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한다면 왜 제사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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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죽으면 과거 생과 현생에서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서 해탈을 하든가 육도 윤회를 반드시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은 지 수년 혹은 수 십 년 되면 각기 업에 따라 이미 천상이나 인간 혹은 짐승으로 환생하여 태어나 있거나 또 다시 환생하기도 했을 것이고 아귀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들의 혼백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특히 음식물을 차려 대접을 융숭히 하려하는 것은 조상님들을 숭모한다는 뜻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죽고 49일이 지난 후의 일들을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 원소는 남습니다. 우리가 과일을 심어서 먹어도 씨앗이 남듯이 그 에너지는 꼭 남는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 그 에너지는 에너지 주장자로 화합니다. 에너지 주장자로 화하기 때문에, 예전에 임제스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네 주장자가 있다면, 마음공부를 해서 주장자로 화했다면 내 주장자도 너에게 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화하지도 않았다면 내 주장자를 너한테 줄 게 아니라 네 주장자를 뺏어올 것이라고요.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죽으면 아주 죽는 게 아니라 껍데기만 없어지는 거지 그 원소 자체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소 자체는 끝없이 가는 것이고 나의 영혼 자체가 일을 저지르면 모든 게 입력이 돼서 그것이 현실로 나오기 때문에 업이 있다, 업력이다, 유전성이 있다, 영계성이 있다 하는 문제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 영계성을 제거하려면 그 자리에 맡기고 관(觀)하시라는 겁니다. 진실로 한번 관할 때마다 하나 하나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업도 없고 고도 없다는 거죠.
우리들 몸뚱이를 가만히 보십시오. 다 공생(共生)입니다. 세포 하나의 생명도 모두 살아 있는 생명들이 더불어 같이 하고 가지 어떻게 따로따로 하고 갑니까. 근데 같이 하고 가지 않기 때문에 병이 생기면 쌈박질이 나서 살이 굳어지는 겁니다. 굳어지고 또 에너지가 막혀서 백혈이 되고 그냥 온통 병들이 번성하는 겁니다. 유전성이 없어지질 않아서 그렇게 되는 거고 영계성이 나오고 그냥 요만한 거 하나 가지고도 크게 벌어지고 그렇죠.
그러니깐 우리가 그렇게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걸 없애기 위해서도 그렇고 한 생각의 공덕을 그냥 뭉텅 쌓아 놓으면 자식들한테까지도 미치는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겁니다, 모두. 부모가 그렇게 덕을 쌓아 놓은 것이 자식들에게까지 내려가는 거고 그게 자식에게까지 내려간다고 해서 그 자식 대에서 끊어지느냐?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냥 원소는 항상 남아 있는 겁니다. 은하계의 별성이 그냥 떨어져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원소는 남고 껍데기만 떨어지면 그게 우리가 보지도 못하게 가루가 돼서 없어지죠. 그러나 그 원소는 남으니까 다시 옷을 입고 나오는 거나 같습니다. 은하계에도 별왕이 있듯이, 별왕이 있어서 옷을 입히듯이 그렇게 원소가 있기 때문에 옷을 입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돌아가신 부모라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또 자식이 죽었다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연에 따라서 어떠한 나쁜 인연이 있다면 나쁜 인연으로 인해서 같이 한 식구가 됩니다. 나쁜 인연으로 식구가 됐으면 서로 고생을 하게 되는 거죠. 서로 고통을 주고 싸우고 미워하고 문제가 생기고 바깥에 나가서 일을 벌여놓고 이렇게 되니까 그렇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날 관하는 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깐 여러분께서 편리하고 편안하게, 자손들도 좀 착하게 하려면 조그만 거라도 우리가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서 가정에서 해 나가신다면 자손들도 보이지 않게 그 뜻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마음과 아들이 생각하는 마음이 같아지는 겁니다. 일은 같지 않지만 생각하는 자체가 같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지혜롭게, 남을 해치지 않고도 이익되게 할 수 있고 또 내가 해를 안 보면서도 남을 이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어느 때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찾아와서 “아버지가 이북에서 돌아 가셨는지 영 모르는데 제사를 지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이러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살았다 하더라도 제사를 지내드리세요.” 이랬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배가 고프게 사시더라도 배가 부르게 사실 거다 이겁니다. 여기 있는 자식의 그 정성으로 부모가 배고프지 않게 사시게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게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동일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어야만 제사를 지내드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일도 그렇습니다.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답니다. 불이 나서 다 죽을 상황인데 다 살았답니다. 왜 살게 되었느냐 하면, 예전엔 먹을 게 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나물을 뜯어다가 보리쌀을 빻아서 떡을 해서, 집안에 조상들이 많이 죽었지만 우리 자식들은 그렇게 먼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냈답니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불이 났는데 자손들은 하나도 죽지 않고 그저 그릇 같은 것만 타고 다 괜찮았답니다. 그래서 그거를 알고 동네에서는 전부 나물이라도 캐서 하다 못해 없으면 죽이라도 쒀서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의심하지 마세요. 의심하면 안됩니다. 그저 요만한 정성을 들이더라도 의심하시지 마시고 또 요만한 생각을 해서 자식들한테 생각을 넘겨준다 하더라도 의심하지 마세요. 그래서 저 아이도 주인공이 있고 나도 주인공이 있으니 내가 저 쪽의 주인공에 가서 그저 환히 밝게 해 달라고, 너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관을 한다면 자식들한테도 불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의심하시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조상님들 만을 위해서 재사를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님들을 정성껏 모시면 결국은 그 자손들에게 밝은 빛을 비쳐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재사 때마다 음식을 진수성찬으로 차려놓고 지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못났든 잘났든 또 궁하든 부자든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한 자리에 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정신계의 보이지 않는 참 자기를 진짜로 믿어야 됩니다. 그 자리를 믿어야지 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조상님도 그렇고 나라까지도 돌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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