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 참 불법인지 모르겠습니다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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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 참 불법인지 모르겠습니다

본문

질문

요즘은 종교도 너무 다양해지고 불교 내에서도 너무 많은 종파들이 있어서 어느 것이 참 불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들보다 더 흉악한 행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아무리 사람이 죽고 또 나고, 떴다 가라앉았다 떴다 가라앉았다 하지마는 이 진리만은 절대로 변동을 시킬 수 없고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부동하죠. 그러니 우리 자체가 그렇게 살림살이에 하나도 빼놓을 게 없는데도 뭐가 불법이고 뭐가 불법이 아닌 게 있겠습니까? 얕다고 불법이 아니고 또 높다고 불법이고, 더럽다고 불법이 아니고 깨끗하다고 불법이고, 이런 것은 아닙니다. 역대의 조사들도 그렇지마는 우리 인간이 잘 파악해 본다면 ‘하나도 버릴 게 없기 때문에 하나도 쓸 게 없다.’ 하는 건 너무 많기 때문에, 짊어지고 다니는 그 사량적인 마음이 아니라 공한, 자기조차도 공한 이치를, 공심을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공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저 사람이 나쁘고 내가 좋고 이러는데, 내가 만약에 공심을 안다면 아. 저렇게 나쁜 마음 쓰는 것도 바로, 내가 본 것이 인연이고 들은 것도 인연이에요. 고 순간 만남에 의해서. 그러니까 그 인연에 따라서 내가 생각하기에 달렸다 이겁니다. 넓히려면 넓히고 좁히려면 좁히고. 둘로 보고 싸움을 하려면 싸움을 하고, 하나로 보고 공으로 돌린다면 그렇게 지혜가 넓을 수 없는 겁니다. 우주를 덮고도 남지요. 그러나 각각 보고 싸워진다면 그거는 이 허공에 바늘구멍 안 들어간다고 그러죠.
 
이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광대무변한 이 법. 우리 이 우주 전체를 이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광대무변한 실상. 이 우주 전체의 실상이 될 수 있는 ‘나’가 되려면은 그것을 둘로 보고 싸우고 마음으로 증오하고 이렇게 해서는 될 수가 없고, 또 ‘이런 거는 불법이고 이런 거는 불법이 아니다.’ 하고 마음이 둘로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내가 만약에 ‘아, 내가 바람 좀 쐬고 싶다.’ 그러면 산에 올라갈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아, 졸리니까 자겠다.’ 그럼 잘 수도 있는 거고, ‘아, 내가 오늘 이렇게 일이 바쁘니까 일을 해야지.’ 하면 일을 하는 거고,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아주 여여하게 그대로…. 한다 안 한다, 이거는 아니다 기다, 이런 게 없이. 남이 그르다 옳다 하더라도 여여하게 넘길 수 있으면서 서서히 그냥 물이 흐를 수 있다면, 그대로 얼마나 다양한 법이겠느냐.

그러니 그 주인공 안에서 얼마나…. 안도 바깥도 없는 것이 주인공이거든요. 그러면은 그 안에서 수없이 전부, 일체 신이 나예요. 내 안에 들었으니까. ‘나’라는 데도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거든요. 그러니 그 안에 다 들어 있는데 어디로 찾으러 다니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바깥의 거는 전부 삿된 일이 아닙니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깥의 것도 안의 것도 둘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그랬지 않느냐 이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바깥의 ‘나쁘다’ 이러는 것을, 이것은 나쁘니까, 이거는 선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 이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법이 아니고, 이건 삿된 마음이고 망상이기 때문에 이건 끊어야지.’ 한다면 자기 마음 깨닫기는 영영 그른 겁니다. 사람이 참사람이 되려면 이런 데도 엎드러져 보고 저런 데도 엎드러져 보고, 이런 데도 들어가 보고 저런 데도 들어가 보고….

