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소멸 한다고 노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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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절에 다니면서 업장소멸 한답시고 경전도 많이 읽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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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 모두를 그렇게 일일이, 말씀해 놓으신 대로 따져서 말을 한다면, 요거는 요거고 저거는 저거고, 요거는 어떻게 심어서 요렇게 해 먹고, 저거는 어떻게 심어서 이렇게 해 먹고, 어떤 거는 물을 줘야 하고 어떤 거는 물을 주지 말아야 되는 거고…, 이렇게 한다면 천년만년이 가도 나를 뛰어넘진 못해요. 그런데 내 몸뚱이 하나 속에도 더불어 같이 사는 생명들이 꽉 차 있으니까 ‘내가 어떤 거라고 말을 할 수 없다. 내가 먹어도 내가 먹었단 말을 못 한다. 내가 했어도 함이 없다.’ 이렇게 생각이 안 드십니까? 함이 없이 했는데 내가 업보가 될 리가 없죠.
이 인간의 두뇌라는 것은 쉴 사이도 없고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아주 자동적이고 영원한 컴퓨터에 입력이 되는 거니까, 거기다가, 입력된 데다가 다시 입력을 하면 모든 게 소멸된다 이 소립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앞서 입력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나오는 거거든요. 근거 없이 나오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근거가 있어서 나왔으니까 나온 자리에다가 관해서, 입력을 해서 그 근거를 말살시키면 그게 소멸되죠. 하나하나 소멸시키다 보면 전체가 다 소멸이 돼요. 그러면 그때는 자유스러워지죠. 점차적으로 자유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어요. 그릇들을 보세요. 종지가 있고 접시가 있고 사발이 있고 대접이 있고 큰 다라이가 있고 이렇죠, 모두가. 그거와 같애요, 사람의 차원도. 그래서 얼른 그것을 납득하고 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들었는데도 똑같이 납득을 못 하고 중간쯤 가는 분이 있고, 또 아주 맹문이로 가는 분이 있고 그래요. 그게 업보로 인해서 그렇죠. 우리가 이날까지 수억겁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그 습 말입니다.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그렇게 살던 습 말입니다.
그 습이 어떻게 금방 그렇게 없어지겠습니까마는 그 쌓이고 쌓인 습이 녹아지려면…. 내가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당나귀를 얼마나 때리면서 부렸는지, 죽어서 당나귀는 남편이 되고 때린 주인은 바로 부인이 돼 가지고, 항시 업보가 입력이 된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노상 때리거든요. 그래서 부인이 못 견뎌서, 지나가는 스님의 바지 자락을 쥐고선 그냥 살려 달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당나귀를 부릴 때 너무 때려서 그 대신 맞는 건데 뭘 그러냐.” 그러더라는 거죠.
그래도 살려 달라고, 이젠 다시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니까 “그러면 돗자리를 도르르르 말아서 꼭꼭 묶어 가지고 당신을 때리기 쉬운 자리에다가 놓아 두어서 그걸로 때리게 해라. 돗자리의 엮어진 줄기 수효대로 때린 게 없어져야 되는 거니까.” 그래서 돗자리를 똘똘 말아서 놔두고 있으니까 한 사나흘 그걸로 때리더니 한참 자고 일어나서 “당신을 왜 내가 때렸지?” 이러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에누리가 요만큼도 없다는 얘기죠. 에누리가 없는 대신에 여러분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에누리가 없고 말고 간에 그냥 그냥 소멸된다 이거죠. 이 소멸되는 공부는 나오는 데다가 되놓는 이 공부밖엔 없어요. 이 공부는 부처님 당시부터 이렇게 가르치셨는데 지나오면서 너무 해이해진 것이죠. 학으로만 공부하는 분들, 이론으로만 공부하는 분들은 아는 건 많지만 아주 극한 마음을 낸 그 업장이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업장대로 습관대로 그냥 막 튀어나와서 싸움들을 하고 그러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몸통 안에서, 네 자체 근본, 네 마음이 벗어나야 네 몸을 자유스럽게 다스리고 맘대로 굴릴 수가 있느니라.” 즉 몸이 통이죠. “네 마음이 네 몸속에서 아주 꼭 잡혀서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네 몸을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굴릴 수가 없느니라.”
