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놓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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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요즘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살기도 막막한데 애들은 애들대로 말썽을 부리니 마음이 자꾸 우울해지기만 합니다. 놓으라 놓으라 하시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놓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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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내가 자주 얘기했죠. 큰 솥에다 팥죽을 쑤는데 말입니다, 팥죽 방울이 너무 많거든요. 수도 없이 그냥 막 끓어오른단 말입니다. 여러분 배 속에서도 수없는 생명의 의식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놓는 데도 한 군데, 나오는 데도 한 군데다 이겁니다. 그런데 요 방울 조 방울, 요 방울 조 방울이 연방 나오는데 한 군데서 나와서 한 가지로 고정되게만 한다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마는 천차만별로 다른 방울이 그냥 솟아 나와요. 그 죽솥에서 죽방울이 말입니다. 방울은 작고 크고 달라도 죽솥에서 나오는 거니까 죽솥에다가 놔라 이런 건데, 즉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요놈도 문수! 요놈도 문수!" 하고 죽방울이 나오는 대로 주걱으로 쳤다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그것이 다 용도가 다릅니다. 우리가 살림하면서 별게 다 나오는데, 병고로 인해서 걱정, 가난해서 걱정, 회사에 가서 상사들한테 꾸중을 들어서 걱정, 또 애들이 속을 썩여서 걱정, 또 부부지간에 싸워서 걱정, 돈이 없어서 걱정, 뭐, 걱정도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러니까 “죽방울은 죽방울인데 그렇게 다른 죽방울이니 그것들이 다 한 죽솥에서 나온다 하는 것만 믿고 알아라. 그러면 거기에 다 놓는 거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솥의 죽방울이니 걱정을 하지 말고, 당장 애가 나가서 죽는다 이러더라도 걱정을 안 하고 '거기에서 나온다' 하는 거를 안다면 그 애는 나가서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 것이 벌써 전체 통신이 되기 때문이죠. 가설이라고 그러는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내 형이라는 거를 알고 있으니까 가설이고, 아들이라는 거 마누라라는 거 알지, 어머니라는 거 알지, 다 알잖아요, 여러분 가족은. 그러니까 급하면 급한 대로 절친하면 절친한 대로 다 알아요. 알기 때문에 가설이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한생각을 그렇게 하는 동시에 바로 식구들까지도 다 통화가 돼요. 거짓말 아니에요. 통신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벌써 '난 집으로 들어가고 싶구나.' 이러곤 저절로 들어오죠. 자동적이에요, 그건. 이렇게 자동적으로 사람을 다뤄야 그게 이심전심이에요. 두 마음이 아니고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겁니다.
애들이 잘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난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다면 어른이 생각할 때 천부당만부당할지라도 "그래, 네가 하고 싶으니까 해 봐라." 그러고선 아주 좋게 그냥 받아 주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만 경험하고 딱 돌아서게끔 마음에다 관해 놓으면,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나가서 다 해 보고는 "아이, 아버지. 나 그거 고만두겠어요." 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고만두니?" 외려 그러면은 "아, 이만저만해서 그러니까 저 다른 걸로 하겠어요." 한단 말입니다. 요렇게 해서 사랑과 자비, 의리, 이심전심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 관심, 이것이 진짜 사랑이죠.
그런데 그냥, 나가서 조금만 잘못됐다 하면 그쪽 이유는 듣지도 않고 "야이, 이놈의 새끼야. 너 어디 갔다가 이제 들어왔어, 공부하라니까? 이 애비는 땀 흘리고 벌어다가 너희들 공부시키는데!" 이럽니다. 누가 아니라나요? 하하하…. "그렇게 공부시키는데 요놈 새끼, 어디 가서 자고 들어와?" 그쪽 사정은 알아보지도 않는 겁니다. 내 속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해 버리는 거예요. 이거는 내가 먼저 내 얘기를 하기 이전에 상대방 얘기부터 듣고, 잘못됐으면 "얘,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니?" 하고 주인공에 맡기는 거, 또 그렇지 않으면 ??얘, 그렇게 해서 못 들어왔구나. 그건 참 잘했다. 네 친구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참 잘했다. 사나이가 그런 의리도 없이 어떻게 살아나가겠느냐." 아, 이렇게 좀 북돋아 주면 나가서 잘못하래도 안 해요.
이것이 부모가 삼분의 일 가르치는 일이고, 삼분의 일은 자기가 자작하며 이끌고 다니는, 바로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잡아서 나가는 거, 삼분의 일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거, 이렇게 3단계가 한데 합쳐지게 되면요, “이랬어, 저랬어” 이러지도 않습니다. "아버지." 그러곤 좋아서, 말할 땐 무릎 꿇고 앉아서 정중하게 말하고, 또 재밌게 얘기하고 그럴 때도 “이랬어, 저랬어” 마구 말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존경하고 어려워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스무 살, 스물하나 둘 요 정도가 예전 서른 살하고 맞먹는단 얘기죠. 지금 시대가 그만큼 됐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들은 좀 더 생각을 깊이 해 보셔야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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