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들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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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희 언니가 절에 열심히 다니는데 요즘 제 사업이 잘 되지 않으니까 마음을 닦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절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그것이 내 쪽으로 온다고 하면서 천도재도 지내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수긍이 가는데요, 정성을 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 말만 들으면 너무 기복을 바라는 것 같아서요. 어찌해야 하는지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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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보이지 않는 데서 생긴 병은 보이지 않는 데서 고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가 잘못 저질러 놓은 거는 자기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자기가 말을 잘못했으면 자기가 수습을 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이게 전부 일반 생활입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체득을 안 하면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고장 난 거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데서 고쳐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절실히 믿으셔야죠.
그 반면에 인간은 태어날 때 어머니 아버지의 뼈와 살을 빌어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인과에 의해서 전자에 살던 악업 선업을 다 이 몸뚱이 속에 지니고, 한 혹성의 별성이 움죽거리듯이 몸뚱이 속에 생명들이 그렇게 인연지어진 대로 지금 움죽거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악업 선업이 한데 뭉쳐진 고(苦)라고 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과거에 살던 자기의 업식이 지금 현실에 자꾸 나오는 까닭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행과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복과 덕을 쌓고, 즉 공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거를 침착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항상 얘기하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몸만 받았지 자기가 지니고 있고 자기가 행한 그 과거의 업보를 자기가 지금 현재 들고 나온 겁니다. 그런 거를 여러분이 정성을 들이고 불사에 동참을 하고 이러면서도, 자기가 과거의 업을 제거해야 자식 대로 내려가도록 그것이 즉, 뿌리에서부터 가장구에서부터 이파리로부터 꽃이나 열매가 익을 수 있는 그러한 부모의 유전적인 인과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잘 해야만이 자식뿐 아니라 자기가 이다음에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도 그 자식으로부터 받들어 줄 수 있고 내가 수만 명을 거느려도 손색이 없으리만큼 그런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않은 것을 그걸 어찌 바라겠습니까? 지금 고통이 있어서 고통스럽다고 앨 쓰기 이전에 내가 해놓으면, 이 세상에는 요만한 거 하나 에누리가 없습니다.
절에 스님이 계신다 해도 어떤 스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한 푼 두 푼, 아니 콩 한 쪼가리도 갖다 주는 게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고,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또 자기 부모 은덕을 기리기 위해서고, 위로는 조상님의 은혜를 갚고 묵은 빚을 갚고, 아래로는 햇빛을 주면서, 또는 뿌리를 길러줄 수 있는 그런 어머니 아버지의 능력에 도달해야만 되고 정성이 도달해야만 되고, 그 공덕이 도달해야만이 우리가 참으로 자유스럽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기초가 되고 또 그런 기반이 다 정해지는 겁니다.
나무가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지고, 낙엽이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눈이 오거나 비가 오더라도, 바람이 세게 불어도 그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과 같이 우리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인내가 있어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고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갖다 주는 거지 하지 않았는데 누가 갖다 줍니까.
여러분 지금 현 세상에서 지금 생활을 하고 계시지요? 생활을 하고 계신데 밤이나 낮이나 일을 나가서 그만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움죽거리지 않았다면 그 대가가 올 수 있을까요? 대가는 오지 않습니다. 그것입니다, 바로. 내가 마음의 정성을 한 번 했을 때 그 마음의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빚진 거를 갚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도리를 배우고 실천하고 나가다 보면 내 마음이 바뀌고 내 모습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어지는 것을 모두 아실 겁니다.
그와 같이 인간에게는 자식과 부모라는 가설, 형제라는 가설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동적인, 자가발전소라고 하죠? 주인공이 바로 자가발전소입니다. 용광로도 되구요. 그래서 거기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맡겨 놓다보면 그렇게 여러분이 아시게 됩니다. 하나하나 맡겨보고 지켜보면서 거기서 실험도 되고 바로 체험이 되는 겁니다.
요즘은 참 어려운 시기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이렇게 이해는 하지만, 없고 있고를 떠나서 불심이 돈독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건데 이 몸뚱이가 살아봐야 얼마나 오래 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항상 무주상 보시를 하라고 하는 말의 뜻은, 내가 천원을 가지고 가든 만원을 가지고 가든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에 물건과 더불어 바꾸어 가지고 나오면서 내가 돈 준 것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쓰기 위해서 물건을 샀는데, 어찌 부처님 전에 단돈 천원이라도 정성을 들이면서 그 천원 낸 거를 생각하겠느냐는 겁니다. 만약에 냈다는 생각을 하고 보시를 한다면 그것은 아마 무효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냈다는 상을 두고 했기 때문에 대가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무주상 보시로서 내 성의껏 내 가정 형편껏 하면서 식구를 속 썩이지 말고, 또 내 속을 끓이면서 남을 원망을 하면서 이렇게 단돈 얼마를 시주했다고 하면은 그것은 무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병들 난 것도 바로 주인공에 그렇게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바로 자기가 밀고 나가는 거 아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이거는, 그건 다짐합니다. 자기가 실험 안 해보고 자기가 체험 안 해보고는 이런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공부랄 건 없지만 내 마음의 도리를 다 익히지 못한 여러분이 지금 이런 저런 일들에 끄달리고 있는데 마음으로만 기울어지지 말고 공부를 하면서도, 이 도리를 알려고 공부를 하면서도 단 한 푼이든 두 푼이든 자기 형세대로 부처님 앞에 갖다 놓고 ‘일체제불이 바로 당신이요, 당신이 바로 내 마음이요. 당신의 형상적인 몸이 내 몸이니 어찌 둘이겠습니까? 주인공! 당신밖엔 해결 못하지요.'' 하고 내 형세대로 갖다 놓고 정성을 들인다면, 여러분이 나으니 좋고 그 돈을 모아서 또 여러분의 여래의 집을 만든다면 그건 더욱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은 어떠한 개인의 집이 아닙니다. 여래의 집이라는 건 부처님의, 이 여러분의 일체 만물만생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성을 지극하게 할 수 있다면, 바로 제일 큰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마음 씀씀이입니다.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올바로 가지고 자기 몸을 똑바로 이끌고, 자기 마음으로 하여금 몸을 똑바로 이끄는 반면에 몸은 마음을 이끌고 이렇게 해서 양면이 온전하게 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인공을 믿고 일체를 거기에 맡겨 놓고 편안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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