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주인공과 나의 주인공
본문
질문
부처님의 주인공이나 저의 주인공이 마찬가지라 그러시는데, 부처님의 주인공은 무명을 일으키지 않는데 저의 주인공은 왜 무명을 일으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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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무명이 달리 무명인가요? 그 도리를 모르니까 무명이지요. 무명도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무명이 붙지 않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오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죠? 잠재의식 깊은 속에 만약에 녹음테이프가 하나 있다면, ‘일심(一心)이라면’ 하는 소립니다. 공한 일심이라면, 자기 주인공 자체가 테이프라면 말입니다. 녹음이 된 데다가 다시 녹음을 하고 또 녹음이 된 데다 다시 녹음을 하고 자꾸자꾸 가면은 앞서의 녹음한 것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런다면 그것은 무명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로 놓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대로 놓고 가는 건데 여러분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명이라는 것도 이름을 붙여서 무명이지, 무명이 없으면 부처를 이루지 못해요. 망상이 없으면 부처도 이루지 못합니다. 분별이 없는데 어떻게 부처를 이루겠습니까? 그럼 목석이고 송장이지! 또 생명 근원, 뿌리만 있다면 보이지 않으니까 무효예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하면 위로는 부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라는 걸로만 듣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하는 뜻을 그렇게 넓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렸습니다. 우리 몸 하나를 놓고 축소해서 작게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러면 위로는 참자기 자체, 참자기를 존중하면서 아래로는 자기 몸뚱이를 올바르게 끌고 다니는 겁니다. 그럴 줄 알아야 남도 올바르게 이끌어주지 않겠습니까? 내 행동이 발라야 남들도 스스로 “저 사람 정말 배울만 해! 말과 뜻과 행이 올바르기 때문에 저 사람은 정말 본받을 만한 사람이야!” 이렇게 말씀들 하시죠.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안될 때, 하나라도 어긋날 때 그것은 업보가 되고 유전이 되고 바로 무명이라고 이름 해서 붙일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가 무명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고 부처라고 붙일 것도 없는 겁니다. 반드시 우리가 살고 돌아가려니까, 돈이라고 이름을 지어 놨고 또는 우리가 물건에 이름을 붙여 놓고, 이름을 불러야 되겠으니까 그런 거죠. 어린애를 낳아도 이름을 붙여서 아무개라 해야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이름을 붙여놓은 것뿐이지 이름이 사실은 그 사람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름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그 이름을 대동소이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했다는 얘깁니다. 그거고 저거고 다 한마음에서 나오는 거니까, 나쁜 마음이 나오는 것도 거기에서 나오는 거, 좋은 마음이 나오는 것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이 나오면 좋은 행위를 할 것이고 나쁜 마음이 나오면 나쁘게 행을 할 것이니까 모든 것은 자기 참주인공에 모든 거를 맡겨 놓고, 믿고 물러서지 않고 거기다 관하면서 그저 모르면 모르는 대로 놓고 알면 아는 대로 거기다가 관해서 놓았을 때, 비로소 참 생명수의 맛을 홀연히 알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지금 가정에 풍파가 이렇게 많고 병이 많아서 죽겠는데, 급해서 죽겠는데 무슨 그렇게 주인공을 찾고 주인공에 전부 맡겨 버리라고 그러나? 아니, 난 지금 당장 급한데!” 이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뿌리가 싱싱하면 가지도 싱싱할 것이고 썩지 않을 것입니다. 이파리도 싱싱할 것입니다. 이파리 썩고 가지가 썩고 그런다고 해서 애를 쓰지 마시고 뿌리만 싱싱하다면 가지나 이파리는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싱싱하게 아주 푸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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