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나누고 싶고, 대신하고 싶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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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나누고 싶고, 대신하고 싶어...

본문

질문

항상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와 더불어 알고 싶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언제부터인가 알고 싶어서 내면에 질문과 답을 구하던 욕구가 사라지고 이젠 그저 뭔가 나누고 싶고, 대신하고 싶고,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레 맑게 가며 무엇 위에도 존재하고 싶지 않으니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이젠 저를 위한 질문과 답은 할 것도 없고 할 말도 없고, 그저 남들이나 잘됐으면 하는 생각과 사소한 것일지라도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은 할 수가 없고 그동안의 습관에서 나오는 그냥 살아가는 생활에서 도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대책 없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저 순리에 맞는 도리대로 살고 싶으며 공허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습니다. 앞으로는 어찌하여야 할까요? 제가 이렇게 여쭙는 것은 나누고 싶은 것 때문입니다. 그것도 욕심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어떤 사람은 내게 찾아와서 아휴! 나는 그냥 주인공을 찾아도 일이 뭐가 잘못된다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알았다고 그냥 그렇게 보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냥 심부름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떤 때는 ‘관하세요’이렇게 말을 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관하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좀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관하세요’그러고, 어떤 사람은 그거 왜 관하면 될 거를 그렇게 못 믿고, 못 관하고 그러느냐고 그러면서 내가 가고 나면 거기까지 쫓아와서 그거 해달라고 그럴테냐고 이런 소리도 하고 그러죠.

그러니깐 못된 사람이 때로는 될 때도 있어요. 그렇게 막 하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딱해서 그러지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좀 미련한 듯하게, 똑똑한 척 하지 말고 미련한 듯하게 무조건, 보면은 보는 대로, 벌써 부(父)인 자기 주인공과 자기와 둘이 아닐 때는 길에 지나가다가도 ‘아, 저건 안됐다’이러면은 그냥 천도가 되기도 하는 거예요. 주인공에다 맡기고 안 맡기고도 없어요, 싹과 뿌리와 한데 붙었는데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게 까지 되게끔 돼야겠죠. 눈으로는 텔레비젼을 보면서도 마음은 나가서 일을 할 수 있게끔 되야 되는 겁니다. 구경을 하면서도 벌써 천백 억 화신으로 나투면서 화해서 우주전체를 한 찰나에 다닐 수도 있고 일을 할 수도 있어야 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거기쯤은 못하더라도 나와 남을 둘로 봐서는 안돼요.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둘로 보기 때문에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관하는 걸 가르쳐 주면은 쉽겠죠. 왜? 전력은 있되 가설이 안됐으니까 불이 안 들어오거든요. 전기 줄, 내 전기 줄 하나만 가지고는 이쪽에 불 들어오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은 같이 항상 돌아가고 있어요. 공심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공심으로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괜히들 자기네들이 공심이 아니라는 거죠. 믿지 않고 각자 자기 하나가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만 명이 일을 하면 쉬운데 이건 자기 단 한 명이 그냥 혼자 하려고 하는 거나 같죠. 만약 이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만 명의 능력과 한 명의 능력이 어떻게 됩니까? 만 명이 할 일을 혼자 어떻게 합니까? 그런 거나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이 그 만 명이 같이 돌고 만 명의 만 생이, 만 마음이 같이 돌아간다고 봐 보세요. 그런다면 너도 나고 나도 너고, 네 능력이 내 능력이고 내 능력이 네 능력이고, 네 생이 내 생이고 내 생이 네 생인 것인데 우리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 둘 모여서, 체가 없는 마음들이 모여서 있다가 형성해서 살려니까 체가 있는 집을 만들어 놓고, 체가 있는 나를 만들어서 이렇게 지금 겁을 돌면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까지, 여기까지 개발되어 온 겁니다.

인간이라면 벌써 90%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무전자의 능력으로써, 이 무전자의 능력은 우리가 ‘주인공’하면 전체 공생으로 한데 합쳐진 것을 말합니다. 그래 공생으로 한데 합쳐지니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 그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공기가 없어서 못 삽니다. 그렇게 합쳐졌기 때문에 지금 사는 거죠. 향처럼 돌아가면서, 에너지처럼 돌아가면서 우리 생명을 호흡을 시켜서 살고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공생(共生)을 하고 있으면 공심(共心)으로 또 돌아갑니다. 혼자 사는 게 없어요, 전부. 그래서 공심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그 공심은, 천차만별로 돼 있는 공심은 바로 즉 공생의 능력으로써, 공심으로써 그렇게 다양하게 천차만별로 돌아가게끔 돼 있기 때문에 진리이자 길입니다.

그러니 나 개별적인 마음과 상대의 마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그냥 주인공 자리에 다 몰아 넣을 때 용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다른 이를 도울 일이라면 그 몸이 부지런히 뛰어 심부름하게 하고, 화합할 일이라면 그 마음의 온기가 두루 다 퍼져 모든 이의 마음에 감읍이 되게 하기도 하고, 하여간 그 모든 일을 들이고 내는 것이 오직 한 자리라는 거 그것만 아신다면 그대로 우리가 사는 길이 진리를, 그냥 그대로 사는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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