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이 없이 선을 행하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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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 없이 선을 행하려면...

본문

질문

불교의 수행관인 ‘칠불통게(七佛通偈)’에 보면 “일체의 악을 짓지 말며 모두의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하여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 또한 일체 악행을 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남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반면에, 제 마음 안에 도움을 주는 나와 도움을 받는 상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했다고 하는 상이 없으면서, 함이 없이 선행을 하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를 들어서 한번 얘기해 볼까요? 내가 어디를 가다 보니까 장님을 눈 뜬 사람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노래를 시켜요. 노래를 시키고 나서 그 사람들은 피해서 숨어 있더라고요. 나는 숨어 있는 걸 알지만 딴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그 추운 데 떨면서도 처량하게 그냥 노래를 해요.

그랬을 때에 내가 주머니에 있는 거를 얼마라는 걸 생각지도 않고 듬뿍 집어서 줄 때, 내가 그걸 주기도 부끄럽더라고요. 뭐가 부끄러우냐. ‘저 상황에 그래도 그걸 뭐 준다고 저렇게 남 보게 저러나.’ 이것도 내 마음입니다. 그렇죠? 내 마음이라고요. 그래서 슬그머니 가는 척하고 그냥 그쪽을 보지 않고 줄 때에, 그것은 마음에서 준 거죠. 체가 없는 마음에서 준 거지 내 육신은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그죠? 손을 넣어서 심부름만 했을 뿐이에요. 그러면 내가 했다 내가 줬다고 생각할까요? 잠시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심부름만 했을 뿐이에요.

머슴은 주인이 “야, 쌀가마 가져오너라!” 그러면 쌀을 덜렁덜렁 지고 와서 턱 부려 놓고선 지게 갖다 놓고 그냥 나가면 그뿐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된 것이다 이거예요. 쌀가마니도 자기 것이 아니고 그냥 시키니까 그냥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쌀가마니에도 착이 없고 아무에게도 착이 없는 겁니다. 이쪽에도 착이 없고 저쪽에도 착이 없죠, 머슴은. 그렇죠? 그런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없이, 내가 했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보니까 그냥 손이 들어가서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심부름이라는 것도 말이니깐 이렇게 말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했다 하면 좋은 일을 자기 혼자 했나요, 좋은 일을 했게? 그리고 또 누굴 위해서 했나요, 주었다고 하게요? 그리고 또 받은 사람은 뭐 날 위해서 받았나요, 받았다고 하게요?

그래서 육신이 없을 때 받으려고도 하지 말고 육신이 있을 때 받으려고 하지도 말아라 이겁니다. 아무 것도 받을 게 없어요. 왜냐하면 그 장님이 나인 것입니다. 똑바로 말하자면 장님도, 바로 그 부르고 서 있는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고 나이기 때문에 내가 준 것도 없지만, 그냥 그 손이 내 손이고 내 손이 그 손이고, 바로 그 눈이 내 눈이고 내 눈이 그 눈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내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어요. 그 사람에게 내가 준 것도 없고 그 사람이 받은 것도 없다 이 소리입니다.

예전에 저격을 받아서 죽을 뻔한 교황이 저격을 한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해줬다는 신문내용을 보고서 어느 신도가 참 훌륭하신 분이라고 그러더군요. 그렇지만 설사 누가 나를 모함을 해서 총으로 쏴서 죽게 하더라도 “그놈이 나를 죽였어.” 이러지도 말고 “그놈을 용서한다.” 이런 말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 쏜 놈이나 쏘는 걸 받은 놈이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 도리를 알아라 이겁니다. 그렇지만 가다가 왜 멈췄나. 그리고 곱게 앉아서 가시게끔 만들어졌느냐. 그거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겁니다. 죽이려고 다가오는데 바로 다가오는 그 모습이 자기 모습이요, 그 마음이 자기 마음이기 때문에 멈춘 겁니다. 자기를 자기가 죽일 수는 없어요. 그 도리를 알라 이겁니다.

그래서 항상 이런 말을 하죠. 물 부처나 불 부처나 흙 부처나 바람 부처가 내 몸에 그대로 지금 살고 있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 몸과 마음내는 거와 마음내기 이전과 같이 삼합이 한데 합쳐서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한마음으로 돌아간다 이겁니다. 다르다 다르지 않다, 이게 이해가 간다 안 간다 이런 사단을 마음으로 벌이지 마라 이겁니다. 벌이지 말고 닥치는 대로, 즉 말하자면 앞에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저 멀리 있는 거 가서 찾으려고 애 쓰지 말고, 부처님이 증득하셔서 그렇게 성스럽고 그렇게 좋다는데 하고선 멀리 그냥 바라보면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찾지 말고 이 못난 자기 부처부터 알아라 이겁니다. 자기부터 알아라 이거예요. 자기부터 알면 그 부처님은 스스로 알게 돼 있습니다.

왜 아까 내가 주는 것도 창피했다 했느냐 하면, 그와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창피했던 겁니다. 내가 떳떳하고 내가 잘났다고 생각을 했다면 떳떳하게 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모습이 내 모습이고 내 모습이 그 모습이기 때문에, 그가 또 나이고 내가 그이기 때문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는 겁니다. 눈물 날 것도 없죠, 뭐 사실은. 그러나 내가 그 순간 찰나에 그가 나이기 때문에 고만 ‘아이휴, 쯧쯧쯧쯧!’ 이렇게 된 것은 각각 본 게 아닙니다. 나로 본 거예요. 주변에 나를 뜯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있는데 그 뜯는 놈도 그렇고, 이렇게 해서 사는 놈도 있고, 이것이 바로 나 못난 탓이 아닌가 이겁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탓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마음을 그렇게 성스럽게 내면 자기가 어떠한 직원들을 부린다, 또는 어떠한 회사든 은행이든 정치든, 사회든 어디든 막론하고 다, 마음이 그렇게 거기 들어오는 사람마다 유순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에 정히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아주 그냥 막된 사람은 거기서 스스로서 떠나게 돼요. 누가 뭐 가라 말아라 할 거 없이 스스로 아예 떠나게 되는 겁니다. 떠나게 되고 추려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그것도 ‘넌 이건 안 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한 인연으로써 그 사람은 다시 돌아와서 또 그런 좋은 인연을 또 맺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빠르다, 좀 연장된다 이것뿐이지 항상 같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자비라고 한 뜻이 뭐냐. 울어도 같이 울고 웃어도 같이 웃는다는 뜻입니다. 무슨 베풀어 주기만 해서 자비가 아닙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는,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러니 죽여도 그건 죽임이 아니라 외려 살린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내게 준 새도 없고 내가 받은 새도 없다 이 소리나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가게 가서 물건을 살 때 그 가게 주인 잘살라고 돈 갖다 준 겁니까?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 오기 위해서 가지고 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돈을 주긴 줬는데 물건은 내가 가져왔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준 새도 없고 그 사람이 받은 새도 없다 이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안 그런가. 그러니 너나 나나 똑같다 이 소립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그거예요. “너하고 나하고 둘이라면 받은 새도 있고 준 새도 있고 내가 가르친 바도 있고 가르치지 않은 바도 있지만, 나는 너를 제도한 바도 없고 내가 제도해 준 바도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 이 소리를 한마디 하면 고 소리로만 알아듣지 말고 좀 넓혀서 모든 것이 종합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행을 한다고 하면서 했다는 생각을 하고 한다면 그건 상대를 둘로 보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으로 행한 보살행은 공덕이 될 수 가 없기 때문에 선행마저도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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