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없는 문이라야 하는지요?
본문
질문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서 수행의 방편은 어떤 식으로든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문을 찾아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진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론으로만 알고 그 도리를 모른다면, 아무리 경전을 옆으로 꿰고 위로 꿰고 바로 꿰고 이래도 그건 학설이요, 이론이니 참으로 부처님 제자 될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보살행을 하며 어떻게 실천궁행의 법을 그대로 준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경전을 편집하는 데에 가섭 존자가 아난을 들어서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너는 보고 듣는 것은 총명하게 잊어버리지도 않고 잘 기억하지만, 경전을 편집하는 데에는 해당되지 않으니 거기에는 자격이 없다.” 한 거죠. 부처님께서는 무의 법과 유의 법을 같이 설하신 거기 때문에 자기가 깨치지 않았으면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글자 하나를 쓰면 잘못 돌아가니까요. 이게 50% 50% 맞먹어서 같이 들어가면서 들려야 하는데 현상계 50%만 가지고 결정을 하려니까 해당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래 깨치지 못한 시기니까 그저 “부처님한테서 무엇을 받았습니까? 금란가사를 받고도 또 무엇을 받았습니까?” 이게 궁금한 거죠. 그러니까 그게 분별이라는 얘기지요. 분별을 놓게 되면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의 습도 떼지 않고, 모두 걸리지 않는 법을 배우지도 않고 ‘그게 뭘까?’ 하고선 천년만년 있어 봐야 자기를 모르고서 어떻게 남의 뱃속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자기 속을 알아야 그것이 서로 통신이 된단 말입니다. 무전통신! 심안으로 천체를 보게 되고 듣게 되고, 또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가고 옴이 없이 그렇게 열쇠구멍으로도 들락날락할 수도 있다 이겁니다. 그걸 왜 열쇠구멍이라고 했느냐는 얘기예요! 내가 생각할 때는 문이 많아서 전체가 문이라면, 열쇠구멍이 무슨 필요 있느냐 이겁니다. 네? 또 전체가 문이 없어요. 그런데 열쇠구멍이 문에 해당하느냐 이거죠. 또 그렇다면 그것도 역시 관문이요, 화두요, 공안이다 이겁니다. 공안 아닌 것이 없어요.
그래서 문을 찾아서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 사람과 문을 찾아서 나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불자 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육신이 문을 찾아 나가려고 하고 문을 찾아 들려고 하니까 찾을 수가 없는 거죠. 물질이 있는 거나 그렇지, 물질이 아닌 이상에는 문을 찾을 게 어딨으며 문을 찾아 나올 게 어딨느냐 이겁니다. 그렇게 문 찾아 들고 문 찾아 나가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부처님 뱃장 속을 알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일체 만중생의 속을 어떻게 알며, 일체제불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이거예요. 부처님의 말씀을 이론으로만 풀이하고, 들고 나는 게 고정되게 요건 요게 옳고, 조건 조게 옳고, 대승 소승 가리고, 요것이 옳다 그르다 이렇게 하는 그 분별심도 놔야 합니다.
그러니까 문이 없어서 열쇠구멍도 없고, 또 일체가 문이 돼서 열쇠구멍이 무슨 아랑곳 있느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섭도 없고 아난도 없고 열쇠구멍도 없다 이겁니다. 물질이 있는 거나 문을 열고 들어오지 내가 우주 전체를 싸고 하나의 주장자가 완벽하게 섰다면, 저 요술쟁이들이 왜 이렇게 여기다 끼고 접시 돌리잖아요? 그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시공이 없이 그렇게 돌아가는 공을 돌리듯이 돌리는 판국에 그 문을 찾아서 들어오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공부 못해요! 문이 없는 데를 그냥 덥썩 뛰어드는 사람이라야만이 그게 그냥 정통문이에요. 문을 따로 어떻게 찾아요? 문이 많은데. 문이 하도 많기 때문에 ‘무(無)!’ 했다 이겁니다. 또 문만 많은 건가요? 화두도 그렇게 많은 거지요, 닥치는 대로 화두예요.
그러기에 우리는 바로 나 자신부터 알아야 하며, 바로 내 마음과 내 육체가 어디로부터 이렇게 끌려다니고 이러고 있나 하는 거를 지켜보는 그 자체가 참선인 것입니다. 조사선이다, 입선이다, 행선이다, 와선이다 하는 것도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여하게 생활 속에서 그대로 바로 나 자신의 주인에 맡겨 놓고 돌아간다면, 그리고 지켜보고 실험하고 체험한다면 그것이 참선인 것입니다.
참선이라는 것도 그러하지마는 이 세상에는 마음들이 모두 내놓으라면 하나도 내놓을 수가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이 없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붕도 없고 벽도 없는데 모두가 문을 찾아서 부처님 도리를 배우려고 한다면 그거는 천만리 먼 것입니다. 천칠백 공안도 이 세상 돌아가는 데 있고 천당 지옥도 이 세상 돌아가는 데 있고, 부처님 법도 이 세상 돌아가는 데, 팔만대장경이 지금도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말로 다 하리까?
그래서 문을 찾아서 드는 사람들은 정말 참자기의 그 보배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문을 찾아서 들고 문을 찾아서 나고 한다면 한계가 있어요. 본래 사방이 터져서 문이 없는 것을 문이 있다 하고 문이 많은 것을 문이 없다 하고 이러는 이치는 무엇인가? 사방이 터져서 문이 하나도 없는데도 문이 있다 하고 전체 문인데도 문이 없다 하는 이치는 무엇인가? 내 집의 보배를 간수하고 내 집 보배를 찾을 줄 알고, 내 집 보배를 닦을 줄 알고 빛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 남의 집 보배를 아무리 탐내 봤던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따로 찾아요? 따로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그걸 종합해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네가 있으니까 주인이 되고 네가 있으니까 바로 공이다 이런 건데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다가 몰락 놔버려라! 네가 하는 거조차 놔버려라 이러는 게 뭐냐 하면 본래는 내가 빈 공에서 왔기 때문에, 온 것도 없기 때문에, 나조차도 공이다. 나조차도 공인데, 공에다가 넣을 거는 또 어딨으며 뺄 거는 어딨느냐. 그러니 하는 것이 전부 공했는데 공에다 또 넣으라니 이건 어폐가 있는 말이지마는, 모두 그렇게 공해서 돌아가면서 여여하게 살면서도 그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빈 껍데기로만 돌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 이전글인내와 정진이 필요할 것 같은데... 21.10.25
- 다음글공법에 대해서...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