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 활짝 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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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내 안의 심봉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청년입니다. 내 안의 근본에 모든 것을 맡겨놓는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근본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안의 근본을 발견하고 싶고, 저의 근본과 저 사이의 칸막이를 활짝 젖히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려면 어떻게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는 것 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주인공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허공이라 하면 찬 거나 뜨거운 거를 모를 텐데 아무리 비어서 허공이라 할지라도, 허공 같다 할지라도 그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면밀하게 크고 작다, 짜고 싱겁다 하고 사계절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있다는 생각, 또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렇습니다. 없다는 생각이라든가 있다는 생각이 다 동일합니다. 그 생각 자체가 나는 것이, 바로 그 생각 속에서 수 없는 생각을 해내는 그것이 바로,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때와 용도가 생기면 그냥 나오는 거죠. 신기하지 않아요? 참 신기하죠.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그냥 용도가 닥치면, 예를 들어 누가 찾으면, ‘여보!’하고 부르든가 ‘아버지!’하고 부르든가 하면서 찾는다면 아주 여여하게 해내는 그 자체가, 찰나찰나 해내는 마음 자체가 바로 우주를 살릴 수도 있다 이런 소립니다.
우리가 하루 24시간 살아나갈 때에 한다 안 한다 생각을 하고 삽니까? 한다 안 한다 생각 없이 삽니다. 그러다 닥치면 그냥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넉넉하게 해내고 합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노릇, ‘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친구로서 여여하게 해내고, 거기서 그냥 상대방 사람의 용도를 보고 그 사람의 과정을 벌써 익힌 사람이라 그냥그냥 여여하게 나오죠, 모두가 다.
그러니까 나를 내가 찾는다, 내가 나를 찾아야 한다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내가 나를 찾는다고 해야 합니까? 그러면 나의 그림자를 두 개를 놓고 하나는 찾고 하나는 찾는 사람에게 보여줘야 할 겁니다, 아마. 그래서 찾는다가 아니라 그냥 놔라 이랬습니다. 둘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드리는 건 나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는 놈이, 보는 놈이, 듣는 놈이, 바로 그놈이니까요. 한 놈이니까 나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몰입해서 오직 오로지 놓아라, 이러는 겁니다. 오로지 거기에다 몰입해서 놓으라는 겁니다. 놓는 작업을 하게 되면 스스로 들고나는 것이 그대로, 들고남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아버지!’하면 그대로 아버지 역할을 해내듯이 스스로 들어오고 스스로 또 내는 거죠. 그렇게 여여하게 작용을 하는 겁니다.
반야심경에 ‘고정됨이 없이’ 이렇게 했죠. 고정됨이 없어서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이렇게요. 바로 여러분이 공했기 때문에 고정됨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보고 듣는 거 말하는 거 가고 오는 거 만나는 거 차를 타는 거, 시발점이 종점이고 종점이 시발점이니까 종점도 없는 거를 알라는 겁니다. 하여튼 이렇게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그대로 하나로 한 군데서, 한 군데라고도 할 수 없는 데서,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데서 그 많은 모두가 나온다는 거를, 자동적으로 여여하게 나고 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니까 열어젖힐 칸막이가 따로 없는 겁니다.
나를 이끌어 가는 선장은 나한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장과 내가 상봉을 해야만 자리가 잡히는데 자리가 잡히려면 심봉이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서 자꾸 입력을 해야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을 옮기게 됩니다. 조그만 거든 큰 거든 실천을 옮기는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봅니다. 어쩌다 한번 실천을 하게 되고, 어쩌다 한번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떻게 생각하면 문이 열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차차 그렇게 하다보면 문이 활짝 열리게끔 됩니다. 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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