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힘이 돼 주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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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 힘이 돼 주고 싶어요.

본문

질문

저는 중3에 재학중인 여학생으로 기독교 신자입니다. 저는 어떤 종류의 종교인가를 따지기보다는 그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과 종교인들의 행실, 또는 자기가 그 종교를 통해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스님께 질문을 올리는 이유는 해답의 실마리를 얻고 싶어서입니다. 저에게는 아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프면 서로 그저 조용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주고서도 내 마음에서는 그 사람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덕택에 제 용돈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 마음속에 그 사람들을 담아두는 것만큼 그들은 저를 안 담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제 마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것이 참으로 이기적이어서 어떨 때는 끝없는 허무감이 밀려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고민하고 힘들 때 힘이 돼주고 싶습니다. 스스럼없이 마음의 짐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이 저를 찾아 줄 때까지 기다리고 주위에서 묵묵히 웃으며 지켜보는 그런 마음가짐도 가지려 했지만 쉽게 변하는 감정에 스스로 힘들어 그러지도 못하고 맙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그 사람들에게 기대고 있나 봅니다. 스님, 제가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마음을 가져야, 또 어떤 태도를 취해야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또한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꼭 답변해 주시리라 믿으며 글을 마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 학생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려는 마음이 참 갸륵하군요. 내가 그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바리때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해서 공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에서 하도 가난해서 스님들께 드릴 건 없으니까 남의 집 보리쌀을 씻어주고는 그 보리쌀 뜨물을 얻어다가 아침에 푹푹 끓여서 스님들 오시면 드리겠다고 부뚜막에다가 먼저 한 주발을 퍼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스님이 바리때에다 부어주는 그것을 받아먹으며 그런 사정을 알고서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나무라도 한 짐 해다 줄 양으로 하루종일 나무를 해서 한 짐 잔뜩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오다가 은사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은사 스님께서 너는 그 나무를 어디로 가지고 가려고 해 왔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 사실 얘길 다 했습니다. 그 은사스님께서는 대선사이시며 아주 귀중이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 스님이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너는 어찌 그렇게 지혜가 부족하냐? 참나를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지혜가 스스로 늘지 못했구나. 하시면서 작대기를 집어서 그 제자 정강이를 어떻게나 세게 후려쳤던지 나뭇짐하고 사람하고 같이 그냥 굴렀단 말입니다. 구르는 도중에 스님이 악을 쓰시면서 하시는 소리가 이놈아!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를 하랬지, 나무 한 짐 갖다가 준들 태워버리면 그뿐일 것을 그것도 보시라고 하느냐? 이놈아! 하고 악을 쓰시는 바람에 그냥 내리 구르면서 그 스님이 홀연히 깨우쳤다는 얘깁니다.

그 스님이 구르면서 한생각을 깨우친 것이 그 집에 무주상 보시가 돼서 그때부터 그 집의 형편이 풀리더니 남의 마름을 살던 것이 마름을 그만 두게 되었고 부자로 잘 살게 됐더랍니다. 그러고는 항상 그 은혜를 잊지 못해서 뭐든지 한조각이라도 생기면 반조각은 스님들한테 올리고 그러면서 공부를 해나가다 그 뜻을 알았답니다. 말하자면 그분도 깨우쳐가지고 나중에 몸을 벗고 나서는 다시 그 도량으로 들어와서 공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한푼 한푼 주는 거, 쌀 한 가마를 준다 하더라도 그렇고 집을 지어준다 하더라도 그렇고 그런 도리를 모르고 한다면 공덕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게 공덕이 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끔 이런 얘기를 하죠. 내게 돈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돈을 줄 수 있다는 얘기 말입니다. 내게 돈이 있다면 남을 못 주는데 돈이 없는 까닭에 남에게 돈을 줄 수 있다 이겁니다. 그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돈이 없기 때문에 줄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줄 수 없다. 만약에 내가 돈이 있어서 준다면 항상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둘로 나뉘어져서 돈이 없으면 내가 그 사람을 더 이상 도울 수 없고 저 사람은 내게 더 이상 받을 게 없고, 그리고 주는 나는 더 이상 줄 게 없어 궁색해지고, 그러면 그 마음까지도 궁색해지게 됩니다. 그걸 그냥 돈이라고만 생각했을 때는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이 마음이라는 것은 줘도 줘도 줄어들지 않고 들여도 들여도 늘어나지 않으니 내가 준 바도 없고 받은 바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테 그것을 다 꺼내서 줄 수 있고, 없어도 겁이 나지 않고 그런 거죠.

그러니 단지 하루 이틀 먹을 음식을 주는 것보다는, 우리 학생이 이 마음 도리를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떳떳해진다면 다가오는 모든 인연에게 마음으로 지극하게 한생각을 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해요. 그렇게 지극하게 해나갈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근본과 둘 아니게 전달이 돼서 모든 것이 좋게 바뀌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또한 이 마음의 도리는 묘하게도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마음을 자꾸 내면 저 사람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저 사람이 함께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슬퍼할 일도 없고 내가 상대를 염려해주는 마음을 알아달라고 할 필요도 없는 거죠. 무엇을 주고 안 주고를 떠나서 진실한 마음이면 어디에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공부는 종교라는 이름을 떠나서 자활(自活)하는 공부이고, 또한 어디에 세워놔도 살아갈 수 있는 자력(自力)을 기르는 공부예요.

처음 듣는 얘기도 많고 어려운 얘기도 있겠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물어보고, 그런 기특한 마음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서 본인도 밝아지고 주위에도 도움이 되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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