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의 경지가 어찌 바른 깨달음인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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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의 경지가 어찌 바른 깨달음인지요?

본문

질문

초발심(初發心)이 곧 바른 깨달음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 자신도 삼보에 귀의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캄캄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초발심의 경지를 어찌 바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삼천 년 후나 삼천 년 전이나 그냥 오늘인 것입니다. 마음은 체가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없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실히 믿고 진실히 놓는 작업을 할 때, 또는 진실히 구하고 물러서지 않을 때, 그것이 바로 자기가 아닌 자기와의 만남의 소식을 얻을 수 있는 거고, 한생각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은 그렇지 못해요. 바깥으로 끄달리고 모든 행도 말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초발심에 깨치지 못하는 것이지, 초발심이 십 년이 갔든 이십 년이 갔든 하루가 갔든 일 초가 갔든 둘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초발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깨달음이란 한 찰나니깐.

그러니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동시에 뜻과 더불어 같이 진실하게, 물러서지 않고 믿고 놓을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십 년이 갔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있어서는 십 년과 일 초와 맞먹습니다. 그러니 초발심이죠. 그러니 깨닫지 못하고 깨닫고 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먹고 행하고 말하고 뜻하고 모든 것이 결부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 컵 하나라도 그것이 빠지면 안 돼요. 결부됐으니깐 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생산이 된 거죠. 지수화풍 그 자체가 결부가 됐으니까 이것이 나온 것입니다. 즉 바로 흙과 물로 개어서 바람에 말려서 불에 굽는 겁니다. 그렇게 인연에 따라서 한데 결부가 돼서 작용이 되기 때문에 컵 하나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도 그냥 벌로 볼 게 아니죠. 우주의 개공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빈 그릇이 나와서만이 다가 아니라 바로 이 컵에다가 물을 담아서 먹어야 이 컵이 컵이라는 빛이 있는 거지, 담아 먹을 수 없다면 아무 뭐 빛이 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깐 물 담아 먹고 음료수 담아 먹고 이렇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우주 개공이 이 컵에도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초발심에 삼천 년이 갔다 하더라도 행하지 못한다면 초발심도 없는 것이고 행한다면 일 초도 안 된다 이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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