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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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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질문

사람이 나서 일생 살아가는 과정에 고난과 역경이 무수히 많이 놓여 있고 대다수의 모든 선한 분들은 아름답고 밝은 세상을 엮어가고 행복을 만끽하며 사는데, 이 못나고 한 많은 중생은 그 속에 융화되지 못하고 늘 아웃사이더로만 남아 있습니다. 저는 불교가 무엇이고 가르침이나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타종교에 심취한 사람도 아니며 그저 답답하고 한쪽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진 한이 아플뿐입니다. 인생에 스승이 따로 없듯이 그저 나혼자 가야할 길이지만, 막혀있고 건너기 힘든 장벽들이 너무도 많기에 어리석고 미천한 이 사람은 갈피를 못 잡고 늘 어둠속에서 헤메이다, 넘어지고, 부딪쳐서 상처난 곳 치유 받을길 없이 외로운 인생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제 자신이 그저 안타깝고 한스러워 도움의 손을 내밀어 봅니다. 저는 어찌해야 될까요? 제가 왜 낳스며 왜 존재하고 왜 힘들게 가야 하는지요. 제가 일신상의 고통을 호소하고자 드리는 우문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누구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당성과 존재성을 확실히 알며 밝은 삶에 등불을 담아 나아갈수 있는가를 알고 싶습니다. 이번 죄의 댓가로 얼마의 형기를 받을런지는 모르오나, 그것이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를 위해서 대변해 줄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이 견딜수 없는 아픔이 되어 저의 정신과 육체를 좀먹어 들어가는 것을 느낄때 섬뜩함과 비애감을 통감하며 작아지고 초라해 지는 제 모습이 어딘가 부족하고 올바르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부처님은 자비하시고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신다는 말씀을 잡고서 이제는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밝은 빛을 쫓아 가고자 합니다. 부디 갖힌자의 작은 소망을 외면하지 마시고 저에게 살아갈 힘을 주십시오. 바쁘신 중에 두서없고 못난글 읽어주시어 감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1999.11.11 어리석은 중생으로부터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현식 처사님께

이 마음공부를 해보지 않은 분 같으니까 아주 자세히 말씀을 드릴테니 마음을 가다듬어서 차분히 한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체 경계를 주인공 자리에 되돌려 몰록 놓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데서 생깁니다.  올바른 믿음은 수행의 큰 근본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바르게 세우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은 매우 주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믿음이 중요하니 믿어라, 믿어라 한다고 해서 믿는 사람도 드물고, 또 믿게 되어지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고구정녕한 설명이 따르게 됩니다.
먼저 나를 잘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란 무엇이냐?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확연하게 풀릴 것 같으면 불법의 참 맛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야 그냥 나지 무어겠느냐 싶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나는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젭니다.  부모에게서 왔다구요?  그건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받았다는 뜻이지, 그런 생물학적인 나 말고 나 그 자체는 어디서 왔을까요?  뒤집어서, 부부 사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부부는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전혀 모릅니다.  태어날 아기의 성격, 심성을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즉 그것은 부모의 생각대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니,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목수에 의해서 집이 지어지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목수는 자기 마음대로 집을 설계하여 짓지만 인간은 자기의 자손을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낳지 못합니다.  이 말은 뒤집어서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어떤 범상치 않은 무엇과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비밀 하나를 짐작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결국은 수많은 의문들을 불러오게 되고, 그 끝에서 우리는 불법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입니다.  이 나는 항상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편안치를 못합니다.  바로 이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세계가 고(苦)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 말고 또 하나의 나가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얘기하면, 그 또 하나의 나가 다른 '또 하나의' 나인 줄 알게 될지도 모르니 '참나(眞我)'라고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생멸하는 중생심으로서의 나는 '거짓나'이며, 그와는 다른 나의 참된 면모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예로부터 나를 찾아라, 나를 찾아라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때의 나란 말할 것도 없이 참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나는 거짓나와 떨어져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나의 근본 그 자체가 참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생심·번뇌심·삼독심을 '끊고' 참나를 얻는다기보다, 그것들을 되돌려 놓음으로써 참나로 되바꾼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참나를 진정으로 찾아서 실현하게 되면 그때에는 중생으로서의 거짓나 또한 참나의 한 모습임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예로부터 참나를 일컫는 여러 이름이 있었습니다. 불성이다, 진여(眞如)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등등입니다.  나는 그 중에서 주인공(主人空)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는 선가(禪家)에서 쓰여졌던 용어지요.  왜 주인공이냐? 나의 참 주인이니까 주인공이요, 또 텅 비었기 때문에 주인공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면에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나의 주인이라는 측면입니다.  나의 주인이란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그를 근거로 해서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지요?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이전에 나는 무엇이었느냐?  인간이(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다만 정자와 난자의 결합만은 아니다.' 바로 그겁니다. 
내가 있게 된 것은 주인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는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땅 위에서는 보이지 않고, 줄기·가지·잎·꽃·열매 등만 보입니다.  그걸 보통 나무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땅 밑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 뿌리는 땅을 헤집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줄기·가지·잎·꽃·열매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주인공을 나무로 비유하자면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마치 나무가 자신의 뿌리가 흙에 가려서 자기의 뿌리를 못보지만 뿌리는 엄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사님도 자기의 뿌리인,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맡기고 살아가는 공부를 한다면 그렇게 허망하지도 않고 허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주인공은 이 몸이 있기 이전 수 억겁을 거쳐서 자기를 이끌고 온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몸이 나라고 생각하고, 지금 나에게 닥쳐온 고난과 고통을 내가, 이 몸뚱이가 해결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벗어 날려고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억 겁을 거쳐서 입력된 인연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입력된 자리에 되돌려서 지워야만이 지워질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몸으로 방방방방 뛰니깐 지워지기는커녕 더 얽혀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인공!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놨을 때 공덕이 되는 겁니다.  공덕이란 무엇인가?  모두 합해서 손 없는 손, 눈 없는 눈, 귀 없는 귀가 모든 것을 포착해서 잘 이끌어 주니까 그게 공덕입니다.  사람마다 떳떳하게 살지 왜 그렇게 그냥 애를 쓰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살다가 오늘 죽는다 하더라도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가 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떳떳하게 사는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자기 뿌리를 믿고 모든 경계를 맡겨 놓아야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믿을 수도 없고 놓을 수도 없고 맡길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체험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다보면은 큰 거 작은 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놓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입력된 모든 인연들을 놓고 가다보면 자기의 앞 길이 트이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주인공을 믿고 맡기는 작업을 필히 해 나가십시오.  꼭 그렇게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30분씩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나를 있게 한 주인, 당신만이 나를 올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잖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관하십시오.  서러워 울 때도 주인공을 부여잡고 울고,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주인공만은 항상 함께 하는 것이니까 주인공을 부여잡고 주인공을 의지하고 우십시오. 
나의 근본이자 나의 아버지인, 주인공은 언제나 당신과 항상 함께하는 것이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이끌어줄 수 있는 것도 오직 주인공 밖에 없으니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주인공을 찾으세요.  그렇게 하다보면 꼭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언제나 일체제불님께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당신의 근본과 둘 아니게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처사님 꼭 그렇게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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