량으로 빠져나가려면 저런 창문이 문인 줄 알고 그냥 나가려고 애를 쓰죠.
그렇게 급박할 때 모든 걸 다 맡겨 놓는 그러한 그것이 바로 내 대로를, 이 벽도 봇장도 다 없이 그냥 확 뚫어 버리는 그러한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옴폐부득 못하게 됐을 때 말입니다. 사람이 가난치 않고 돈 있고, 친구들 많고 아, 내가 그냥 모든 게 풍족한데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고놈의 거를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아예 그냥 쪼세요! 진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는 요렇게 그냥 딱 조이게 만들어 놓고, 요렇게 옴폐부득 못하게 해 놨을 때, 요것이 홀랑 껍데기를 벗고서 우주 바깥을 벗고 나가나, 그렇지 않으면 그 껍데길 쓰고 껍데기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나 그걸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참 묘하죠, 모두가 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여러분도 자기 자신이 너무나 모든 생활에 짓밟힌 것 같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거 같고 그렇지만 이 나의 주인은 떳떳하고 도도하기에 그 자기를 그렇게 유(有)의 법이나 무(無)의 법이나 같이 도도하게 흐르기 위해서 자기를 그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을 못하면 ‘아하! 이건 내가 이렇게 되니깐 아이구, 아이구….’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안 되죠. ‘아하! 여기서 그러는구나. 그건 당신이 다 알아서 해. 내가 이 자리에서 앉아서 죽든 나가서 죽든 병이 들어 죽든 가난해서 죽든 나한텐 아랑곳없다, 네가 끌고 다니는 거니까. 알아서 해라.’ 하고 놨을 때에 비로소 주인이자 나를 끌고 다니는 시자가 되니, 이 몸뚱이는 시자라 그랬는데 고만 마음이 주인이자 시자거든. 시자이자 주인이고. 하, 이게 둘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배울 때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자기 시자이자 주인공이자 부처이자 자유인입니다. 그걸 깊이 한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다음에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알 바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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