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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의 공안에 대해서

본문

질문

『법화경』에 보면 “백만 대중이 부처님께서 전법의 설법을 하신다고 하니 손에 식은 땀을 쥐고 눈만 반짝거리고 숨 하나 쉬지 않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대범천왕이 드린 꽃가지를 들고 법단에 오르시자마자 그 꽃가지를 번쩍 들어서 대중에게 보일 뿐, 일언반구의 말 한마디가 없었다. 이때 백만 대중은 그것이 무슨 영문인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중 단 한 사람 마하가섭이 그 이치를 알았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나와 있는데, 그 염화미소의 공안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꽃 한 송이로 마음을 전한 이치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데 좀더 확실히 알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백만 대중이라고 했습니다. 백만 대중 하면은 벌써 그건 꽃 한 송이로 표현이 됩니다. 백이라는 숫자도 없고, 만이라는 숫자도 없습니다. 대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전체 포괄된 하나에서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 평상심입니다. 이 평상심에 그 모두를 한꺼번에 든 자체의 꽃 한 송이는 꽃으로 보아서는 안 되죠. 그 마음을 드러낸 것이죠. 그 전체적인 포괄된 하나의 꽃을 드는 순간, 벌써 꽃은 들기 이전의 평상심이지요. 그렇다면 평상심에 전체적인 것 하나를 이렇게 내보일 때, 벌써 가섭 존자는 그것을 같이 포함해서 전체적인 하나를 또 웃음으로서 들었습니다. 그랬을 땐 이게 어디 전체가 둘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부처님과 가섭 존자 두 마음만 같이 혼합이 된 게 아니라 전체적인 혼합입니다.
 
여러분도 부처님께서 꽃 한 송이 든 이유와 또 가섭 존자가 씽긋이 웃은 이유를 소리를 들어서 다 알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귀로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인가 하기 이전에 우리가 ‘아! 그랬다더라. 그것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이렇게만 그저 귓가에서 들어서 넘기고 말곤 이렇게 하죠, 모두가. 그런데 부처님이 그 꽃 한 송이 들 때, 그 꽃 한 송이에 어떠한 것이 거기 포함돼서 그게 방편으로서 꽃 한 송이가 번쩍 들렸을까요? 그 꽃 한 송이에 꽃 한 송이 있는 게 아니라 꽃을 들었다는 데에 문제는 있습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아니라 웃었다는 그 가섭 존자의 문제가 있죠. 그런데 이것은 가섭 존자와 부처님과 그 꽃 들은 거하고 말이에요, 도대체 그 꽃도 없고 웃은 것도 없었어요.
 
그것은 왜냐하면, 그 도리를 간단하게 비유를 하자면, 항상 그거를 내가 얘기해 드려도 여러분이 이론으로 듣는다면 이론일 것이고, 누구나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게 이해가 안되는 일입니다. 전체가 이해가 안돼요. 없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고, 있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고, 웃었다 해도 이해가 안되고, 꽃을 들었다 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즉 말하자면 한자리! 하나를 번쩍 쳐들 때는 벌써 주고받는 사이 없이 가섭 존자가 법을 이어받았다. 한자리를 말하고 공심을 말한 거죠.
 
그래서 항상 그런 말을 하고 있죠. 공심, 공용, 공체, 공식. 이것을 항상 얘기하죠. 그럭하는 데에 그 묘심, 정법안장 이렇게 말들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법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때는 여러분이 정법이라고 하는 거 다르고, 그분이 정법이라고 하는 그 말이 다른 거예요. 왜 그게 다른 거냐. 깨닫지 못하고 정법이라고 하는 거는 그건 말로 떨어지는 거고, 그분이 정법이라고 한 것은 말없이 꽃 한 송이 든 게 바로 그게 정법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문제가 무슨 공심이니 공용이니 공체니 이런 것이 귀합된 하나의 근본을 가지고서 한번 근본을, 즉 말하자면 꽃 한 송이로 비유해서 탁 들었을 때는 우주 전체가 다 들린 거예요.
 
그랬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앉아서, 몸이 다녀서 전부 가정이나 또 사회, 국가, 세계, 이렇게 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지금 무루의 법, 유루의 법이 이렇게 등장을 하고 있는데 저 숱한 별들이 모두가 나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만약에 깨달아서 둘이 아니라고 할 때, 그 모두가 돌 하나도 나 아님이 없을 때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묘심이 되면 묘용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자체가 사실은 어마어마한 얘긴데, 어마어마한 작용인데도 우리는 그걸 느끼질 못하기 때문에 거짓으로 듣고 넘어가요, 그냥. 그 실감이 안 나니까.
 
소인은 죽 끓고 밥 끓는 거 쫓아다니면서 그거 냄새나 맡지만 대인은 그런 데 여념이 없습니다. 이 뜻은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하면은, 즉 말하자면은 무루에,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그 공심의 묘용이 다 나인 거예요. 나라고 했다고 해서 나 하나만을 지금 세우는 게 아니라 여러분 각자 모두가 그렇게 지금 물질로만이, 유위법으로만 사니깐 그렇지 무루와 유루가 한데 합쳐져서 나 아님이 없을 때에 그 힘을 어떠한 환경에 따라서, 이러한 환경이라면 이런 데 쓰이고 저런 데 환경이라면 저렇게 쓰고, 이걸 맘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런 묘용이 바로 능히 여여하게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말을 한다 할지라도 부처님께서 말없이 해 놓으신 그 말씀이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는 말이나 이 뜻을 모르고는 이것보다 더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마 이렇게 좋은 말을 말없이 좋게 꽃 한 송이를 들어서 우주 전체 삼천대천세계를 싸고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없이 들었건만 이 도리를 모른다면 우리가 밥 한 그릇 이렇게 주워 먹는 것만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밥 먹고 똥 싸고 잠자고, 이것이 바로 그 꽃 한 송이에 있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도 부처님의 말씀을 역을 해서 수만 경을 설해 놓았습니다만 그 뜻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몇몇이나 되었겠습니까. 그 뒤로 수백의 선사들이 났고 그 밑으로 참 많은 또 큰스님네들이 났습니다. 그렇지마는 진짜 우리가 그 꽃 한 송이의 뜻을 알고 지내느냐 못 지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에 의해서 좇아가려고 하지 말고 그 뜻에 의해서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든다면, 바로 우리는 그 부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 뜻을 아마 헤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사량으로 알려고 앨 쓰지 마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 체득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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