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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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가 아주 다급한 일로 인해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고, 그런 연고로 신심을 얻어 불자가 되는 분들도 많은데, 저 같은 못난이는 스스로 알고 찾아왔음에도 보리심은 커녕 신심마저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저처럼 근기가 낮거나 아니면 이 생에 복이 모자라 해도 해도 아니 될 때, 도무지 어떤 방편으로도 발전은 없고 신심마저 회복되지 않을 때, 번뇌와 산란함에 온 심신을 지배당했을 때, 그리하여 오도가도 못할 때, 비록 그러할지라도 꼭 이것만은, 죽어도 이것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할 마음이 있다면 무엇인지 스님께 여쭙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구구히 말씀하셨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이 마음만은 꼭 잡고 있으라고 하는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 앞으로 어떤 답답한 것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잡고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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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모든 일체를 놓지 않으면 그릇이 비워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릇이 비워지지 않는 것을 그냥 비워지지 않았다고만 하지 마시고 한번 뒤집어 보세요. 뒤집어 보면 야, 우리가 밥을 먹는 데도 그대로 있지 않더라. 똥을 싸더라. 먹으면 싸고 먹으면 싸고 그러더라. 그러니 항상 찰나 생활이지 우리가 고정되게 가지고 있는 게 뭐가 있나? 이렇게 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는데 아예 놓을 수가 없다고들 하거든요. 어떻게 된 일인지 놓고 가면서도 놓을 수가 없대요.
여러분은 그냥 찰나찰나 살면서, 노래를 하면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해서 탁탁 치우면서 돌아가면서도 ‘난 놓을 수 없습니다’ ‘난 놔지지 않습니다’ 이럽니다. 놓고 가면서도, ‘다 놓으면 어떻게 삽니까’ 이러고요. 돈을 한 묶음을 쥐고 가더라도 그건 놓고 가는 겁니다. 지금 당장 쥐고 있다고 해서 고정되게 그냥 그것만 쥐고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갖다가 놓습니다. 장 속에 넣든지 은행에 갖다 넣든지 증권에 갖다 넣든지 어디다 갖다 놓든지 하여튼 갖다 놓을 거 아닙니까? 쥐고 있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놓고 가는 겁니다. 관리만 했다 뿐이지 놓고 가는 겁니다. 내 몸도 놓고 가고, 다 놓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도 놓고 갈 수 없다는 겁니다. ‘다 놓으면 어떡하느냐?’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한 번 바꿔서 생각을 할 때, 내가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이거 먹고 저거 먹고 이러면서 이것도 소화가 되고 저것도 소화가 돼야 좋지, 그런데도 놓을 수가 없다니, 그러면 그것이 잔뜩 고여 있으면 좋겠습니까? 소화가 되는 게 좋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소화가 된다는 거, 먹고 싶어서 우리가 먹으면 스스로 소화가 된다는 걸 아셔야 하고, 또 소화를 시키는 것이 바로 공장에서, 위장이니 간장이니 직장이니, 소장, 대장, 방광, 이자, 심장이니 하는 모두가 공장에서 회전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건강하게 소화를 하고 살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한마음 주인공에 놓으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기다 딱 일임을 하면, 어디 신호가 왔다, 어디가 아프다 한다면 이것을 거기다 딱 맡겨놓아야 됩니다. 그 자리에서 아팠거든요, 몸에서요. 그 자리에서 아픈 거 아닙니까? 그러니 신호가 온 겁니다. “지배인, 이렇게 여기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지배인이 해결하세요.” 그러면 그 안에서 한마음으로 해결을 하게 되는 거죠. ''공장장이고 뭐고 서로 한마음으로 돌아가면서 파업을 막아라.'' 하고서는 주인공에 둘 아니게 놓았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이라는 건 한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째도 죽어야 하고’ 했습니다. 일체를 놔라! 맡겨놔라! 어디다 놓느냐? 내가 있으니깐 바로 상대가 있는 것처럼, 내가 있으니깐 일체가 있고, 천지와도 직결돼 있으니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자가발전소가 있는 거와 같은 겁니다, 밝은 자가발전소! 그래서 여러분의 자가발전소는 이쪽에서 전력을 끌어오면 발전소에서는 줄어들거나 늘어나거나 하지도 않고 이쪽에서 끌어오는 대로 자동적으로 전력이 옵니다. 하지만 그 전력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분한테 일체의 생활이 참선이라고 합니다. 몸을 꿇어앉아서 해야만 좌선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다 놓게 되면 그것이 좌선이며, 그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주관적인 내 중심이 없이 그대로 공(空)에 빠지라는 건 아닙니다. 중심이 있기 때문에 참선이라고 하고 편안한 마음도 편안치 않은 마음도 생기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부처를 이루지 못하고, 마음을 깨우치지 못하고, 지혜를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첫째도 맡겨놔라, 일체를. ‘일체’ 하면 여러분 아시겠죠? 고독과 가난과 외로움, 또는 우환과 병고 같은 모든 일체 말입니다. 일체 생활을 닥치는 대로 거기 맡겨놓고 가시라. 이것이 바로 방하착이며 이것이 죽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죽어야 한다''하는 것은 바로 무조건 이유를 붙이지 말고,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다 놓고, 내 마음에 이루어져서 참 좋다 할 때는 감사하게 놓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 때는 고정됨이 없으니 ‘그것도 거기서 하고 거기서 밖에는 길을 인도할 수가 없으니까’ 하고 놓고, 이렇게 해나가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꼭 이것뿐이라고 말로 집어서 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각자 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 이 모든 것을 알게 하고 보게 하고 듣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이끌어 가는 근본을 의지하고 맡겨놓는 것 외에 나를 따로 구원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안되었다’ 하는 생각에 갇혀서 후회하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안되는 것을 통해서 가르치려는 주인공의 나툼이구나 하고 믿고 돌려놓는다면 금방 그 마음이 자취도 없이 화해서 바뀌어 집니다. 그러니 그릇을 항상 비우면서 찰나 생활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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