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바르게 하는 방법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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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바르게 하는 방법은?

본문

질문

스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마음공부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옛날에 어느 부부가 바닷가에서 살면서 외동딸 하나 낳아 놓고서는 애지중지 기르면서 절에를 열심히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 아이를 위하고 가정을 위해서 말입니다. 누구든 다 그랬겠죠. 그 어머니가 절에 갈 때는 항상 깨끗하게 쌀에 뉘를 골라서 가지고 갔는데 십 년이나 그렇게 해 가지고선 다녔어요. 왜 그렇게 지성으로 절에 다녔느냐? 거기 풍습이 나이가 열일곱 살에서부터 열아홉 살까지의 처녀는 해마다 산에 바치게 돼 있었어요. 만약에 바치지 않으면 그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농사도 안되고 사람이 자꾸 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해마다 처녀 한 명을 바치게 됐던 거죠.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 그 나이가 닥쳐오니까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고 절에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머리에다 공양물을 이고서는 딴에는 기도의 효험이 있다는 절로 찾아가는데, 찾아가는 도중에 보니까 스님 한 분이 턱 나오시거든요. 그래서 “여기 아무 데 절이 어디 있습니까? 부처님 계신 법당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까 “허, 이 보살 보게. 아, 부처님이 여기도 계시고 저기도 계시잖나!” 그러면서 소나무도 가리키고 돌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도 부처가 있고 저기도 부처가 있잖나. 그걸 모른다면 어떻게 딸을 건지노?”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이 그냥 탁 박힌 겁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저 소나무를 부처로 볼 수 있고 돌을 부처로 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꼭 딸을 살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까 “저 돌이나 소나무나 당신하고 똑같소.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닌 줄 알아야, 일체가 다 부처하고 둘이 아닌 줄 알아야만이 그 자식을 건질 수 있소.” 이러거든요.



그래서 매일 기복으로 빌다가 그때부터는 소나무를 붙들어도 ‘둘이 아닌 내 부처님, 우리 딸 살려 주시오.’ 돌을 봐도 ‘나와 당신이 둘이 아니니 우리 딸을 살려주시오.’ 하면서 그때부터 더 열심히, 물을 봐도 그렇게 하고 나무를 봐도 그렇게 둘이 아니라고 관하고, 흙을 봐도 그렇게 관하는데 하다못해 큰 벌레를 봐도 ‘너도 나와 둘이 아니잖니.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줘! 너도 내 주인공이야.’ 그 어떤 걸 봐도 ‘너도 주인공, 나도 주인공, 주인공은 둘이 아니니까 나 좀 도와줘!’ 하면서 관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얘, 아무개야! 너도 나와 둘이 아니고 모든 게 둘이 아닌 것을, 앞서에는 너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헤맸구나.” 그러시고는 한 일주일 곡기를 끊고 그냥 앉아서 계시더니 나중에는 “얘, 나는 지금 급해! 그러니까 내 옷을 내와라.” 그러시더니 하얀 옷 한 벌 지어 놨던 것을 탁 입고서는 그냥 앉아 계시니까, 딸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왜 새 옷을 입고 앉아 계신가?’ 그렇게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저녁밥을 짓는다고 나갔다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열일곱 살 먹던 해에 말입니다. 돌아가셨으니 어떡합니까? 아버지를 부르고 그래서 장사를 치를 준비를 하는데, 장사 치르기 전날에 그 어머니가 꿈에 나와서 “아버지는 말을 안 들을 터이니 너라도 관을 지고 가서 물에 갖다 넣어라.” 그러더란 얘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하니까 “일평생이 아니라 수억겁을 거쳐서 나는 먹어 왔다. 그런데 내 몸뚱이 하나 던져 주는 거야 뭐가 그렇게 아깝겠니? 그것도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건데, 큰 고기든 작은 고기든 다 먹게 던져 주는데 뭘 그러느냐?” 그러거든요. 소원이니 꼭 그렇게 해 달라고 그러니 어찌할 수가 없는데, 아버지는 상여로 내가서 묻으려고 관을 갖다 놓고 염을 하고 병풍을 둘러쳐 놓고 야단났거든요.



근데 일가친척들 보라고 관 뚜껑도 안 덮고 병풍을 쳐 놓고 관에만 넣어 놨어요. 그랬는데 밤중이 되어서 초상 치르는 사람들은 다 나가고 딴 데서 자고 그러니까 거기를 딸이 지키고 앉았다가 몰래 겨우 관을 쓰러뜨려서 빼내 가지고 그걸 그냥 걸머지고 나갔습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여자도 지게를 잘 졌지 않습니까? 지고 가서 돌을 달아서는 물속에 그냥 얼른 넣고는 왔단 말입니다. 와서 자는 척하는데…, 그게 인제 소원을 이루어 드린 거죠?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삼 일 만에 말입니다. 두꺼비 한 마리가 슬슬 부엌으로 기어들어오는 겁니다. 그 두꺼비가 들어오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거든요. 전날 저녁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셔서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서 이렇게 하니 그런 줄 알아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딸이 이 두꺼비가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걸 보고 “아이구, 엄마가 날 살리려고 이렇게 했는데 두꺼비가 돼 가지고 나를 어떻게 살리려고 하는가.” 이러면서 둘이 운 거죠. 그러고는 부뚜막에다 항상 밥을 주고 해서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인제 딸도 열아홉 살이 됐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는 그렇게 바치기 전에는 아무도 시집을 못 갔고 그렇게 일 년에 한 명씩 바치고 난 뒤에 나머지 처녀라도 남아야 시집을 갔거든요. 그런데 이 딸이 뽑혔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두꺼비를 보면서 “내가 지금 저 집에 들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 이 몸을 해 가지고 이 세상에 왔는데 너를 살리고 난 뒤에는 이 몸을 벗고 갈 것이니라. 네가 만약에 가마를 타고 그 산중 골짜기에 있는 산당에 가거든 꼭 나를 치마에다가 싸 가지고 가거라.” 그러시거든요. 그래서 그 딸은 어머니 두꺼비를 싸 가지고 갔어요.



