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를 놓아야 하는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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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를 놓아야 하는지요?

본문

질문

전생에 어떤 선근이 있어서인지 이제나마 스님이 계신 한마음선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자유인의 길’이란 책을 접하고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만 보이던 불법이었는데 바로 제가 애타게 바라던 것이 그 속에 쉽게 이해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공부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놓고 관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 듯도 한데 생활의 자질구레한 모든 일을 다 그렇게 항상 주인공자리에 놓고 관하는 것인지, 예를 들면 어떤 문제거리들만 그렇게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마음은 앞서는데 공부가 잘 안되네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일체를 놓고 관하라’ 하는 것은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놓는 것입니다. ‘나를 형성시켰고, 수 억겁 광년을 거쳐오면서 진화시킨, 그러니 나를 이끌어 가지고 가는 것도 너고,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 하게 하는 것도 너야.’하고 그 속에서 나오는 대로 놓는 것이 관하는 거죠.

그렇게 맡겨 놓는다면 바로 자기 앉아 있는 도량에 자부처는 있는 것이죠. 자부처부터 알아야 바로 마음속의 모든 의식 자체 생명들이 같이 화합해 주고, 내 국토부터 다룰 줄 알아야 바로 보살로 화해서 네 국토, 내 국토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소리죠. 그래서 관하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 화두를 또 잡고 끊어질까봐 애를 쓰고들 그러죠. 일체라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 찰나찰나 화해 가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일체입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은 같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나라는 존재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아집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왜냐? 여러분이 여지껏 살면서 고정되게 보신 것이 있습니까? 들은 것이 있습니까? 또 말하는 것이 있습니까? 고정되게 가고 오는 게 있습니까? 먹는 것이 고정됩니까? 하나도 고정된 게 없어요. 자동적으로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 만나는 대로 뜻과 행과 말이 같이 나가고, 저 사람 만날 땐 저 사람 만나는 대로 뜻과 행과 말이 나가니 그건 무슨 연고냐 이거죠. 그러니 나라는 게 어딨는가? 누구 만날 때 내가 만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없으니 부처는 없는 게 부처라고 한 겁니다.

그것조차도 모른다면 나를 어떻게 발견하며 내가 익힌 습을 어떻게 녹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동력 있게 모든 생물들과, 즉 사생과 더불어 우주대천세계를, 내 몸뚱이 집과 대천세계의 집이 둘이 아닌 걸 알게 되는 도리를 이끌어 주기 위해서 자기부터 알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를 일차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를 말입니다.

 둘째는 일체를 거기서 해 나가니까 믿고 맡겨 놔라 하는 겁니다.

 셋째, 거기서만이 아프면 의사가 돼 줄 거고, 즉 약사불이 된다 이거죠. 가난하면 관세음이 돼 줄 겁니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한마음 안에서, 내 몸뚱이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화해서 천백억화신으로 나투니 털구멍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고 들면서 생사에 뛰어들어서 모든 중생들을 건진다 이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사에 뛰어들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관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한군데서 들고나는 것이니 그 자리를 믿고 맡기라''는 겁니다. 용광로에 모든 것을 넣는다면 자동적으로 새 쇠로 생산이 돼서 나가는 걸 알면서도 생산될 걱정까지 하면서 놓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누가 일을 하게 만들었던가? 내가 있기 때문에 일을 했지 누가 시킨 게 아닙니다. 소가 언덕이 있으니까 비비듯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부처가 있고 모두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시자 부리듯이 부렸지, 누가 부렸나 이겁니다. 그러니 그냥 순응해서 따라갈 뿐입니다. 모든 걸 거기에다 맡기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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