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실체가 있습니까?
본문
질문
불교에서는 세상만물이 인연에 의해서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그럼 인연을 생기게 한 힘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연은 실체가 있는지요? 또 인연과 업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예전에 질문 중에 병속의 새를 꺼내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저의 생각으로는 그냥 병을 깨버리면 될 것 같은데 저의 생각이 옳은지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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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어느 난장이가 스님이 되려고 한생각을 내서 입산을 하러 갔습니다. 그랬는데 난장이라고 안 받아줬습니다. 안 받아주니까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뭘 하나, 모습이 난장이라고 해서 스님도 될 수 없는 몸이라면 차라리 죽어야겠다.’ 그러고 죽었는데, 어느 스님이 지나가시다 보니까 난장이가 죽었던 그 자리에 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난장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더라는 겁니다.
이거 이상하죠? 죽었는데 어떻게 만나나 하구요. 우리가 오신통을 항상 얘기하죠. 내 마음의 눈과 마음의 망원경과 마음의 영사기와 마음의 컴퓨터, 마음의 무전기, 마음의 탐지기, 책정기 이런 것이 육안으로 보는 물질이 아닌 그자리에서 다 나올 수 있고 굴릴 수 있는 그 여건이 돼서 바로 증득을 했다면 그것을 알 수 있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난장이의 모습을 볼 수도 있거니와 난장이의 마음을 알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만난 겁니다.
그래, 만났는데 난장이가 스님을 보더니 쫓아와서 하는 말이,“스님, 제발 저의 모습을 벗겨주십시오. 저는 오백년이 지났는데도 이 난장이의 모습을 벗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하고 매달리니까, 그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왜 오백년 전 난장이의 생각을 그대로 붙들고 있나?”하고 물으시더랍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그만 그 난장이가 붙들고 있던 마음은 홀연히 놔지고 그 모습을 다시금 바꿨답니다. 그러니까 천도가 됐다 이 소립니다.
그렇듯이 오백년 동안이나 그렇게 난장이라는 관념 속에서 붙들고 있었다는 것은 역시 우리가 지금 생각이라는, 의식이라는 뜬구름을 붙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지금 이렇게 돌아가는 걸, 찰나찰나 돌아가는 걸 왜 붙들고 있습니까, 그렇게 붙들고 있는 그 마음이 자기가 난장이여서 이젠 스님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거니와 사회에서도 인정을 안 해준다는 그 관념, 즉 잠재의식 속에 꽉 차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고정되게 그냥 딱 붙들고 있으니까 오백년이 가도 나는 쓸데없는 존재라는 그 관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거죠. 그러다가 스님을 만나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홀연히 벗어난 겁니다.
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지어 가지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그 마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이 공부하는 분들은 편견을 가지는 관념도 다 놔라 이겁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다 놔야 다 얻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없다’ 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기에 실체가 없으니 그것을 붙들지 말고 근본에 놓으면 없어진다고 하는데도 그것을 붙들고 있기에 그것이 인(因)이 돼서 업(業)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그리고 또 병을 깨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죠? 그러나 그 병이 그냥 병이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깨버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아마 이 몸을 벗지않고도 한생각에 다른 세상에 갈 곳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자유로이 오고 갈 수 있는 그런 자유인이 될 겁니다. 그렇지만 수억겁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의식이라는 습을 한생각에 그냥 내려놓기가 쉽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많고 일도 많은 것이겠죠. 그러니 그 병속에서 나온다는 말도 붙지 않는 자유로운 법을 진정 증득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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