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라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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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라는데

본문

질문

요즘은 제가몸이 힘드니까 마음까지도 우울해지면서 힘이 쏙 빠집니다. 일체유심조라는데 정말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이 몸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형선고에다가 무기 집행유예를 받고 한 계단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마지막 계단까지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얼음판 같은 계단을 걸어가는 도중에, 그 계단을 정글이라고 한다면 이게 공부하는 데의 정글이라고 하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으러 가는 그런 길을 한 계단 한 계단 걷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사단이 그렇게 많아서 그 길을 똑바로 걷질 못하고, 온통 그냥 끄달리면서 이것 때문에 죽는다고 피하고, 사자가 온다고 피하고, 정글에서 어떤 풀이 몸을 감으면 또 안 감기려고 피하고, 이렇게 피하다 보니까 문제가 심각해지는 겁니다. 어떤 게 닥쳐도 피하지 말라 이겁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가도 아니 되고 뒤로 물러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둘이 아닌 까닭을 알면 한 찰나에 내가 풀이 될 수 있어서 내 몸을 말아서 피를 빨아 먹는 어떠한 물체가 있다 할지라도 자기 피를 자기가 먹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이건 마음의 장난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풀도, 무정물도 식물도 다 마음이 있는 겁니다. 생시에 내가 ‘그 마음이 체가 없어서 너와 내가 모두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데 뭘 그래!’ 하고 거기 놨을 때에 바로 꿈에도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꿈과 생시가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구렁이가 닥치든지 또는 사자가 닥치든지 어떠한 게 닥쳐도 궁색하게 피하지 말고, 가정에서 어떠한 애고가 닥치든 병고가 닥치든, 어떠한 문제가 닥쳐도 피하지 말란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이 다 딴 사람입니까? 딴 데 있는 겁니까? 내 한 물체 속에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물체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은 바로 별성들이요, 나, 이 모체(母體)가 전체를 담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는 혹성입니다. 이름을 지어서 그렇게들 부르니까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데 혹성이 따로 있고 별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게 움죽거릴 때, 위장에서 움죽거릴 때 내가 움죽거렸다고 하겠습니까, 간장에서 움죽거려야 내가 움죽거렸다고 하겠습니까? 소장입니까, 대장입니까? 전체가 나 아님이 없는 겁니다. 한 군데서만 파업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것을 각각 본다면 파업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대립이 되니까. 이건 대립이 돼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애고라든가 영계성, 유전성, 세균성, 업보성 이런 게 모두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건데 그것을 대치하려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네가 나오게 한 거니까 네가 안 나오게 할 수도 있잖아.’ 하고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내가 마음을 쓰는 대로 알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스스로 아는 게 아닙니다. 지구가 움직일 때 우리가 그냥 따를 뿐이지 어디로 다니는 줄 우리가 압니까? 무엇을 하고 다니는 줄 압니까? 그렇듯이 이 몸뚱이 속에 있는 그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거기다 직결해서 ‘네가 하는 일이니까 네가 잘해야 되잖아. 이끌어 가야 되잖아. 네 몸뚱이 네가 건강하게 이끌어 가야 네 심부름을 잘하잖아.’ 하고 그대로 놓는 것이 바로 참선이며, 우주를 한꺼번에 집어 먹고, 집어 먹을 것도 없이, 버릴 것도 없이 이렇게 받칠 수 있는 그런 기둥이 된다 이 소립니다.

사람이 공부를 해서 ‘해인(海印)의 증명을 받았다’ 하는 것은 큰 바다에 만물만생이 살고 있는데 그 마음이 한마음으로 돌입해서 한마음이 됐다는 증거입니다. 바다에는 도장을 찍어도 찍은 사이가 없고 찍을 사이가 없건만도 찍은 겁니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몽땅 ‘당신이 옳소’ 하고 찍는 거와 같죠. 왜냐? ‘옳소’ 하는 거는 둘로 봐서 옳소가 아닙니다. 너와 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과거고 현재고 미래고 몽땅 한데 합쳐 한자리를 파악한 것이 바로 해인입니다.

한 가족 안에 아들딸들이 전부 아버지를 찍지 누굴 찍습니까? 우주 전체 삼라만상을 한 가족으로 본다면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둘로 보지 않고 한 가족으로 보기 때문에, 모습은 다르지만 그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조건 없는 자비가 줄줄줄줄 그냥 흐르고 있으니, 그대로 합일이니까 그대로 도장이죠. 허허허….

