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태어나 고통받으며 사나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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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태어나 고통받으며 사나

본문

질문

태초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편했을 텐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인간까지 와서 수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생각을 가만히 해 보세요. 바람이 있고 흙먼지가 있고 물이 있고 이건 스스로 자생으로서 그냥 생긴 거죠. 이건 자연의 원리면서 자연의 이치예요. 그렇게 생겨서 우리가 모아지고 모아지고 하다 보니깐 원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생명체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이날까지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도 제일 나중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제일 나중에 돼서 인간이 살다 보니깐, 진화도 되고 문리도 터지고…. 지금 보세요. 의학이나 과학이나 얼마나 많이 방대해졌나.
 
그러나 우리가 최초에 내가 어디서 온 거를 모른다면 모두가 아주 귀한 과학자가 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자가 아니죠. 남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고, 남의 일을 모두 우습게 생각하고 깔보는 유가 많고, 아상과 아만이 많아서 돌아보질 못해요. 지금 이 말을 했는데 왜 스님은 저 말을 하시나 이러시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왜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곤충으로서부터 인간으로 올라오기까지 수만 년, 아니 헤아릴 수도 없는 그 세월을 이렇게 얼마나 많은 광년을 거쳐 왔나. 우리가 지금도 그 숫자가 없죠. 숫자가 없이 지금도 가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이게 곤충이 너무 성하고 악이, 너무 독이 많으면 그냥 멸하게 하거든요. 죽게 만들고, 어떻게 돌아가든지 죽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중에도 인간이 이렇게 문리가 터지고 이렇게 저거 하면 이 중세계를 벗어나게 되거든요. 중세계를 벗어난다 하는 건, 이 인간도 말하자면 곤충의 주머니예요, 이게. 곤충의 주머니. 그런데 독의 곤충의 주머니냐, 선의 곤충의 주머니냐. 이거에 따라서 이 곤충의 주머니가 벗어지고 곤충의 주머니를 더 만들고 이러는 거죠. 만약에 그러한 문제가 없었다면 우린 이 산하대지가 전부 새카만 그냥, 뭐라고 그럴까? 까만 그냥, 뭐라고 말을 해야 옳죠? 허허.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이 또 불에서도 살고, 캄캄한 데도 살고 모두 사는 게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또 생기겠죠.
 
그러니까 이거는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니까 이 공부를 어서어서 해서 이 벗어나는 데만 노력해라. 그렇다고 해서 인정을 베풀거나 그러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항상 베풀면서 자기 정신계의 자기, 자기를 꼭 붙잡고, 물질계의 자기는 정신계의 자기를 믿고 오직 거기다 맡기고 길을 걸어라 이거죠. 어쩔 수 없잖아요, 이왕지사 태어났으니. 
그래서 자기가 태어났으니까 상대도 있고 종교도 있고 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도 있지 아, 당신이 없다면 뭐가 있겠어요? 이게 말을 하자면 그것이 얼마나 긴 말인 줄 아세요?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이 말을 하자면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못다 하고 내일까지 해도 못다 하고 모레까지 해도 못다 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왔든 인연이 있으니깐 나왔겠죠. 나왔으니깐 나부터 알아야지, 내가 없는데 어떻게 상대가 있고 종교가 있느냔 얘기예요. 그러니깐 부처님께서 아주 간략하게 “네 나무는 네 뿌릴 믿어야 공덕이 있느니라. 딴 나무에서 네 나무에게 에너지를 보내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너는 네 뿌리에서만이 네 싹을 돕는다.” 이렇게 간략하게 가르쳤어요.
 
우리가 지금 절에서 공양 올린다 하는 것도 이게 전부 가르치는 도의 길입니다. 말은 그럭하면서 그 뜻이 뭔지 몰라서 걱정이죠. 예를 들면 “꽃공양” 이러는데, 어떻게 이 세상이 벌어질 때에 꽃만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나무도 생기고 전부 생기고 난 뒤에 그것이 생겨 가지고 자꾸자꾸 진화됐으니깐 무척 오래 있다가 인간이 나온 거죠. 그 기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그걸 벗어나려면 이게 모두가 공해서 공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려야, 한마음으로서, 공심으로서 공양을 올려야 공덕이 되지, 공심이 아니고 그냥 갖다가 삐쭉…. 이거를 올릴 때는 딴 생각 없어야 돼요. 그런데 벌써 머리에 떠오르는 게 내 아들, 내 남편 뭐, 뭐 뭐 이런 게 생기지, 이 꽃공양을 한다는 거는 생각지도 않아요. 이거 갖다 그냥 놓으면서 말입니다. 아니, 그러니 이게 적응이 됩니까. 이게 공덕으로 적응이 되느냐고요.
 
