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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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요?

본문

질문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공부에 들어가야 할지 잘 체계가 서질 않습니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모든 걸 주인공에 맡기고 주인공을 믿으며 나의 생각을 내려 놓으라 하셨는데 내려놓는다 함은 그 순간순간에 비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자기 마음을 순간순간 들여다보면서, 전에 책에서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 뭐꼬 하고 반조한다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말하는 것 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사는 것을 보면 시간도 있고 공간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공이 없고 또 진리가 체계 있게 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체계가 있는 게 아니라, 즉 말하자면 어디 갔다 밤중에 와도 내가 불을 켜려면 불을 켜는 것처럼, 무슨 시간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늦게 오든 일찍 오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켠다는 거죠. 그리고 하고싶은 대로 물건을 이쪽에다 놓으려면 놓고 저쪽에다 놓으려면 놓는 겁니다, 자유예요. 누가 여기에만 놓고 살아라 이런 게 없어요.

그런데 이 도리를 알면 오히려 계율도 더 잘 지키게 되나, 이 도리를 모르면 계율을 참답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의 계율이라는 것은, 우리가 도리나 의리, 사랑, 자비 또는 모든 상식과 교양 모두를 종합해서 지혜롭게 판단하고 나가는 그러한 결단성이 있는 것이고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계율을 지녀야 한다고 조금도 애착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또 “나쁜 꿈을 꾸었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러거든요. 아니, 꿈뿐이겠습니까? 우리 살아나가는 것이 다 꿈이자 생시고 생시이자 꿈인데요. 아니, 몸뚱이 속에서 다 업으로 인해 나오는 건데 나온 거기다가 모든 걸 다시 놓으라는 겁니다. 거기서 나온 거니까, 꿈도 거기서 나온 거고 생시도 거기서 나온 거다 이겁니다.

사는 것도 거기서 나온 거고 내가 형성된 것도 거기서 형성이 된 거다 이 소립니다. 그럼 거기 다 놔야죠. 거기 맡겨 놔야 하는 겁니다. 어린 자식들이 부모를 믿고 의지하듯이 배울 때는 그래야 합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는요. 어른이 되면 그때는 위도 알고 아래도 알면서 평등한 걸 알게 되죠. 그래서 맡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그때는 그냥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고 잠자고 싶으면 잠자고, 똥 누고 싶으면 똥 누니 얼마나 시원하겠소?

그렇게 자꾸 하면서 거기 한 군데다가, 한 군데로 들고나는 것이니까 한 군데에다가 몰록, 거기다 대놓고 부드럽게 해 줘요. 부드럽게 해주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고 일체가 다 한마음에서 나고 든다는 것을 알면 진짜로 믿고 넘어가야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이놈이 뭣고’하고서 천년, 만년을 있다한들 맛을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자성불을 상봉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성불을 상봉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말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상대방에게 원한을 사게 하지말고, 마음에 나쁘게 하지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자기 고삐를 자기가 쥐고 다스리면서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그릇이 비고 담기고 비고 담기고 해서 빈 것도 없고 담긴 것도 없이 됐을 때에 비로소 홀연히 그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내면의 공한 자리에다 다 놔 버리되 그 공마저도 없더라는 것이 나올 때까지 다 놔 버리라구요. 그러면 화두를 준다 안 준다를 떠나서 그대로 이 세상 사람들이 생겨난 자체가 다 화두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럴 때 그 화두가 바로 ‘공(空)’이니까, 자기이자 ‘공’이니까, 그 ‘공’의 중심을 잡은 작대기에서 모든 것을 들고나게 하는 그 ‘참 자기’를 내면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팔도 하나가 없고, 눈도 하나가 없고, 귀도 하나밖에 없고, 다리도 하나밖에 없을 때 반드시 지팡이를 짚어야만 되니까 작대기를 짚는 거죠. 그래, 그 작대기에다가 모든 걸 일임해서 들고나는 것이 거기에서 난다고 할 때 결국은 거기에다가 스스로 다 놓게 되는 것이죠. 놓게 해서 그게 다 놔졌을 때 스스로 거기에서 샘물이 나올 땐 쥐었던 작대기마저도 놓게 되는 거죠. 그랬을 때에 깨우침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깨우쳐 가지고 진짜 그때는 대 의정이 날 수도 있고, 전체가 의정이 아닐 수가 없고, 화두 아닐 수가 없고 나 아님이 없고, 그랬을 때에 비로소 안으로 굴려서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이 참선이라 그러는 겁니다. 일상 생활에서 터득하고 체험하고 그렇게 해서 샘물이 났을 때에 물이 한 물인 줄 알았더니 전체 사방에서 다 물이 나오는 걸 보자 어떠한 샘물이 내 샘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기까지 도달해야 되지 않나 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런 말도 저런 말도 붙지 않는 자리지마는 질문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라도 대답을 할 수밖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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