그러니까 너 나를 가른다면, 잘못하고 잘하는 걸 가른다면 합일이 될 수 없죠. 잘한다고 한다면 항상 못하는 게 거기 끼어들고, 못한다고 한다면 잘하는 게 끼어들고 이렇기 때문에 끝이 안 나요. 그러니 공부하는 여러분이 잘 생각해서 아주 근원적으로 들어가서 내막을 파헤쳐 본다면 수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우리가…, 요걸 보세요.

지수화풍도 우리에게 당장 없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공기주머니에서 사는 것은 물주머니에서 사는 거와 같습니다. 물에서 사는 생물들 모두가 그냥 물주머니에서 산다고 한다면 그 물로 인해서 공기가 되니까, 우리도 이 물주머니에서 사는 거와 뭐가 다릅니까? 뭐든지 거기에서 이탈을 한다면 다른 병고가 일어나게끔 돼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자체는 수십억 마리의 마음도 내 마음 한마음에 다 따라 주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따라 주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 하나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죠.

예전에도 그렇게 얘기했죠. 누가 어떤 꿈을 꿨다고 가서 물어보니까 “아, 잘 먹겠다.” 이러기에, 다른 친구가 꿈을 안 꾸고도 그런 꿈을 꿨다고 꿈 얘길 하니까 “아, 너는 매를 진탕 맞겠다.” 했죠. 그래서 정말로 매를 진탕 맞고는 “그런 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매를 맞게 됐습니까?” 하고 또 가서 반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려고 꾸민 것도 꿈이니라.”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꿈에 어떠한 문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둘로 보지 않고, 어떤 귀신이 닥친다, 어떤 애고가 닥친다, 어떤 유전성이 닥친다 하더라도 ‘허허,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무슨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고 자기가 한생각에 돌려놓으세요. 둘이 아니라면 모든 게 그냥 하나로 돼 버려요, 흔적도 없이. 불에 어떤 것을 넣든 타 버리듯이. 물이 증발되듯이.

여러분은 어떠한 게 닥치면 관습에 의해서 ‘아, 이런 거는 안 되고, 이런 거는 되고…’ 이런 게 있죠? 많이 그렇게 하실 거예요. 사람이 살아나가는데, 여직껏 살아온 관습에 의해서 이건 못 하고 하고가 항상 따르게 마련이죠. 진짜로 믿고 들어가는데 하고 못 하고가 어딨습니까? 내 생명이 그냥 이 자리에서 앗아진다 하더라도 그거는 “허허!” 할 뿐이죠. 내가 둘로 본다면 온 것이 있고 갈 것이 있지만, 둘로 보지 않는다면 오지를 않았기 때문에 갈 것도 없죠.

그런데 자기가 살면서도 자기를 못 믿어요. 다른 이름을 믿고 형상을 믿고 허공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왜 자기는 못 믿습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끌고 가는 그놈을 자기가 왜 못 믿습니까? 배가 고파서 밥 먹게 하는 놈, 듣게 하는 놈, 보게 하는 놈, 말하게 하는 놈, 일을 하게 하는 놈, 하기 싫게 하는 놈, 싸움을 하게 하는 놈, 성이 나게 하는 놈, 이 모든 놈들이 전부 한 놈입니다, 한 놈!
그거를 표현을 하기를 “아버지가 될 때 내가 나라고 할 수 있나, 또 남편이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있나, 자식이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있나, 사위가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있나.” 했던 겁니다.

자동적으로 돌아가면서 말도 뜻도 행도 그렇게 바꿔지면서 돌아가는데 어떤 딴 놈이 또 있습니까? 그러니 일체 만법이 다, 각자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벌어진 겁니다. 그놈이, 한 놈이 그렇게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벌어진 것을 용도에 따라서 들이고 내는 데는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그대로니까. 그 한 놈이 누구입니까? 그 한 놈이 바로 우주를 싸고 여여하게 돌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전에도 우주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돼 있다고 얘기했죠? 일체 만물은 연결 연결 연결 돼서 바로 공생(共生)으로서, 공용(共用)으로서, 공식화(共食化)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설이 돼 있는 것이라고요. 각자 마음마다 가설이 돼 있다구요. 그렇게 말씀드렸죠? 부처님 법이라고 생각하면 둘이 되죠? 그러나 부처님 법이 따로 없이 우리들의 법이 부처님 법이라고 놓을 때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노예가 되면 세세생생에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옥이나 천당이 달리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무서운 것은, 돼지같이 살면 돼지의 모습을 가지고 나올 것이고, 뱀같이 살면 뱀 모습을 가지고 나올 것이고, 개같이 살면 개의 모습을 가지고 나올 것이고, 사람같이 살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의 공부를 증득해서 넘어갈 수 있다면 삼천대천세계를 한 손가락에 꿰고서 굴릴 수 있는 그런 자유인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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