싸 가지고 갔는데 밤중이 되니까 큰 지네가, 서까래만한 지네가 그냥 주욱 나오는데 차디찬 입김으로 인해서 아주 그냥 쓰러질 것만 같은 겁니다. 그래 푹 주저앉았는데 그 두꺼비가 치마 위에다가 앞발을 척 걸더니 그냥 보꾹을 쳐다보고 안개를 뿜어 대는데 안개가 자욱해지더랍니다. 이 딸은 그 지네를 보고 너무 기가 막혀서 앉아서 그냥 오그라진 채 까무러쳤어요. 그런 사이에 이 두꺼비는 한 서너 시간 동안 안개를 그냥 그렇게 뿜어 댄 거죠.



그랬는데 뭐가 털썩 내려앉는 소리에 까무러쳤다가 홀연히 깨어나 보니까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아요. 불도 꺼지고 했기 때문에 안 보이는데 그냥 그 두꺼비가 치마폭에서 자꾸 발로 손을 치면서 얼른얼른 나가자고 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새벽에 동네 사람들이 전부 와서는 와 하고 달려들었어요. 인제 창문이 훤해지니까 그렇게 큰 서까래만한 지네가 떨어진 거를 알았어요. 그 어머니가 두꺼비의 몸을 해 가지고 나와서 딸을 살리고 마을을 살린 겁니다. 그게 다 부처님 법이죠.



그러면 그 어머니가 두꺼비의 몸을 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처님도, 만약에 사람을 건지는데 두꺼비로 화해야만이 그 사람을 건진다 할 때는 두꺼비로 화하는 겁니다. 돼지를 건지려면 돼지 속에 들어가야 돼지를 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모습으로 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름이 없는 것이 부처님이다 이런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 딸을 살리고 그 마을을 다 살린 겁니다. 다 살려 놓고 그 딸의 꿈에 턱 나타나서 “이제 나는 갈 터이니 내가 입었던 그 옷과 저 지네의 옷도 다 태워 버려라. 그 지네의 마음도 이제는 둘이 아니게 인간으로 화했느니라. 마음을 고쳐서 인간으로 화해 가지고선 좋은 일을 많이 할 거고 나도 옷 입었던 것을 벗어 놨으니 둘 다 태워 버려라. 지네도 둘이 아니요 두꺼비도 나와 둘이 아니요 너도 나와 둘이 아니니라, 이제는.” 이러면서 훌쩍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보니까 과연 두꺼비가 죽어 있더라는 얘기죠. 그래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공중을 쳐다보고 울면서 장작을 이쁘게 쌓아 놓고선 거기다가 그 두꺼비를 백지로 싸서 올려놓고 화장을 시켰대요. 딸이 그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답니다.



그러니까 벌써 그 스님으로 인해서 어머니는 딸을 살리고 동네를 살리고, 그 뜻으로 인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전부 불씨를 심어 줬답니다. 그 스님이 그 부인에게 똑바로 자성본래불을 찾게끔 해 줘서 일체 모두 자기 아님이 없는 줄 알게 만들어서 딸도 살리고 동네도 살리고, 딸과 동네 사람 모두에게 불씨를 심어 줘서 자력으로써 마음 도리를 공부했대요. 그래서 전부 보살을 이루어서 하늘을 오르고 내리면서 모든 중생을 건졌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일체 만물만생이 모두 어항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거를 모르고 사는 겁니다. 한 발도 바깥으로 떼어 놓을 수가 없어요. 공기주머니 속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대로 자유스럽지를 못해요. 그래서 어떤 체제 속에서 저항을 받고 사는 거지요. 그래서 한마디로 말해서 그 위치에서 마음으로 그냥 자유자재 못하고 제 마음을 가지고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이 되어 있는 겁니다, 모두가. 벌레에 이르기까지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연어는 자기가 난 자리에 다시 와서 새끼들을 낳아 놓고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한마디로 고렇게 표현을 해서 인간도 박아 놓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이 어항 속에서 벗어나야, 즉 말하자면 공기주머니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우리는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자유자재 할 수가 있다 이거예요. 그 박탈 속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가 있다 이겁니다. 지금 우리는 노예가 돼가지고 갇혀서 사는 형국이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마음 먹기에 달려 있으니까, 한 마음 먹기에 달려서 한 마음을 잘 먹으면 부처가 되고 한 마음을 잘못 먹으면 그냥 중생으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이겁니다. 이러한 의지 하에 인간이 되면 만물의 영장으로 부풀린다 이런 거지요.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우리가 마음공부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찾는 자나 믿는 자나 자기를 믿고 자기를 발견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본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요.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자기가 발견을 못하니깐 꼭 해야만 하는 거죠.



지금 색경을 보고 있으면 색경 속에서 내가 하는 대로 따라서 색경 속에서 하지요? 그것과 같이 마음이 하자는 대로 육신은 움죽거리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림자와 그림자가 아니라, 참자기와 자기 그림자가 둘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림자 하나만 가지고 자기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커지지요. 앞의 예화에서도 말을 했지만 여러분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살아서 그 도리를 모른다면 죽어서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 모두가 몸뚱이가 없어지기 전에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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