지금 여러분이 회사에 다니고 장사도 하고 뭐, 여러 가지 모두 하시겠죠. 그런데 몸 바깥으로 내가 벗어나서 내 몸을 굴릴 줄 안다면 그건 뭐, 모든 것으로부터 거침없이 빠져나올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게끔 다 분리시킬 수도 있고 그래요. 정신계에서 보이지 않게 나오는 거는 그 정신계에서 대책을 세우고, 보이는 데선 아주 부드러운 마음으로 의리와 도의를 지키면서 말을 지혜롭게 해 나가면 그대로죠, 뭐.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두 이렇게 복잡해지는 거는 마음을 등한시했기 때문입니다. 정신계를 무시했기 때문이죠. 지금 어느 학교에서도 물질계와 정신계를 한데 합쳐서 공부를 가르치지 않아요.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지금은 그렇게 안 하지만 전에는 한번 그렇게 해 보기도 했어요. 그게 스스로 돼야죠. 억지로는 안 돼요. 습이 다 녹고 업력이 다 소멸되면 스스로 내가 나를 이익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어요. 없어져요. 모두가 나 아님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리 고생해도, 붙들려서 맞아도 나는 그 사람 탓을 안 했으니까요. ‘아! 나를 부딪히게 해서 단련시키느라고 그러는구나.’ 하고서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니까. 죄없이 맞은 거는 빨리 낫는다고 하는 말도 있죠. 그렇듯이 금방 괜찮아지고 그래요.
그것을 말로는 어떻게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여러분한테 그 말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거는 본인들이나 아는 거지 제삼자가 다 알 수는 없는 겁니다. 어쩌다가 한마디 이렇게 말하는 거지, 그걸 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말은 “남을 먼저 생각해라.” 이렇게 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은 드뭅니다. 공을 치면 튀어 온다고 그러죠. 분명코 치면 튀어 오는 건데도 불구하고 욕을 막 해 댄단 말입니다. 욕을 해 대면 그 욕한 것이 나한테까지 튀어 오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어느 회사에서, 또 학교에서도 그렇고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그저 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면서 ‘둘이 아닌데 저 사람에게도 마음의 불이 들어오게 해서 그렇지 않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관하라고 그러죠.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 백팔십도로 달라져요.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고쳐 나가는 거지 어떻게 그걸 다 고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고치면 누가 좋으냐 하면 자기가 좋거든요, 편리하고. 앙숙으로 지내다가도 편해지거든요. 부모 자식지간에도 그렇고 형제지간에도 그렇고, 부부지간에도 그렇고, 그냥 의리가 나빠서 싸우고 하는 것이 다 마음 싸움이거든요. 그 업보로 인해서 모든 게 쌓이고 쌓여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만났던 과거의 인연들이 또 이 세상에 나와서 다시 만나서 앙숙이 돼 가지고 그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때는 신도님들더러 내가 그러죠. “남편을 원망하지 마라. 너도 전에 그랬잖아. 지금 네가 그렇게 당하는 거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당할 때는 알지만, 과거로부터 당해서 지금 현실에 온 것은 너는 몰라. 너도 남을 그렇게 아프게 했어. 그러니까 네 탓으로 돌려. 그러면 그것이 다 소멸돼.” 그렇게 합니다. 사실이구요, 또 그게. 뭐, 그걸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마음의 도리를 빨리 배우려면 이유를 붙이지 마세요. 이유를 붙이면 빨리 일심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일심으로 정진해야 하거든요. 소멸시키는 실천이거든요. 우리가 실천하는 겁니다, 지금. 정진이다 뭐다 이름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거예요. 소멸시키는 실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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