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녹여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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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께서는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라 녹여야 한다고 하시는데 왜 녹여야 한다고 가르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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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팔만대장경이라는 광대한 양의 부처님 말씀이 있지만 그걸 줄여서 만든 것이 반야심경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더 줄인다면 불심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마음이에요. 천차만별의 벌어지는 일들이 마음 하나로 인해서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도 한판 치고 울든, 한판 치고 웃든, 그냥 시원하게 좀 그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깨우친다, 성불한다, 견성한다 뭐 이런 건 다 이름이에요.
사람이 죽어가거나 할 때, 살 양으로 바들바들하고 또 살리려고 바들바들하고 그러는 것을 보면, 개미굴이나 또는 개구리, 뱀 소굴, 벌레들 소굴이 장마가 들어서 산이 무너지거나 했다면 대형사고가 났다고 하듯이, 아마 그네들도 그럴 겁니다.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온통 난리가 나죠. 난리를 벌이는데 어쩌면 그렇게 그것과 똑 같은지 몰라요. 다리 부러진 것도 끌고 가고, 목 떨어진 것도 끌고 가고, 개미들이 그럽디다. 개구리도 창자가 그냥 쭉 뻗어져 나왔는데도 그냥 업고 가고 말입니다. 똑 같애요, 크고 작을 뿐이지. 그러니 모습은 천차만별로 다를지언정, 차원은 천차만별로 다를지언정 생명과 더불어 사는 도리가 어찌 다르냐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만 그냥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하천세계로 떨어지지 말고, 중천세계에서 마음을 걸러서 중심을 잘 세워서 중용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심을 두면 중용을 하게 되고 중용을 하게 되면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세생생 하천세계로 떨어지지 않고, 하천세계의 중생들을 다 건질 수 있는 그런 어버이로서 등장할 수 있다, 금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그런 거를 보면 너무 울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게 이런 건가, 삶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고 말입니다. 한없이 물 흐르는 걸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사람의 마음에서 수없이 나오는 그 마음이 저 물 흘러가는 것과 같은 것을 어찌 칼로 똑 끊으리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끊으라고 하는 것은 말일뿐이지 끊어지지 않습니다. 꼬리가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물고 수없이 나오는 그 마음을, 화해서 변동이 되면서 찰나찰나 나오는 그 마음을 말로 다 어떻게 하고 어떻게 끊으리까 이겁니다. 그때서부터 ‘아, 끊는 것이 아니로구나. 더불어 같이 녹이는 거로구나.’하고 생각한 겁니다.
내 몸 속에 들어있는 생명체들의 의식으로 말미암아 내 입을 통해서 말이 나오게 됩니다. 그 나오는 말을 잘못하는 거는 좀 더 다스리면서, 잘하는 것은 감사하게 다스리면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러죠. 주인공에 감사하고 잘못되는 거는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하고 놔라 이러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삼득이 되죠.
첫째, 위로 역대의 부모가 나 하나로 인해서 건져지게 됩니다. 또 자기가 낳아놓은 2세들이 잘못되는 일이 없이 건져집니다. 그러니까 조상, 나, 자식 삼대가 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바탕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상세계, 중세계, 하세계가 있다면 우리 중세계에서 마음을 따라서 체로 거르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하세계로 떨어뜨리고 상세계로 올리고 중세계에 그냥 남는 게 있고 그렇게 되는 거죠. 물건도 그렇듯이, 종자들도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수 없는 세월을 중세계에서 살아오면서 저장시킨 모든 욕심이, 살아남으려 아둥바둥하던 의식들이, 입력된 내용들이 물 흐르듯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끊으려고 애쓰고 끊지 못해서 애쓰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없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괴롭기만 하는 겁니다.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오는 구정물을 새물로 바꾸게 하는 것도 주인공 당신일 뿐이다. 나를 가르치려고 이런 생각이 나오게 하는 거니까 당신만이 밝게 나아가게 할 수 있잖아.’하고 그 끊임없이 나오는 생각들을 나오는 그 자리에 다시 되돌려놓을 때, 오히려 그것들이 또 다른 에너지로 화하여 내 그릇을 더욱 넓혀나가는 용도로 쓰이게 되는 거기 때문에 끊는 것이 아니라 녹이는 거라고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한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니 끊는다 안 끊는다는 생각조차도 그 자리에 되 맡겨 놓아야만이 훌쩍 뛰어넘는 맛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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