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不二)의 생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문
질문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 모든 생명과 내가 본래 둘이 아니고, 일체제불과도 둘이 아닌 한마음”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그렇지 않고 도태되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그런 절박한 생활속에서 나와 남이 둘 아니고 하나이니 모든 것을 쟁취하지 말고 불이(不二)의 생활을 하라고 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저희들이 실행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가르침도 따르면서 사회생활을 순탄하게 해 나갈 수 있는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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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일체제불의 마음이 내 한마음이고 일체제불의 법이 곧 내 한마음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과 우리들은 언제나 한몸이요, 한마음인데 어떻게 부처님께서 중생의 아픔을 따로 보실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중생들은 그런 근본까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너와 나를 나누고 서로 이(利)와 득(得)을 다툽니다. 그렇지만 수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런 분별은 적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중생들의 짐작과는 다르게 크나큰 평화를 줍니다. 우리들은 수억겁을 두고 오직 남을 이기고 짓눌러야만 자기에게 이익이 있는 줄 아는, 그렇게 살아온 뿌리깊은 습(習)에 젖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별을 놓아라, 집착을 놓아라, 이익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치면 우선 몸부터 사립니다. 행여나 무엇을 빼앗길까, 행여나 애써 얻은 것들을 놓치지 않을까 해서 본능적으로 집착을 가지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진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간곡하게 가르치셨고, 역대 선지식들께서 누누이 이르신 이 무심법(無心法)과 놓아나가는 법은 결코 수행자들의 이익을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사정은 오히려 그와는 반대입니다. 일체의 경계를 쉬어 수행자가 자기의 욕망을 차츰 조복받아 가다 보면 도리어 내면에서 크나큰 안심과 대평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심과 평화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하고 깊은 행복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습을 가지고 얼마 살지도 못할 거를 왜 가짜 짓을 하면서 삽니까? 돈 벌려니 괴롭고, 뺏기지 않고 모아놓으려니 괴롭고 모아놓으면 놓은 대로 아직 이것밖에는 없다 싶으니 괴롭고…. 아이구, 이게 얼마나 가짜 놀음을 하고 사는 건 줄 아십니까? 여러분한테 주인공에 모든 것을 놓고 맡기고 살아라, 거기밖에는 해결할 수 없다, 거기밖에는 감사한 데가 없다, 이러는 것은 ‘재산을 버려라,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돈 벌기 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누가 돈을 다 버리랬습니까? 올바로 쓰기가 벌기보다 더 어렵다는 그 사실만 알면 되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있어도 같이 가주지 않는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그러니까 쓸데다 쓰고 편안하게 살라고 하는 겁니다. 두 손을 펴고 오그릴 줄 모르면 정상이라고 할 수 없죠? 또 주먹을 쥐었다가 펼 줄을 모르면 이것도 또 정상이 아닙니다. 폈다 쥐었다 폈다 쥐었다 자유자재해야 이게 정상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정상의 삶을 그대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살 줄 알아야 진짜 사람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불자라고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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