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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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본문

질문

제가 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제 마음을 깨쳐 보자고 해서입니다. 스님께서도 저희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여기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랬는데 그거는 저희가 꿈을 꾼다든가 이런 걸 봤을 때 대략 그러하리라고 짐작은 갑니다만, 그러면 나라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있는 것인지, 그걸 여쭤 보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냥 간단하게 비유하려고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어린애가 죽자 그 어린애를 살리기 위해서 지옥에 들어갔답니다. 지옥에 들어갔는데, 들어가다 보니까 물이 물로 보여서 건널 수가 없고, 불이 불로 보여서 건널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불에 타 죽을까 봐 건널 수가 없고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건널 수가 없고, 온통 귀신들이 그냥 욱시글득시글하니까 귀신들한테 말려 죽을까 봐 못 들어가고 그래서 참 애를 쓰는데, 어떤 노승이 나타나서 “불도 불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요, 귀신도 귀신이 아니니라. 따로 없느니라.” 하는 말을 듣고 그 불로 그냥 어청어청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가 그려 놓은 모습일 뿐, 모습은 본래 없으니까 불에 탈 리가 없죠. 그래서 지옥에 들어가서 그 어린애 영혼을 다시 데리고 나와서 애를 살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지금도 매우 많죠. 그런데 어떤 거는 그렇게 못하죠.

그러니 여러분이 직접적인 실험을 자꾸자꾸 해 보십시오. 내 말이 거짓말인가, 아닌가? 한 찰나가 바로 저승이고 한 찰나가 이승입니다. 한 생각이 빛보다 더 빨라서 한 찰나에 천당에 가고 한 찰나에 지옥에 가고, 한 찰나가 바로 이승이며, 이승의 천국이며, 이승의 지옥이죠.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에 따라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 드려도 말로는 100% 꼬집어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 진짜 나를 발견하고, 발견하면서도 습을 떼고, 또 습을 떼면서도 둘이 아닌 도리를 배우기 위해 또 습을 떼고, 또 뭉쳐 놓고 뭉쳐 놓고 가다 보면은…. 그 보적 장자 아들이 왜 일산을 바쳤느냐? 칠보로 장엄을 했지만 둘이 아니게끔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고 맘대로 자유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열반, 그 계단을 밟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 그렇게 일산을 바치고 열반계의 구정토를 다 증득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참으로 이 공부를 하려면, 손을 꼽고 기도를 해서 내가 잘되게 빌지 말고 내 한생각으로 그냥, 그냥 돌아가게 하세요. 밖에다 기도를 하면서 맹종해야 되겠습니까? 죽으나 사나 자기를 이끌고 다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자신이라고 하면은 똑 참하겠는데 왜 주인공이라고 그러느냐? 자기 몸뚱이가 공했고,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죠, 먹는 것도 그렇죠, 바로 가고 오는 것도 그렇고, 듣는 것도 그렇고, 만남도 그렇고 전부 그렇게 돌아가니 어떻게 주인공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다 주인공으로 인해서 그렇게 돌아가니 그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의 올바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라고 똑같이 부르면 안 되겠으니까 여러분 부모님들께서 이름을 지어 놓고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이래야 뭐를 시킬 때도 그렇고 부를 때도 그렇고, 알아듣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편하게 그렇게 이름을 지어 놓은 거지 그 이름이 말해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름 있기 이전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라는 이름 있기 이전이 바로 자기, 참불성 자기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주인공이라는 이름과 참자기와 또 둘로 보지 마세요.

엊그저께 일입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아주 죽게 됐대요. 죽게 된 것도 그렇지만 인체의 건은, 한마음 그 의식에 모두 달려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의식들을 한마음으로, 정말 주인공 자성부처로 인정을 해 준다면, 그 의식들이 그렇게 작용해서 건강하게 할 것이 아닙니까? 아니, 머슴도 존대를 해 주면서 인정을 해 준다면 자기 목숨 걸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자기 집 속에 있는 생명들한테 중생이라고 그러면서 ‘아이고, 그것들 그냥 모두 세균 잡속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자기 몸뚱이를 이끌어 가는 그런 생명체들을 우습게 보니까 ‘네가 우습게 보는데, 뭐.’ 하고 거기에 따라서 그대로 그냥 움죽거리는 거죠. 어린애를 자장자장 하니까 곰이 그것을 흉내 내서 자장자장 하다가 어린애를 죽이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미련스럽거든요. 그러니까 내 마음을 잘 내서 오직 나로 인정을 해 줄 수 있다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죽일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이치가. 자기를 자기가 죽일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몸은 스스로 건강해지는 거죠.

또 내 주인공과 자식의 주인공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고, 내 자식이 저렇더라도 주인공은 둘이 아닌데, 뭐.’ 그러고선 주인공에다 맡겨 놓으면 그 주인공까지 또 밝아지거든요. 이 얼마나 좋은 행입니까? 부처님이 그렇게 좋은 법을 가르치셨는데 우리가 지금 모르는 것은, 요 물 컵 하나에 물이 이렇게 담겨야 그릇에 물 담긴 걸 볼 텐데, 요렇게 쓰러뜨려서 반쪽으로 해 놓고서는 요 물, 요것만 보게 만들어 놨으니 그 가르침이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당장 지금 부모만 우리 부모인 줄 알게 돼 있죠. 그러나 부처님께서 해골 무더기에다 절을 하실 때에는 ‘야, 미생물에서부터 거듭거듭 수없는 광년을 거쳐 진화돼 오면서 내가 어느 생에 벌레의 부모가 안 돼 본 예도 없고, 사람의 부모가 안 돼 본 예도 없고, 사람의 자식이 안 돼 본 예도 없고 또 벌레들의 자식이 안 돼 본 예가 없느니라, 한마디로 말해서. 그러니 모두가 내 부모 아닌 게 없고 내 자식 아닌 게 없고 내 형제 아닌 게 없으니 지금 당대의 이 부모만 부모로 알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바로, 더 지혜를 넓혀서 크게 본다면 그냥 아주 바다로 나가서 용이 돼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춤을 출 겁니다, 아마.

재차 한마디 하겠는데요, 그대로 우리가 공부하면서 실천으로 옮겨 가려면, 병고든지 가난이든지 안되는 일이든지 뭐든지, 그 용도에 따라 닥쳐오는 대로 일체 만법을 공부하는 재료로 삼으세요. 그런다면은 앞으로…. 여러분이 ‘야! 이런 거구나! 이런 거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고 한 번 쳐다보고 웃고 한 번 내려다보고 울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를 겁니다. 학설로만 알아서 ‘큰스님이다. 내가 다 알고 있다. 또 내가 다 알고 이렇게 행하니깐 뭐 물을 것도 없고 자실 것도 없고 뭐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내가 빨리 하겠다고 생각도 마시고요. 이것은 빨리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빨리 안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목마르면 이렇게 그냥, 시간도 공간도 없이 내가 목마르면 그냥 마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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