어떤 강도가 하나 있었는데 그거를 한번, 그것을 많이 하면은 물이 들까 봐 무섭다고 하지만 한번 잠깐 돼지 소굴에도 들어가 볼 수 있는 거죠. 돼지가 하는 습이 완전히 물들까 봐 걱정이지만, 우리가 그 도리를 안다면 돼지 소굴에 들어가서 돼지로 내가 며칠 동안을 산다 할지라도 그건 물들지 않아요. 또 강도 속에 들어가서 내가 강도가 돼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강도의 물이 들질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향기로운 그 내음이, 내음 없는 내음의 그 불빛이 너무 밝아서 그 캄캄한 강도의 마음도 녹일 수가 있더라 이겁니다. 그러면 강도가 만약에 내 집에 들어오더라도 저 강도도 바로 나인 것이다라는 것을, 육신은 나요 바로 그 마음은 내 마음이니 그 둘이 아닌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일치시켰을 때, 한마음이 됐을 때 비로소 그 강도는 자기가 자기를 죽일 수 없게 되죠. 분명코 둘은 둘인데 죽일 수가 없이 된다 이겁니다. 이쪽 사람은 그렇게 일치했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그쪽 사람은 모르지마는 이 공용 공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벌써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 속의 자기 주인공은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주인공으로 하여 육신이 움죽거리는 건데, 그 마음으로 하여 육신이 움죽거리는 건데, 그 마음이 스르르 녹는데 어떻게 칼로 사람을 찌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를 자기가 못 찌른다 이 소리에요. 금방 마음이 약해져서.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겨울과 같이 딴딴히 얼었다가 일치하니까 금세 봄이 되더라 이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간적으로 볼 때 겨울과 봄이 이렇게 기간이 몇 달 있는데, 한순간에 겨울이 봄이 된 거죠. 그러니까 녹았단 말입니다. 그 강하게 얼었던 얼음이 그냥 순간 녹아버리니까 물이 돼 버렸어요. 물이 됐는데 뭘, 얼음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깨트릴 게 뭐 있나요? 그러니까 찌르지 못하죠.
 
그래서 이 도리를 우리가 말로 할 수 없는 거지마는, 이렇게 말로 해서 여러분이 듣는다면 주인공에다가 놓을 수 있는 그 자신이 생긴다 이겁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은 우주 전체가 한데 합쳐진 즉, 주인공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에서 나오는 일들은 바깥에서 하는 일이나 안에서 하는 일이나, 안에서 생각나는 거나 바깥에서 내 몸뚱이가 움죽거리는 거나, 상대성이 있는 거나 모든 게 나로 인해서 생긴 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는 주인공에다 되놔라. 딴딴하고 강한 것도 그냥 용광로에 넣고 쇠도 용광로에 넣는 거고. 그러면은 거기에서 다, 봄이 오면 다 녹는 거죠, 한마디로 말해서.

그러니 우리가 이 탓 저 탓 할 것도 없고, 이것저것 불법이 어떤 건가 하고 눈을 희번덕거리고 찾아다닐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렇게 인연이 돼서 어떤 법당에 들어갔을 때, 아무 법당에라도 들어갔을 때 그 등상불이 ‘아이, 저건 등상불이니까.’ 이렇게, 즉 말하자면 버리지 말라 이겁니다. 그건 왜? 그때에 그 순간, 그 법당에 자기가 들어갔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부처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거기 들어갔기 때문에 인연이 돼서 그 부처의 형상도 내 형상이에요. 그 형상을 배척한다면 내 몸뚱이가 망가져요. 모든 게 중하지, 중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남을 못 믿고 남을 배척한다면, 남을 욕을 한다면, 바로 내가 욕을 먹어지고 내가 몸이 망가지고, 배척하는 것만큼 자기가 망가져요. 또 모든 것이 욕심을 부려서 ‘내가 배척하지 말랬으니까 전부 내 거다.’ 이렇게도 생각하지 말라 이겁니다. 사람이 모두가 내 거기 때문에 놔 놓고 써라 이겁니다. 놔 놓고. 그러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가벼운 것도 없고 무거운 것도 없고 그냥 여여하게 내가 씀씀이에 의해서 내가 만 원 쓰려면 만 원 쓰고, 천 원 쓸려면 천 원 쓰고, 몇천 원 쓰려면 몇천 원 쓰고, 이렇게 다양하게 써라 이겁니다. 그 주인공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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