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과 무명에 대하여...
본문
질문
불교에서는 한편으로 불성을 갖춘 인간이라 말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명에 둘러싸인 인간이라고 그러는데 그 두 가지 개념이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좁은 식견으로는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에 불법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모순덩어리 이론으로 오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르침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이런 걸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큰 나무가 있고 작은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왜 작은 나무라고 했고 큰 나무라고 했을까요? 왜 고목이라고 했으며, 왜 그런 단어가 생겼고,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그리고 산도 높은 산이 있고 얕은 산이 있다는 그런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그런 말이 나온 것은 바로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산이 없다면 얕은 산도 없고, 얕은 산이라는 그 언어도 나오지 않았을 거고 또 얕은 산이 없다면 높은 산이라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고 그런 말이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넓게 따지고 본다면 얕은 산도 얕은 산이 아니요, 높은 산도 높은 산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생의 품성, 만별의 생명들이 있는 거는 다 불성이 있는 법인데, 어째서 그것이 다 어우러지지가 않습니까? 마당에 있는 저 풀도 길고 짧고 그럽디다. 똑같이 잘라 놨는데도 먼저 쓱 나오는 게 있고 나중에 나오는 풀이 있고 그럽디다. 그런 것도 그렇게 조화를 이루면서 어우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깐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얕다 높다, 동이다 서다, 여자다 남자다, 잘못한다 잘한다, 모른다 안다, 불성이다 무명이다 이런 거를 몽땅 놓는 것이 바로 선맥을 바로 이어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분별하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길 없는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요만한 거 하나도 다 나한테서 나오는 거니까 바로 나한테서 해결하고 나한테서 잘 된 거니까 나한테다 감사하고, 내가 갔기 때문에 남을 원망할 게 아니라 내 탓이라는 걸 바로 알면서 그렇게만 한 군데로 뭉쳐 놓는다면, 이 세상을 다 안 가진 게 없고, 또 그 한군데로 뭉쳐 놓고 또 놓다보면 나중에는 자기를 홀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때서는 ‘아이구, 알고 보니까 하나도 버릴 게 없구나. 일체가 나 아님이 없구나. 어저께 오늘이 따로 없고 하나가 따로 없고 만도 따로 없구나.’ 하는 걸 알게 됨으로써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실상의 중용처럼, 그냥 이걸로도 나투고 저걸로도 나투고 한 찰나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저 한 찰나에 들었다 한 찰나에 귀중한 설법을 하시고 나가시는 겁니다.
그렇게 삼천 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꾸준히, 그리고 모든 것이 평등하게 물이 흐르듯이 흘러 도는데도 불성이니 무명이니 하고 갈라서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그렇게는 생각지 마세요. 하다못해 기어가는 벌레도, 생명이 있는 거는 다 불성이 있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그렇구요.
옛날에 선사들께서는 나라에 싸움이 일어난다거나 그런다면 꽃이파리 하나 하나를 군사로 만들어서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보경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급하니까 마음을 내는 게 ‘이보’예요. 한발 내려딛는 거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생겨서 다 죽게 만드는 그런 문제가 생긴다면 땅속에 있는 그 무기들을 전부 녹슬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마음 법입니다. 중단시키고 그런 일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부처님의 마음으로 다듬어서 그런 마음이 안 생기게 만들고, 국민들한테 나쁘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저지르고 자기가 손발 들고 나가게 만들고 말입니다. 그러는 거지 누가 말을 하고 때리고 갖다 가두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훌륭한 법을, 이렇게 광대무변한 법을, 어째서 우리는 외면하고 자기를 발현하려는 노력들을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를 왜 외면을 합니까? 제일 중요한 건, 자기의 아픔을 거두어주는 진짜 자기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길을 지나가다가 엎드러져서 무르팍이 깨져 보세요. 거기 남의 손이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손이 얼른 가서 ‘아이쿠, 아퍼!’ 하면서 어루만져주는 그 손이 바로 십대제자가 거기 가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이 십대제자뿐이겠습니까?
그래서 한마디를 하면 봇장이 울려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깐 또 그런 질문도 나옵니다마는, 우리가 지수화풍이라는 소리를 왜 자꾸 하는지, 지금 전체가 지수화풍 아닌 게 없습니다. 근데 그 지수화풍이, 즉 말하자면 바람과 흙과 물이 한데 합쳐서 혼합이 되니까 온기가 생겼습니다. 온기가 생겨서 불이 나는 건데 그것이 바로 생명의 근원지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게 근원지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몸으로 낫게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생명의 근원지는 딴 데 가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몸속에 수없는 세월을 거쳐서 진화돼서 올라온 그 자체의 근원지를 보라고 바로 인연에 따라서 전부 미생물 모습을 해 가지고 갖가지로 몸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 물 주머니로 나오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지수화풍의 근원지라고 하는 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수화풍의 근원지를 가졌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살고 있는 겁니다. 또 지수화풍이 아니라면 이 세계가 발달할 수도 없고 연구할 수도 없거니와 과학이라는 그 소리도 안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끝간 데 없는 진리가 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불성과 무명은 다르지 않습니다. 무명이 없다면 어떻게 불성을 발현하려고 노력들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저런 생각 하는 그 자체가 어디를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지를 잘 생각해 본다면 일체를 주인공 불성자리에 돌려놓고 무명 업식의 놀음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관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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