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는 횟수 다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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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주인공과 항상 함께하고 있는 중생입니다. 귀하신 가르침에 따라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편하여지고 집안도 모두 편안해 지는 주인공의 나툼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주인공을 관하여 부와 자가 상봉하게 하는 것이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보통 절을 하게되면 삼배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는 이배를 하거나 사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절의 횟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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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삼배를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있듯이, 하늘이 있고, 부처님이 있고, 중생이 있고, 또는 하천세계에 중생이 있고, 보이지 않는 무생이 있고 이러기 때문에 그런 모든 걸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에요. 그럼 사배는 왜 하느냐? 삼배를 하고 난 뒤에는 일체 사람들과 일체 조상들을 전부 다 한꺼번에 놓고 하는 거거든요. 하늘, 땅, 인간을 한꺼번에 내 안의 근본과 둘 아니게 놓고 한번은 진짜로 자기를 키워주신 내면의 부모이자 은사한테 하는 거죠. 그렇게 조목조목 이름을 우리 인간이 붙여놓은 거지, 이배다 삼배다 일배다 이렇게 고정돼 있는 건 아니에요.
일체 살아나가는 도리가 바로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유(有)의 법, 무(無)의 법, 만법을 다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나한테 있구나 했을 때의 그 능력이 바로 보배예요, 부처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일배다 이배다 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진실하게 내가 절을 할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자기가 몸을 구부릴 수가 있는 거지, 마음으로 구부리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몸이 구부러지겠어요. 그래서 안과 밖을 마음으로써 겸손함을 가지고 구부릴 수 있다면 몸도 구부릴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마음이 구부려지지 않으면 몸도 구부려지지 않습니다. 허락이 되지 않는걸요. 그러니 절이 그냥 절이 아니라 바로 진실한 내 마음이죠.
또, 언젠가 내가 절을 네 번 하라고 한 것은 산소에서 조상님의 유골을 이장을 하거나 할 때 전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삼배하고 마지막 일배는 내 안의 근본에 하나로 모으라는 것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이배를 하는 것이 더 맞겠지요. 그러니 그 횟수에 얽매이지 마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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