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가 같은데 벌레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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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스님의 가르침을 접한지 한달도 못되는 햇병아리입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새로워서 자꾸만 듣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스님! 본래 자성(自性)이 부처임을 깨우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둘 아닌 도리를 깨우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든 이에게 섭섭지 않게 대하고, 성내면서 말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하고 함이 없이 나툰다는 실천적인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컴퓨터에서 불러오기를 하여 덮어쓰기를 했을 때 이전 내용이 지워지고 새로운 내용이 입력되니 나온 곳에 도로 놓으라는 충격적인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왕초보인 저의 귀에도 잘 들리도록 쉽게 쉽게 법문해 주셔서 더욱 더 고맙습니다. 스님! 저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미, 파리, 모기, 바퀴벌레 등등의 벌레를 예전에는 휴지로 싸서 죽이기도 하고 손으로 눌러 죽이기도 하고 약을 뿌려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무게가 같은 것을 안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불법은 참으로 묘법입니다. 그것은 단번에 죄업과 인과를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새나 벌레 따위를 죽이게 됐다고 할 때, 그 순간 우리의 생각을 근본으로 돌려서 그 생명과 내가 곧 바로 하나가 된다면 죽은 생명은 찰나에 제도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얼른 잘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어떤 악한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한생각만 잘내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해서, 윤리나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냐’고 걱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누누이 강조하거니와 문제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간절한 믿음입니다. 눈앞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하나라는 원리를 뼈저리게 믿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생명을 주인공 자리에 되돌려 맡겼을 때 그 살생은 이미 살생이 아닌 것이요, 오히려 제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죄라는 것은 그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죄도 본래는 공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죄가 있으면 그에 따르는 업보가 있기 마련인 것이 유위법(有爲法)입니다. 자기가 한 행위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며, 선한 행위에는 선한 보답을, 악한 행위에는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위법을 떠나 저 무한광대한 불법의 진수에 들게 될 때엔 이미 그런 인과응보 따위는 훨훨 벗어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난다’는 속담도 이미 맞지 않게 됩니다. 그 차원에서는 콩 심은 데서 콩이 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히려 콩 심은 데서 팥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묘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하면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진리입니다. 중생심으로서는 콩 심은 데서 팥이 난다는 이야기가 이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불법이 무한광대하고도 미묘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이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살생을 해서는 안되지만 부득이 한 경우에는 그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근본에 맡긴다면 오히려 그 생명이 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또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생각하고 나와 같이 생각하는 그런 대장부가 되도록 더 열심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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