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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과 부적에 대해서

본문

질문

요 근래에 경기가 어렵고 취직이 안되다 보니 점집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점집에 가 보면 꼭 부처님을 모셔 놓고 부적을 해라, 사주가 어떻다 관상이 안 좋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던데요, 관상과 부적이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엔 너무 사람들이 모르고, 사람이 지금처럼 이렇게 많았던 게 아니라 이렇게 마을이 있으면 한 십 리 나가야 또 마을이 있고 이럴 때입니다. 이럴 때에 어느 스님이 지나다 보니 저 마을에 필연적으로 사태가 나서 마을이 다 죽게 되는 이런 이치가 보이거든요. 참 그, 살아 있는 부처님이죠. 그래서 이 스님이 그 사람들이 모르니깐 방편으로 종이에다가 써 가지고선 “이거를 붙이고 어느 날 어느 시에 피신을 해라.” 이렇게 일러 줬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스님을 믿고 따르게끔 만들기 위해서 방편을 쓴 거죠. 부적을 믿게 됐죠, 이제. 즉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쳐지지 않으면 불이 안 들어오니까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마음과 마음을 한데 붙이기 위한 방편이죠. 그래서 그렇게 스님의 말을 믿게 하기 위해 방편을 쓴 것인데, 이제는 장사가 돼 버렸죠. 얼마짜리 얼마짜리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야 이게 무슨 효득이 있겠습니까? 그냥 도깨비장난이요, 귀신짓이요 모두가 다!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 주신 그 뜻과 가르침을 진정코 제대로 받아서 행하지 못하는 소행입니다.

그리고 관상이라 하는 것도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상을 올바르게 가진다면 관상도 좋아질 거고 수상도 좋아질 거고 족상도 좋아진다 이겁니다, 심상 하나만 좋으면. 잘나고 못나고 이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심상 하나가 좋으면 모두가 이 얼굴 자체도 전부 웃게끔 돼요. 그리고 심상을 잘못 쓰면 손장난도 나쁘게 나가죠. 걸음걸이도 나쁘게, 나쁜 일 하려니깐 막 돌아가죠? 그러니깐 족상이 나쁜 거고 수상도 나쁜 거고 관상도 나쁜 거죠. 그러니깐 ‘심상 하나만 올바르게 생각을 잘 해낸다면 관상도 수상도 족상도 다 좋으니라. 이래서 공덕이 되느니라. 그러니 족상이니 수상이니 관상이니 볼 게 아니라 심상 하나만 진짜로 잘 보고 잘 쓴다면 이거는 세세생생에 공덕을 이룰 것이니라.’ 이런 겁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게 생각해 보면 허탕한 짓들을 하고 있다 이 소립니다. 보면 병이고 안 보면 약이에요. 때에 따라서는 모르걸랑 아예 보질 말아요. 차라리 모르면 편안하게 마음을 둠으로써 편안한 일이 닥칩니다. 그런데 이거를 ‘아이구, 올해는 뭐가 또 언짢지는 않을까?’ 하고선 가서 온통 관상도 보고 부적도 사고, 뭐 또 점도 치고 이렇게 보죠. 그러면 좋은 게 세 가지라면 언짢은 건 일곱 가지나 돼요. 그러니 누가 언짢고 누가 언짢고 누가 좋고 이러니까 그냥 나올 수가 없죠.

그런데다 그냥 나올 수 없어서 주고 나오는 건 또 좋아요. 와서까지도 이 뇌리에 아주 알쏭달쏭하게 잠재해 들어가죠. 그러면 그걸 어떡합니까? 조금만 일이 안돼도 ‘아이구, 그걸 안 해서 그렇구나!’ ‘아이쿠, 이것이 이렇게 돼서 그렇구나!’ 아, 이렇게 인생을 살아나가면 복잡하지 않아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아주 올바로 먹고살기도 급급하고 참 고통스러운데, 하물며 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가지고 고통을 받느냐 이 소립니다.

애고나 질병이나 망상 같은 거, 업보 같은 거 이 모든 것이 애당초부터 붙어 있던 게 아니죠. 여러분에게 잠재해 있는 그 관습 때문에 아이구, 요런 건 요렇게 생각을 하고, 요런 건 요렇게 생각을 하고, 요거…. ‘아이구, 내가 무슨 죄가 이렇게 많기에 이래?’ ‘에이그, 죄를 그래도 많이 졌기에 그렇겠지.’ 하면서 이제 생각이 되는 겁니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어떠한 애고가 생기면 더 그런 마음이 일어나죠. 즉 그 일어나는 마음이 그 업보를 가져오는 겁니다.

항상 내가 이런 말을 하죠.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듯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간다고요. 시공이 없이 돌아간다고. 그렇게 빨리 돌아갑니다. 빨리 돌아가는데 업보 붙을 자리가 어디 있고 아니, 우리들의 마음이 쉴 자리가 어디 있고, 거기 먼지 앉을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아니, 세상이 정맥 동맥이 똑딱똑딱 똑딱똑딱 그냥 막 뛰고 돌아가는 판국에 거기 어디에 붙을 자리가 있느냐 이 소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에는 살아나온 관습들이 잠재해 있죠? 또 이 마음속에서 일어나죠? 또 바깥에서 보고 듣고 일어나죠? 그러니까 일어나는 그 자체는, 그것이 망상이다 업보다 이러질 마시고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100%다 이런다면, 자꾸 생각이 나와야, 요것도 나오고 조것도 나오고, 요것도 보고 조것도 보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나올 수 있어야 목석이 아니지, 그리고 성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지, 아니 요런 생각 조런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면 목석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아, 그것더러 망상이라는 거예요.

바로 자기네들이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한 이 자생중생의 업식들이, 업식들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생중생들이 자기가 자꾸 생각을 나오게 하는 건데 그 나오게 하는 것을 업보니 무슨 망상이니 이러니까, 퇴박을 하니까 ‘에이, 망상이라 그러는데 망상 좀 실컷 해 봐라.’ 이러곤 그냥 망상으로 밀어 가는 거죠. 아, 생각해 보세요! 회사엘 다니면서 극진히 정성스럽게 하는데 ‘너 요놈 도둑놈! 너는 요놈아, 만날 그런 것도 못해!’ 하면서 만날 지청구하고 그렇게 해 보세요. 정말 도둑놈 됩니다. 네? 그와 같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여러 가지를 말씀해 드렸는데, 불교라는 이 단어는 포괄적인 불교기 때문에 일체 생명 어느 거 하나 불(佛) 아닌 게 없으며 말로 전달, 뜻으로 전달, 통신으로 통신, 마음과 마음이 전달, 이렇게 해서 시공이 없이 돌아가는 이 자체가 바로 교(敎)입니다. 그러니까 이 불교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나 실감이 나고 실천적이고 실행적이고 또는 진리적이고 아주 타당한 이름이죠, 이름만으로도. 예전에 조선시대 때에 탄압을 받아서 산속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부처님 한 분만 모셔 놓고 하면 그 앞에만 갖다 놓으니까, 여기도 놓고 저기도 놓으라고 방편으로 그렇게 써먹었으면, 지금 이 시대에서는 개선을 해야죠. 그렇죠? 잘못된 거는 고쳐가면서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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