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은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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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은

본문

질문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이 제게는 좀 생소한데요, 좀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보통 여러분은 어떤 일이 생기면 현재 의식에서만 알거든요. 거기서 복작복작하다가 해결을 하고 거기서 복작복작하다가 그냥 병이 들고 그러지요. 그래서 “지견으로 살아라. 소견으로 살면 병든다.” 이러는 겁니다. 또 소견으로 살면 모든 게 나한테 다복하게 오질 않아요. 지혜롭게 살아야지. 그래서 우리가 잠재의식 쪽에다가 조금만 여유 있게, 뭘 하면서도 생각은 급히 하면서, 회사를 가든지 일을 하든지 하면서도 잠재의식 속에다가 좀 ‘아하! 이 세상에 나기 이전에도 바로 내가 있었고, 지금 현재에도 몸은 비록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뼈와 살을 빌려서 몸이 났어도 내 몸속의 수십억 마리에 관한 의식은 바로 인으로 인해서 과가 돼서, 내 몸뚱이 속에 모두 이렇게 소임을 맡아 가지고 운행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내 마음은 지배인과 같아서 내 마음 한생각을 하는 데에 모두 따라 줍니다. 그러니까 안에서 따라 주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잘 포용력 있게 해 나가는 것, 바깥에서 따라 주고 이렇게 해서 안팎이 없이 이 생활을 진행하는 것이 그 삶의 보람을 느끼는 우리 자유인의 생활이 아닐까 이렇게 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 절에 오면 삼배를 하게 합니다. 즉 말하자면 “법당에 들어오면 삼배를 너희 스스로 하라.” 이렇게 했거든요. 그건 뭐냐 하면 일배는 모든 천지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에 직결돼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공생이자 공심이다 이겁니다. 우린 혼자 사는 게 없어요, 독불장군 없듯이. 사장이 있으면 직원이 있고 직원이 있으면 사장이 있듯이, 사장이 없는데 직원이 어떻게 삽니까? 직원이 없는데 사장이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그 생명들은 공생·공용·공심·공체·공식화하고 있지요. 그런 것이 이게 한데 합쳐서 모든 것을 내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 즉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의 근본, 내가 마음을 내면 법, 마음을 내니 몸뚱이가 움죽거리니까 승. 이래서 삼보에 귀의한다 이런 겁니다. 자기 삼보에 귀의한다는 겁니다, 이게. 그러니까 자기한테 결국은 고개를 숙여서 자기가 겸손한 거를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한테 절하는 거지, 이 고깃덩어리한테 뭘 하게 절을 하겠어요? 이걸 대상을 두고서 한번 이 몸뚱이에다 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닌 까닭에 거기다가 내가 겸손하게, 즉 말하자면 지견으로써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주인공에 자기가 바로 절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내 주인공을 믿고 거기다 맡기고 ‘거기서밖에는 해결해 줄 수 없다.’ 앞으로도 그렇고 모든 일에 용도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서 ‘바로 내 주인공밖에 나를 이끌어가 주는 게 없다.’ 한다면 자성 삼보는 첫째로 기름, 영원한 생명의 근본, 또 생각을 냈다 하면 운전수, 또 차는 이 몸뚱이와 같아요. 마음이 움죽거리지 않는다면 몸뚱이가 움죽거려지지 않아요. 의식이 빠지면 송장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는 거예요. 차가 없어도 안 되고 기름이 없어도 안 되고 운전수인 나가 없어도 안 되고. 그러니 삼위일체가 다 구성돼서 서로 공해서 찰나 생활을 하는 거지요. 찰나찰나 돌아가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이 세상의 진리는 공했다. 진리는 쳇바퀴 돌듯 하는 거며 인간이라면 우리가 체로 쳐서 거르는 거와 같아요, 이 삼차원의 중세계가. 체에다 쳐서 상세계로 올리고 하세계로 떨어지고, 중세계에서 윤회에 말려서 그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내 한생각이면 이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의 의식도 다 한마음을 따라 줘야 돼요. 따라 주게 만들어야 돼요. 바깥에서도 그렇고. 이게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도 세균이 있다, 영계가 있다, 유전성이 있다…. 이런 게 그냥 들어오는 줄 모르게, 여러분이 주장심을 가지고 믿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기 주인공을 믿지 않는다면 바로 주인이 없는 거와 같아서 바깥에서 세균이 들어오든 영계가 들어오든 유전성이 들어오든 그건 막을 수가 없어요. 내 집 안에 주인공이 있어야만이 바깥에서 나그네가 와도 “게 누구요?” 그렇게 해서 아는 사람이면 들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들이지 않아요. 이렇게 해야만이 내 몸을 잘 이끌어 가지고 갈 수 있죠. 모든 게 다 그래요.
 
그러니까 나로부터 이 세상이 있는 거지, 내가 없고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믿을 게 뭐 있겠어요? 대신 죽어 주지도 않아요. 아파 주지 못하죠, 먹어 주지 못하죠, 똥 눠 주지 못하죠, 자 주지 못하죠. 그러니 현재의 나는 바로 내가 나기 이전 영원한 자기의 근본을 안 믿을 수가 없지요. 그 근본으로 인해서 어머니 아버지의 정자와 난자와 자기 영혼이 거기 포함됐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구성된 겁니다. 그런데 자기를 어찌 믿지 못해요?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 광년을 흘러 내려오면서 쫓고 쫓기면서 진화돼서 사람까지 됐는데 자기 끌고 나온 거를 믿지 못해요? 어림도 없지요. 자길 믿지 못하면 자기 몸뚱이가 벌써 구덩이에 들어가서 일어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져서 허덕이고, 이러는 문제들이 한두 건입니까, 어디? 죽어도 살아도, 변소엘 가도  항상 나하고 같이 있는 건 내 주인공밖에, 나를 이끌어 주는 건 내 주인공밖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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