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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안 되고에 집착을 하는데

본문

질문

주위의 신도님들 중에 주인공에 관하고 맡겨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만이 공부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부를 못하는 거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되고 안 되고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진정 내 안의 근본을 찾는 일은 부차적인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우리 주위의 유사 종교에서 “나무묘법연화경”을 염하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께서 나쁘고 좋은 건 다 아시죠? 이거 하면 나쁘다 좋다 이런 건 다 아시지 않습니까? 강도도 강도질하는 게 나쁘다는 거 알면서 합니다.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도둑질이나 사기질이나 이런 거 하는 것도 번연히 나쁘다는 걸 알면서 하는 거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이 ‘주인공’ 하면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탄생을 했다 하면 주인공입니다. 생명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거, 이것이 종합해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부처인 줄로 아는 것도 또는 부처가 아닌 줄 아는 것도 놓으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대로 주인공이자 주인공이 과거로부터 벌여 놓고 어저께 벌여 놓은 게 오늘에 닥치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저지른 것 당신이 해결하라’ 이겁니다. 누가 대신 아파 주고 대신 죽어 주고 대신 해 주는 사람 봤습니까? 자기가 저질렀으면 자기가 거둬야 하는 것이 분명한 거죠. 자기가 잘못 저질렀으면 자기가 고통을 받는 것이요, 자기가 잘했으면 자기가 즐거울 것이요. 여러분을 이끌고 성품을 발견해서 제대로 걸음을 걷게 하려면 자기가 저지른 것 자기한테 되놔라 이 소립니다.

자기가 본래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예를 들어 말하자면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어른이 됐으니까 일을 하는 거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주인공이 다 일들을 하고 모두 행하고 생활을 하고 나가지 않습니까. 딴 놈이 해 주는 거 없죠? 각자 하는 거죠? 과거에도 그렇게 살아왔고 현실에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사는 것을 자기 주인공한테 되놓으라는 거고 되입력을 하라는 겁니다.

물질적인 입력은 한계가 있지만 인간의 컴퓨터에다 입력하는 거는 한계가 없고 자동적입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자기가 저지른 거 현실에도 자기가 저지르고, 잘하고 잘못하고 그렇게 가는 거 아닙니까. 잘하든 잘못하든 모든 걸 당신이 하는 거니까 몰락 당신한테다 놔라 이 소립니다. 그렇게 자기가 저지른 거고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자기가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생활 전체가 바로 자기가 하는 거지 누가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자기한테다 되놔서 입력이 되게 하라 이겁니다. 자기가 한 것대로 입력이 돼서 현실에 자꾸 나오니까 그 자리에다가 되놔서 되입력이 된다면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면서 새로이 입력이 들어가는 대로 현실에 또 나올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에다가 자꾸 놓고 관(觀)하는데도 안 됩니다.” 이러거든요. 이건 아주 하근기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모든 건 여러분, 각자 여러분께서 하는 겁니다. 잘하든 못하든 못났든 잘났든. 그러니까 여러분이 주인공의 뿌리요, 주인공이지 다른 분들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통해서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 주인공에서 하는 거,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거 모든 것이 주인공이 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주인공이 모두 하는 거, 바로 주인공이 하는 거지 누가 하는 겁니까? 그런 걸 주인공에다 되놔라 이 소립니다. 그래야 주인공의 그 성품을 발견할 수가 있죠. 어떻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각자 여러분이 그대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을 주인공한테다 되놔라 이겁니다. 그러니 못 믿고 믿고 이런 게 없죠. 그렇게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은 그 심성(心性)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주인공에다가 관하고 그랬는데, 주인공은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안 되느냐?” 이런 게 나옵니다. 여러분이 지금 생활하는데, 만약에 부산으로 차를 타고 갔으면 타고 올 수도 있어야죠.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타고 하는 것을 모르십니까? 죽고 살고 죽고 살고 해야 이 끊임없이 이어서 진리의 길이 되는 거지, 끊어진다면 어떻게 진리라고 하겠습니까? 또 우리가 잘못하는 일도 있고 잘하는 일도 있는 것이지 어떻게 여러분이 다 잘하고 가십니까? 그러니까 자기의 마음의 선장을 만들어 놓고, 아까 얘기처럼 잘못하게 되면 그 잘못하지 않게 가차 없이 쳐서 거기다가 되놓고 잘못하지 않도록 이렇게 다스리는 겁니다. 너무도 잘못하고 잘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잘되는 건 감사하게 놓게 하고 또 잘 안되는 거는 ‘아, 나를 가르치느라고 이러는구나!’ 하고 ‘너만이 잘 되게 할 수 있잖아!’ 하고 돌려서 놓는다면 ‘이거는 안 되는 것도 알고 되는 것도 아는구나!’ 하게 되니 안 되는 거와 되는 거 그 가운데서 진짜 성립이 돼야 되는 것이죠. 내리고 타는 그 가운데 있는 거지, 내리고 타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잘되고 못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잘되고 못되는 그 가운데에 자유인이 성립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인이 되려면 그 주인공 가운데서 바로 내 성품이 발견돼야 됩니다. 그렇게 발견되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거, 여러분이 주인공이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게 공(空)했으니까 모든 걸 주인공에 되놔라 이겁니다. 무슨 못 믿고 믿고가 없어요. 종교를 믿고 안 믿고 하기 이전에 바로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났으면 주인공이자, 바로 주인공이 살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상대를 겪고 이렇게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 주인공이 그렇게 하고 살고 있는 것을 주인공 자기한테다 다시 ‘네가 하는 거니까 잘할 수 있잖아!’ 하고 자꾸 마음의 계발을 시키면서, 발전을 시키면서 창조력을 기른다면 그 가운데서 성품의 작용이 드러나게 되고 성품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자체가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모든 생활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마음을 발전시키려면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를 주인공에다가 모두 되놔라. 잘하는 건 감사하게 놓고 잘못하는 건 잘하게 굴려서 놔라.” 하는 그것이 배움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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