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관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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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까지 관하기로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느라 급급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을 해결하였을 때는 너무나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제가 무엇을 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활을 그대로 지켜봐야 하는 건지... 그리고 요즘 느끼는 건 제가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위주로 관하는 것이 진짜 주인공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공중에 떠 있는 기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크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진짜로 내 습을 타파하고 전체에 이익될 수 있도록 저의 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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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참선이라는 것은 섰으나 앉았으나 누으나 일을 하나 항시 내 깊은 마음속에 모든 것을 일임하고 살펴보고 관찰하는 겁니다. 나한테 놓고 지켜보고 관찰하는 데서 체험을 얻고, 작든지 크든지 체험을 하면서 가는 것이 참선이에요. 앉아서 좌선을 한다고 해서 참선도 아니요, 서서 한다고 해서 참선이 아니에요. 시간을 내서 앉아서 참선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없이 하라는 겁니다. 시간을 따져서 하지 말고 아무 시간이라도 무심으로 그대로, 내가 여유 있으면 아무 때라도, 또 여유가 없으면 서서라도, 일하면서도 관하는 것이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렇게 관할 때 어떠한 생각으로 앉아서 관합니까? 우리 몸뚱이, 한 혹성, 한 개체를 볼 때에 한 사람 앞에 중생들이, 수십억 개의 중생들이 들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 몸 속에 중생들이 수십억 개의 중생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부모에게, 어머니나 아버지, 정자 난자의 뜻을 받아서 나의 영혼과 더불어 같이 삼합이 한데 합쳐지는 동시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악업이나 선업이 몸뚱이에 전부 투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가 생산되면 악업이든 선업이든 자라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속에서는 악업인지 선업인지 그것도 모르고 자기한테 입력이 돼서 자동적으로 하는 것 그것만 알지, 이것이 내가 어떻게 해서 잘못될는지 잘될는지 중생들은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마음을 내 줘야 그 중생들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물을 주는 거와 같고 거름 주는 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내 한마음이 수십억 마리의 그 중생들의 마음을 이끌어 가는 데에 묘미가 있다, 이런 겁니다.
그럼 관할 때 어떻게 관해야 하나? 관할 때 제일 첫째, ‘내 주인공만이 참나를 발견하게 할 수 있다!’ 이게 아주 최고의 관법입니다. 그 다음에 이차적으로는 내 가정에, 내 몸에 어떠한 불리한 조건이 왔을 때 그것을 다시 또 관해야 합니다. 항시 빼놓지 말고 제일차적으로 ‘참나를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은 나의 주인공뿐이다. 주인공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이렇게 평소 때에는 항시 일하다가도 여유가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 또,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 급한 문제가 있다면 그 급한 문제부터 관하시라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당신만이 당신의 몸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지고 갈 수 있다!’ 또는 어떠한 애고에 시달린다 하면 ‘그 애고가 있는 것도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법정에 소송이 걸렸을 때도 그렇게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또 내 가정에서 남편이라든가 부인이라든가 어떠한 문제가 있었을 때에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당신밖에 없다.’ 자녀들이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도 ‘그것도 당신밖에는 해결할 수 없다.’ 아들이라는 거하고 부모라는 거하고 바로 가설이 돼 있으니까, 모두가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우주간 법계가 하나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마음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바로 내 주인공만이, 모두 우주의 근본 자체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 이런 공부를 할 때는 앉아서 좌선을 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생각 하는 데에 묘미가 있고 관찰력이 있고 바로 지혜력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물리가 터지는 겁니다. 사람이 오래도록 앉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마음을 쉬고, 아집이나 아상이나 내 교만이나 이런 거를 몽땅 다 버릴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버리지 않는 것만치 얻을 길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권세나 돈이나, 부모 또는 자식, 처자 이런 게 아랑곳 있습니까? 모두가 아랑곳없습니다. 아무리 권세가 좋다 하더라도 죽어 가는 사람에 한해서는 동구 바깥에서 인사 한마디 하면 업식만 그림자처럼 따라서 갈 뿐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다 하더라도 방문 안에서 인사하고 고만 헤어집니다. 아무리 집이 좋다 하더라도 바로 집안에, 대문 안에서 인사하고 그만입니다. 부부지간, 자식지간이라 할지라도 그렇고, 벗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동구 바깥에서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업식은 따라다닙니다. 또 다시 형성돼서 나올 때에 전부 부착이 돼서 이 세상에 다시 출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출현을 하게 돼서 모든 사람들이 그 안에서 벅적거리고 살면서 내 주장자의 주인이 없다면 바깥에서 자꾸 세균 같은 것도 끌어들이고, 유전성 같은 것도 끌어들이고, 영계성도 끌어들이고 그러니까 그 애고를 못 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의 주인을 딱 세우고 “주인공! 당신만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어! 당신만이 바로 내 아픔도 건강하게 해서 이끌어 갈 수 있어! 당신 집 아니야? 당신 집이 썩는다면 당신마저도 설 곳이 없어!”하고 모든 걸, 이 모든 걸 한마음으로 동결시키고, 가는 거 잡지도 말고 오는 거 막지도 말고, 어떠한 분기가 일어나더라도 다 거기다 놓고 “분기가 일어나는 것도 당신한테서 일어나는 거니까 분기를 안 일어나게 할 수도 있는 것도 당신 아니야?” 하고 거기다 맡겨 놓고 이런다면 몸의 병 증세가 없어지면서 모든 것이, 이 마음을 쉬면 모두 한마음으로 작용을 해 주니까 죽어가던 세포도 다 살아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이 공부는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공부예요. 우리가 필연적으로 이 공부는 해야 한다는 뜻을 잘 아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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