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죽어야 자유인입니까?
본문
질문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음 공부하는 데는 세간이나 출세간이 따로 없으니 나를 보기 위해서는 나라고 내세우는 이 마음이 무조건 죽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고요, 그렇게 죽기만 하면 자유인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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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지금 녹이는 작업을 한다는 것과 죽는다고 하는 것은, 그저 마음이라는 용광로에다 헌 쇠든 새 쇠든 토막 난 쇠든 전부 거기다 넣어서 녹이는 것이 작업이고, 그게 죽는 공부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용광로에다 넣는 작업을 한다면 재생이 돼서 나가는 거는 정한 이치니까 나오는 것은 관여하지 말고 무조건 넣고 지켜봐야 해요. 그냥 저절로 자동적으로 재생이 돼서 나가니까요. 그런데 ‘저게 재생이 될까 안될까?’ 이런 걱정을 하고 작업을 한다면 쇠를 넣을 수도 없고 그건 죽는 게 아니지요. 조건이 붙어 돌아가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자유인이 되어야 할 텐데’하고 자유인이라는 말 자체가 붙는다면 벌써 자유인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자유인이다 자유인이 아니다를 떠나서 목마르면 물 마시고 잠자고 싶으면 그냥 자는 것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하는 것이 자유스럽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자유인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유인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유인이 되겠다는 것도 언제쯤으로 기한을 정해 놓고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도 하나요 둘도 하나요 셋도 하나요 만도 하나니까요. 그 하나도 없기 때문에 부처니까 그 하나도 없는 도리를 알면 이걸로도 나투고 저걸로도 나투게 되는 겁니다. 내가 만약에 개구리 속에 들어간다면 내가 개구리가 되는 겁니다. 또 뱀 속에 들어가면 내가 뱀이 되는 거예요. 그럼 뱀의 심리를 알게 되지요. 개구리 속에 들어가니까 개구리 심리를 알고.
그래서 그렇게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용 탕도 할 수 있고 개구리 탕도 할 수 있는 겁니다. 할 수 있다는 건 전부 중용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로 그냥 할 수 없는 것이, 내 아님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그냥 그렇게 하는 말이 아니고, 즉 말하자면 수억 겁 전부터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돼 가지고 인간까지 나오면서 우리가 이렇게 돼 있지마는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돼 있는 것을 홀딱 뒤집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자기가 과거로도 갈 수 있고 미래로도 갈 수 있고, 미래에 가서 개척도 할 수 있고, 자기 마음이 모든 사람이 응하는 대로 그게 돼줄 수 있고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내 아님이 없고, 어떠한 도량도 내 도량 아닌 게 없고, 어떤 몸도 내 몸 아닌 게 없고, 내 마음 아닌 게 없고, 내 아픔 아닌 게 없고, 내 사랑 아닌 게 없으니 그것을 뭐라고 이름을 지을 수 있겠느냐 이거거든요. 그래서 ‘무(無)’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써놓지 않고 그냥 백지에다가 저 허공에서 점 하나 뚝 떨어지기 이전을, 침 뱉어서 떨어지기 이전을 그냥 이름해서 그려놓은 겁니다. 그러니 그걸 이름해서 부처라고 한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처를 못 알아들으니까, 어느 국한된 것이 부처라고 생각을 하니까 일컬어 자유인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이거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 자리에서 살았고 현재에도 지금 이 자리에서 살고 미래에도 이 자리에서 또 살 거니까 짚고 넘어가야지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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