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시 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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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마음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입니다. 스님께서는 일상생활 중에 늘 주인공에 관하라고 하십니다. 그럼 좌선을 할 때도 주인공을 화두 삼아 들고 있으면 되는지요? 저는 좌선을 즐겨 하는 편인데 좌선의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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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모든 것이 한군데 주처에서 나고 든다는 것만 알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뜻으로 다 통하게 됩니다. 왜 뜻으로 “참 광대무변하구나. 참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구나. 참 신비하구나!” 하는 그런 환희심을 느끼실 때가 있죠.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급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고, 참 이 자리에서는 천차만별로 돌아가면서 갖은 행을 다 하기 때문에 어떠한 힘만이 있다고 할 수가 없는 거죠. 그게 원심력입니다. 원동력 말입니다. 주처 말입니다. 그게 바로 오신통을 굴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름지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거운 뜻이 있다. 예전에는 “이 뭣고?” 하고서 관했는데 지금 세상에는 너무 아는 게 많아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말이지 너무 훌쩍 뛰어넘어가리만큼 아주 머리가 선명해지고 정말 많은 지혜를 얻고 세상물리가 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지금 세상에는 “이 뭣고?” 해서는 생 맷돌 돌아가는 거와 같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뜻으로 본다면 이게 들이고 내는 데 문이 없어서 들어갈 문도 없고 나올 문도 없이 나고 든다는 걸 안다면, 이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잘하든 못하든 자기가 하는 거지 누가 하는 겁니까? 근데 자기가 아니라 진짜 자기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놓을 수 없는 나가 있어요. 거기서 다 들이고 내고 천만가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든, 또 보이는 세계든 육신과 더불어 같이 회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그 알고 있는 묵지룩한 심력이 있어 작용을 한다는 얘깁니다.
그 심력을 딱 인정하고 관한다 하면은 거기에서 언제나 힘이 배출이 되는 것이며, 거기만 지금 보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더 뜨지도 않고 내려뜨지도 않는데 이 마음의 눈은 거기를 지금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마음의 눈이 거길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이라고 그랬거든요, 지장. 지장은 땅 속에 묻혀있는 보배를 말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몸 속에 묻혀있는 보배를 말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 보배가 바깥으로 나와서 광을 내면 바로 관세음입니다. 그러니까 관세음이 따로 있고 지장이 따로 있고 뭐가 따로 있고 뭐가 따로 있다고 하면 어지러워서 종교를 어떻게 믿습니까? 귀찮아서 어떻게 불교를 공부하겠느냐는 겁니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야, 산신 찾으러 가라, 칠성 찾으러 가라.” 이런다면 그 못 믿을 겁니다. 내가 피곤해서 죽겠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여기 가야 되고 저기 가야 되고, 여기 놔야 되고 저기 놔야 되고, 그렇게 못하면 또 온통 끄달려서 괴로워하게 되는데 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그런 것을 우리는 다 타파하고 부처님 한 분 모셔놓고, 그 몸이 내 몸이고 그 마음이 내 마음이고 그 생명이 내 생명이니 둘이 아닌 그 점을, 도리를 아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일체 만물의 근원과 물질과 모든 이름과 허공의 이치를, 유생 무생을 다 알 수 있고 다 말할 수 있고, 조그만 풀잎하고도 같이 말할 수 있고 송장하고도 말할 수 있고, 말 없이도 말할 수 있고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눈은 건당 뜨고 마음의 눈으로 거기를 지켜보면서 관하세요. 각자 여러분 마음의 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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