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놓는 과정이 필요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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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의 자비심에 귀의해서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다른 게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힘든다는 생각이 올라오니까 먹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부처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가 나를 만들었는데 제가 왜 법의 고통을 받아야 되고 왜 끄달려야 합니까? 난 그 자체에 대해서 내 주인공한테 못마땅해서 놓기가 싫어요. 왜 놓는 과정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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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아니, 그렇게 놓는 것과 받는 거를 둘로 보니까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 아닙니까. 본래는 놓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건데 그렇게 생각으로 공부를 하려니 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을 수밖에요. 그런데 그 자리는 놓기 싫고 놓기 좋고 하는 말이 붙지 않는 자리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매 순간순간 일체를 그 자리에 놓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항상 하는 말입니다만, 여러분이 걸음을 걸을 때 한 발짝 걸었으면 그냥 또 한 발짝 떼어놓을 뿐이지, 아니 뒷발자국을 생각하면서 걷습니까? 아니면 뒷발자국을 가지고 다닙니까? 그냥 한 발 한 발 걸어갈 뿐인데 거기에 무슨 놓고 말고가 있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자꾸 생각에 걸려 넘어지고 말에 걸려 넘어지고, 보이는 데 걸려 넘어지고 들리는 데 걸려 넘어져서 아프다고 하니까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사시라고 놓고 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원래 우리는 놓고 살고 있다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놓는 놈과 받는 놈이 어디 둘이던가요?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자면 바깥의 일이 있고 안의 일이 있으니까 바깥 경계와 내면 세계가 있어요. 그러면 이것이 둘이 아니면서도 둘로 불리우지 않나요, 네? 그러니까 그걸 그렇게 생각을 해야지, 어찌 숨을 쉬는 것만 쉬는 거고 내쉬는 건 내쉬는 게 아닌가요? 숨을 들이쉬는 거와 내쉬는 것이 둘이 아닌 까닭에 둘인 거에요. 그게 호흡하고 작용을 해야만이 생명을 유지하니깐 말입니다.
그러니까 숨을 들이쉴 때도 잘 들이쉬어야 사레가 걸리지 않고 편안하고, 숨을 내쉴 때도 잘 내쉬어야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내쉴 수 있는 것처럼 올라오는 생각도 잘 다스려서 놓아야 머리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도 공부하기가 어려워서야 어찌 공부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얘기입니다만, 어렵긴 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못 먹겠다, 뭐 먹히지 않는다 이러는데, 들이쉬고 내쉬는 그 자체 양면의 작용함을 하나로 안다면 먹히고 안 먹히고가 모두 한군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잘 먹히는 것도 안 먹히는 것도 다 마음의 작용, 양면의 작용이에요. 그런데 몸이 없으면은 공부를 못한다 이겁니다, 부딪침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끼니 때는 먹어야지 무슨 소립니까.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시자를 그렇게 함부로 먹이질 않고 굶겨서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늘 얘기하듯이 그 어떤 생각이 올라오든지 그 생각이 어디서 올라온지만 안다면 다시 그 자리에 맡길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끄달리지 마세요. 그리고 시간이 날때마다 선원에 와서 법회에도 참석하고 또 스님들 만나서 공부하는 얘기를 듣고 그러면서 편안하게 공부하도록 하세요. 자유롭자고 공부하는 건데 그렇게 법의 고덩어리를 하나 더 덧붙여서야 어찌 공부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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