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공(空)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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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반야심경』에 보면 ‘빌 공(空)’자와 ‘없을 무(無)’자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이 공에 대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불교 사전에 보면 ‘진공묘유 진여실상’ 등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풀이하신 『뜻으로 푼 반야심경』에는 ‘색불이공 공불이색’을 ‘물질과 마음이 다르지 않고 마음은 모든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나니’ 하여 공을 마음으로 풀이하셨습니다. 그리고 법문집에 ‘모든 것이 다 공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공에다 다 맡겨라.’ 하고 자주 거론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공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우리가 공이라 하면 용무(用無)를 말하죠, 용무! 우리가 그냥 자연스럽게 움죽거린다. 그런데 우리가 그대로, 여기가 그대로, 지금 공이라는 자체 그대로입니다.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돌아가니 그대로 그냥 비었단 얘깁니다. 얘기해 드렸죠? 한 가정으로 친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됐을 때 나라고 하겠느냐, 남편이 됐을 때 나라고 하겠느냐.’ 이랬으니 그거는 어떤 거라고 말할 수 없으면서 그대로 용무가 되죠. 그냥 그대로죠. 그래서 아마 여래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대로 여래 속에서 여래의 행동을 하면서, 법이 그냥 그대로 용이면서 무다 이겁니다. 이 모두가 다 그냥 비었습니다. ‘비었습니다’ 이러면 빈 줄로만 알지 마시고 ‘꽉 찼다’ 이러더라도 꽉 찬 줄로만 알지 마세요.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구에 에너지가 다 없어진다면 무엇으로 살 것인가? 그런데 이 허공에 생명들이 꽉 찼느니라.” 했습니다. 생명이 꽉 찬 데는 에너지도 꽉 찼단 얘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용무를 그대로 알아서 진실하게 함이 없이 할 줄 안다면 에너지를 얼마든지 끌어 쓸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왜 못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왜 우리는 중생이기 때문에 죄가 많다고 생각을 하시고 우리는 왜 못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요! 해골을 놓고도 그 해골과 자기와 둘이 아닐 때 비로소 자기를 아는 겁니다.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묘지가 두 개가 있는데 ‘너, 저기에 묘지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아비 거고 하나는 자식 거니라. 그런데 양쪽에 구멍이 뚫렸느니라. 그런데 아비가 자식한테로 가면 자식으로 하나가 되고, 자식이 아비한테로 가면 아비로 하나가 되니 그건 무슨 연고인가?’ 하고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때에 스물 몇 살인데 말입니다. 알 게 뭡니까? 가만히 생각을 하는데 아, 발이 떼어 놓아져야죠. 그래서 3일을 그냥 그것 때문에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하!’ 이럭하고선 일어났죠.
생각을 해 보세요. 영에다 영을 넣어도 둘이 아니요, 이쪽 영을 이쪽에다 넣어도 둘이 아니요, 만 불을 하나에다 넣어도 둘이 아니요. 이랬으니 어찌 공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 안 하셨겠습니까? 이 묘한 법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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