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일하게 수행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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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이 뭣고 화두를 겨울방학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어느 스님께 받아 몇 달째 끊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면 오늘 하루도 화두를 끊어뜨렸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근기가 부족하다는 자책으로 하루를 마치곤 합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수행을 여일하게 이어 갈 수 있나요? 그리고 어떻게 앉아야 좌선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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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 태초요,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 화두입니다. 그런데 그 화두마저도 공했다 했거늘 어찌 거기에다가 또 화두를 받아 가지고 바로 먹지를 못한다면 그것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거죠. 왜냐? 전자에는 모르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머리로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요. 천체 물리학이니 과학이니, 지리학이니 의학이니, 천문학이니 이런 것을 알음알이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먹혀 들어가질 않는 겁니다.
남이 밥 한 그릇 준 것을 들고 ‘이 뭣고?’하고 가지고 있는다면, 자기도 공했고 그것도 공했거늘 어찌 끊어질까봐 애를 쓰느냐는 겁니다. 또 좌선을 하되 내 안으로 관한다면 화두가 같이 들리지마는, 바깥으로 끄달리면서 좌선을 한다면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됩니다.
지금 시간과 공간이 초월돼서 찰나에 돌아가는데, 지구가 돌아가고, 혹성이 돌아가고, 우주가 돌아가고 사람도 돌아가고, 사람의 마음도 돌아가고 고정됨이 없는데 하루 여덟 시간을 앉았다 하더라도 단 5분 앉아있는 것보다 오히려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좌선할 때에 화두를 들고 관하라니까 그것이 끊어질까봐 애를 쓰고 ‘그게 뭣고?’하고 겉으로 도는 게 관하는 건 줄 아는데, 새 물이 들어오면 헌 물은 나가고 돌아가는 이 시대에, 만약에 그 물을 그냥 두고 쓴다면 썩은 물을 쓰는 거와 같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선지식들이 ‘위로 눈을 뜨지도 말고 아래로 내려보지도 말고, 코끝을 내려다보고 아주 정연하게 관하라.’ 이런 말을 했는데 그것은 무슨 소리냐? 바로 중도에서 중용으로 중심을 잡고 모든 것을 똑바로 보라는 소리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요새 너무 아는 게 많아서 그런지 혼란을 일으키고 남의 소리나 듣는데, 석가세존께서 이 자리에 계신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몸뚱이를 믿으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고, 부처님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항상 서리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거죠. 그러니 물질을 보고 끄달리지 말고 부처님의 마음을 뚫어 보려면 내 마음부터 뚫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좌선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들이 달라요. 하루종일 앉았다가도 저녁에 일어났을 때는 선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도 여일하지 않고 끊어졌네, 잊어버리고 있었네, 이러니 언제 공부를 하느냐.’고 한탄들을 하거든요. 그래 나는 그때 빙긋이 웃었죠. 왜? 시간과 공간이 초월됐는데, 즉 말하자면 둥근 톱니가 위 아래 마주쳐서 같이 돌아가는데 거기 끊어졌다는 게 붙을 자리가 어디 있고, 이어졌다는 게 붙을 자리가 어디 있느냐 이거죠. 그대로 돌아간 건데. 끊어졌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그 생각이 순간 날 때에 톱니는 24시간이라는 게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이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진리에 순응하라. 그리고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어라. 맥박 뛰듯 바쁘게 지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가는데 거기에 순응 안 하고 항상 ‘이게 뭣고’ 생각만 하다가 이게 잘못됐느니 저게 잘못됐느니, 이게 옳으니 저게 옳으니 하고 있다면 몸뚱이 떨어지면 그 또한 떨어지는데, 지금 의식 가지고 몸뚱이가 떨어져서 간다면 눈도 멀고 귀도 멀어서 아무 데나 들어서 아무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 모습 벗기가 상당히 어려우니라.” 이렇게요.
그리고 사실 자기가 이 세상에 생긴 게 그대로 화두고, 앉으나 서나 깨나, 일 하나 똥을 누나, 잠을 자나 참선 아닌 것이 없어요. 그러니 살아있는 이 화두를 타파하여 나와 남을 다 이롭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세계를 맛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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