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식들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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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 저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고 막내 아이는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네요. 제가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남겨진 아이들을 생각할 때 차마 눈이 감겨지지 않습니다. 스님, 어떻게 마음을 내야 아이들이 엄마 없는 자식이라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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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늙었든지 젊었든지 지금 이 모습으로 살다가 다시 요 모습을 똑같이 가져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모습으로 해 가지고 나오기 이전에 우린 이 모습을 가지고 지금 살면서 이렇게 돌아가면서 공부가 되는 거지, 죽으면 벌써 이 몸뚱이가 없어서 부딪칠 게 없기 때문에 더하고 덜함이 없습니다. 더하고 덜함이 없기 때문에 그 그릇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죠. 고 차원에서 말입니다. 이 몸을 벗고 죽은 사람들은 한계가 딱 지워져 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은 가고 옴이 없이 가도, 죽었으면 훨훨 날아다닌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요, 그것도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청와대 못 들어가죠. 또 경우에 맞지 않을 때는 어떠한 남의 모르는 집은 못 들어가죠. 그렇게 우리가 세상를 살아나가는데 철저하게 모든 상식이라든가 계율이 있듯이 그런 그 차원 그릇의 계율이 있기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때 길을 지나가다 차에 치여 죽은 사람들이 있다면 또 그 자리에서 치여 죽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몸이라도, 집이라도 오면은 들어가려고 하는 거죠. 자유자재 못하니까. 살아서 우리가 자유자재권을 가져야지 죽으면은 더하고 덜함이 없기 때문에 자유자재 못한다 이겁니다. 공부도 못한다는 얘깁니다. 다시 이 세상에 탄생을 해서 다시 또 그 길을 걸으면서 공부를 해야 돼요. 그러니 얼마나 시일이 걸립니까? 그러니 살아 있을 때 공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7남매를 낳아 놓고서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이게 한 30년 전도 됩니다. 근데 그때에 어느 산골인데 그래도 웬만하게 살았습니다. 초가집이라도 농사를 잘 짓고 살았는데 그 어머니가 7남매를 낳아 놓고 남편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농사짓고 살다 보니까 상당히 쇠약해져 가지고 아주 병이 들어서 다 죽게 됐어요. 이미 아주 죽게 됐어요. 죽기 전에 그 애들을 여기도 다니고 저기도 다니면서 애 없는 집에다가 다 맡겼습니다. 사실이 이러이러하고 이러이러하다고 그 사실 얘기를 다 하고 맡기고 혼자 왔습니다. 혼자 오면서 쪽편지 쓴 거를 하나씩 애들한테 다 줬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은 ‘인생은 이 세상에 나와서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면 남이니라. 너희들하고 나하고 인연이 돼서 같이 이렇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구름과 같고, 지금 새엄마 새아버지와 너희가 또 한 데 한 가정으로 모였으니 말 잘 듣고 잘 해라. 앞서의 같이 모였던 인연을 명심하라고 해 놓고, 엄마 소리도 안 했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인연이라고만 해 놓고 그걸 한 장씩 다 주고서 정직하게 살라고 해 놓고 그 부인은 죽을 때를 바라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앉아서 그저 기도하기를 ‘내 마음의 부처시여! 당신이 이렇게 해 놓으신 거니까 내가 다시 이 세상에 나와서 몸을 받게 하지 마시고 저런 불쌍한, 나하고 모였던 어린애들을 위해서 돌봐줄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주소서.’ 인연에 따라서 만났던 그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부처님의 심부름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몸이 부서지니 다시금 몸을 받게 하지 마시고 몸을 받게 한다면 한 사람밖에는 볼 수가 없다 이겁니다. 몸을 받게 하지 마시고 될 수 있으면 그저 애들을 위해서 보살펴 주도록 이렇게 일을 자기한테 달라고 마음의 부처님한테 고하고서는 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그 애들이 다른 집에 가 가지곤, 그저 웬만한 집도 가고 가난한 집도 가고, 어린애 못 낳는 집만 준 겁니다. 하여튼 못 낳는 집에만 줬는데 그 애들 간 집은 잘 살게 됐습니다. 그렇게 잘되니깐 공부도 잘 시키고 그럴 수밖에요. 그렇게 들어가면서 잘되고 그러니까 그 애로 인해서 그 부모들은 잘 지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온 겁니다. 얘기 거리가 나온 겁니다. 야! 그 엄마가 애들을 자식이 없는 집으로 다 데려다 주고선 모두에게 쪽지를 돌려주고 물에 들어갔는데 그집 애들을 그 엄마가 돌보는지 잘된다 이겁니다. 그 집만 잘되는 게 아니라 애들이 가서 사는 집이 잘되니까 그 친척들도 모두 잘되는 거라. 이것이 그 한 점의 마음, 그 애들을 다 기르지 못한 그 사랑 때문에 자기 몸을 헌신짝같이 버리면서도 자기 마음은 그렇게 걔네들을 위해서 간절히 자기가 돌보겠다고 빌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 그렇게 안으로 자기 자성 부처한테 다짐다짐하고 생명을 버릴만큼 그렇게 애원했기 때문에 모든 게 부처님의 한마음으로서 소원을 풀어 준 거나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그게 누굽니까? 미래의 그 애들이 바로 그 엄마 아니겠습니까? 그게 자기가 낳아 놓고, 씨를 뿌려 놓고 거두지 못하고 간 그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과거의 그 애들이 그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식들이 모습은 다르다 할지라도 자기 과거며 아니, 자기 미래며 부모들은 자기 과거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부하는 자세는 항상 울더라도 주장자를 잡고 울고 또 괴로워도 그걸 붙잡고, 좋아도 그걸 붙잡고 감사하고, 죽으나 사나 그거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깥으로는 절대 착과 욕심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놓으면 우리 살림살이는 어떡합니까 이러겠죠. 살림살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그게 전부 공부하는 과정이며 바로 보람인 것입니다. 또한 누가 사랑을 하지 말래나요? 안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육신과 더불어 모두가 사랑인 겁니다. 조화를 이루고 화목하게 되고 연줄 연줄이 그냥 가설이 돼서 집 안에도 불이 환하게 들어오니 얼마나 밝고 좋습니까.
어떤 방에는 안 들어오고 어떤 방에는 들어오고 이러면 얼마나 부자연합니까. 또 집 안에 불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고 봅시다. “아이구! 캄캄해. 어딨어? 어딨어?” 하고 온통 난리가 나고 할 일을 못하고 이렇듯이 우리 살림살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집 안에서 하루만 불이 안 들어와서 캄캄하고 물이 안 나와 못 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은 지혜라고 하고 마음의 밝음은 물리라고 합시다. 물리가 터지지 않고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거는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본래 우리는, 여러분의 각자 몸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그게 바로 주인공이자 바로 공부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래 이게 화두예요. 그러니까 모두 살아나가는 일체를 거기에다 맡겨 놓고 착이 없이 사랑하라 이겁니다. 내 사랑이 제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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