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게 자리이타로 사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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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 마음을 내가 알지 못할 때는 법당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있으면 모든 것이 구름같고,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듯 알듯 하다가도 결국은 답을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참되게 살고 남도 위하고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굳세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의 체계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때는 모든 것을 끝내고 조용히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하지만 가정이 있고 가정 속에서 아내와 자식이 있기 때문에 또 아니구나 하고 그 조직 속으로 가곤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 모두를 위하여 현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른 길을 일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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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면의 생명들도 개별적으로 사는 게 하나도 없구요. 그래서 예전에 선지식들께서는 제자들이 "나는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으니 토굴을 짓고 산으로 올라가겠습니다." 하면 "너 그러면 땅도 짚지 말고 옷도 입지 말고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아라. 토굴을 짓더라도 나무로 지어야 하는데 왜 남의 것을 꺾어다가 지으려고 하느냐." 는 말씀에 홀연히 깨우쳤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생·공심·공용·공체·공식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서로 주고 받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공기를 좋게 해서 우리에게 주고, 우리는 또 나무들이 먹게끔 내놔주고 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청정하다는 것은 그냥 깨끗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체 중생들의 눈물이 강으로 모이고, 또 구정물·핏물·고름물·깨끗한 물 할 것 없이 모든 물이 한데 합쳐서 돌아가는 것을 청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는 “내 어찌 청정함을 알았으리까?”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청정한 걸 알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주인공에 맡겨놔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맡겨놓지 않으면 한 곳에서 들고 나는 그 청정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청정함도 모르니까요.
내 한마음이 안으로 뭇 중생들을 다스리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대로 생활을 하면서,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해야지 몸뚱이로 생각으로 쫓아가려고 애쓰지도 말고, 버리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대로 생활 속에서 오는 것대로 마다하지 말고 공부하는 데 재료로 삼는다면 스스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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