이 마음도 그래요. 벌써 쌀을 갖다 놓고 초를 켜고 그럴 때 이 촛불을 켜는 게, 내 마음의 불을 켜고 나면 내 이 몸이 타서 깎아지는 듯한 그 애처로운 마음으로써, 그 공심으로써 공양을 올려야지, 부처님께서 공심인데 내가 공심이 아니면 어떻게 맞아 들어가겠어요? 이 발우공양도 공양이라고 그러죠.  왜 공양이라고 그랬느냐. 스님네들만 앉아서 먹는 게 아니잖습니까. 스님네들은 곤충의 바가지에요. 중생들의, 즉 말하자면 주머니들이죠. 주머니가 그 주머니 구녁 뚫린 데로 그거를 넣어요. 허허. 주머니 구녁 뚫린 데로 넣는다고요. 거기서들 죄 발라서 제가끔들 모두 먹어요. 그러고 자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라느냐. 이 사람 하는 행동 따라서, 의식도 다 거기에 따라서 가거든요. ‘먹기 싫어도 주는 대로 먹어.’ 그러고선 넣어 준단 말입니다. 살기 위해서 그냥 살아가니까, 살아가니깐 “살기 위해서”라는 것도 없고 그냥 살았으니깐 살기 위해서 우린 먹는 거죠. 그런데 그게 주머니라는 걸 몰라요, 모두. 곤충의 주머니라는 걸 하나도 납득을 못 해요. 그래 그 구녁 뚫린  데다가 넣어 주는데 어떻게 내가 먹는 겁니까? 이 주머니가 먹는 겁니까? 이 주머니 속의 곤충들이 먹는 거지.
 
그러니까 악의 독이 있는 곤충의 주머니냐, 독이 없는 곤충의 주머니냐. 여기에 따라서 또 많은 문제가 생기죠. 독이 있는 주머니에서는 독성이 생산이 되는 거고 독이 없는 주머니에서는 독성 있는 데 잡아먹히고, 이러더라도  선의가 발생되는 거고 그런 거죠. 우리 인간만 그런 게 아니에요. 옛날에 인간이 아주 적었을 때는 어디 가면, 하다못해 까마귀들이나 이런 벌들, 개미들 이게 뭐, 거꾸로 메달려서 하는 거 뭐죠? 박쥐! 허허. 난 이름도 모르지만 그런 것들도 사람만 만났다 하면 금세 와 덤비죠. 그러면 금세 없어졌답니다. 그 박쥐는 박쥐대로 먹고서 그래도 뼈다귀는 남기니까, 껍데기는 남기고 그러니깐 뭐, 딴 것들이 먹고 이렇게 하지만, 이 개미라는 거는 뼈다귀 속에까지 들어가서 다 먹어 치워요.
이게 곤충의 주머니예요. 이게 곤충의 주머니에서 한번 벌어졌다 하면 정말…. 그래서 요즘 내가 이렇게 말을 하죠. “정신계에서 정신을 뺏어 먹고 사는 거니깐 정신을 뺏기지 않으려면 정신계의 내 주인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이런 거요. 정신을 뺏어 먹고 정신을 뺏기고 이렇게, 육이 있는 거는 육을 뺏어 먹고 죽이고 살지만 이 사람들은 정신을 뺏기고, 정신을 뺏기곤 그때서는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스러지는 거죠. 이게 현실이에요. 그냥 옛날 얘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와 같이 우리의 곤충의 주머니를 다 벗어 버리기 위해서 모든 거를 그대로 놓고 가야 한다. 그대로 남을 섭섭지 않게 해야 한다. 말을 항상 조심해서 해야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이쪽이 성을 내고 하면 저쪽도 감촉이 좋지를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저거 하면 이 곤충이 빨리 진화되지 않죠. 그래서 이것이 빨리빨리 되려면 그렇게 해서 이게 둘이 아니어야 한다.
 
이 마음공부 하는 분들은 반 이상이 벌써 다 줄고, 어떤 분들은 반이 줄고, 어떤 분들은 삼분의 이가 줄고, 그냥 요만큼 남고 다 줄어 버리고 없고 이런 분들도 많아요. 이거는 누가 일러 줘서 아는 게 아니라 벌써 이게 통하거든요, 감촉으로 다, 다 통해요. 악성은 악성대로 통하고 선의면 선의대로 통하는데, 악성은 악성대로 왜 선의로다가 이끄느냐. 독을 빼면 선의가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독성을 빼기 위해서 이런 거를 저거 하면 독성이 다 없어지면서 이것이 99%가 부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에 이 중세계를 떠나게 된다 이런 거죠.
 
그런데 왜 태어나게 돼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랬는데 지금 세상이 이러니 세상대로 따라가려니까 얼마나 고초가 많습니까. 하여튼 여러분들, 이 사람으로 치지 마시고 곤충의 주머니로 치시고 항상 ‘그 곤충 주머니나 곤충이나 둘이 아니고, 우리도 이런데 모두 딴 사람들도 다 둘이 아니겠지.’ 하고 모두가 둘이 아니라고 생각을 할 때에 바로 그 믿어지는 거, 그 방망이 하나면 이 온 우주를 때려잡고도 남음이 있어요. 이거, 이 방망이요. 이 주인공이라는 자기 뿌리인 불성 말이에요. 이거면 이 세상을 다 잡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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