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하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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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하려면…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한생각에 이 우주천하를 집어먹고 토해낼 수 있어야 나뿐만 아니라 내 가정과 사회를 건져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저의 마음과 둘 아니게 통신이 돼야 상대에게도 통신이 오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하고 통신을 하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는 지금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항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기주머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니까 우리가 이 도리를 알고 배우고 증득해서 그 어항 속을 벗어나야만이 자유롭게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금 세상에는 텔레비전도 보고, 듣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아서 모두 너무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이 공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좀 모르는 듯 하고 어리석은 듯 해야, 옛날에는 선지식들께서 화두를 주면 그냥 무지막지하게 밀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화두선이 그렇게 빛을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해도 내가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얼른 쉽게 말해서 물질로 치닫는가 하면 형상으로 치닫고, 형상으로 치닫는가 하면 모든 점에서 정신세계는 무시하고 돌아가는 경향이 많다 이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만물만생은 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을 하고 또 우리 인간은 말과 말로 전달을 하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통신으로 전달을 하면서 살아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는 도리를 여러분이 하나도 몰라요. 그저 조급하게 불끈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해치워 버리고 그냥 말해 버리는 경향이 많이 있거든요. 자기를 자기가 구워 먹고 삶아 먹는 경향이 그런 데서 벌어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도 걸림이 없이, 돌 위에 세워 놔도 살 수 있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긁어서 고(苦)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서 애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서 모든 병고를 만들고 이럽니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대(四大) 육신은 지수화풍으로 한데 합해져서 이 세상에 나왔는데 지수화풍으로 뭉쳐졌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지수화풍을 또 내놓습니다. 먹는 대로 내놓습니다. 그럼 내놓는 것 가지고 어떻게 활용이 되느냐? 바로 증발이 되고 모두 화(化)해서 일체 만물만생에게 도로 전달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전달한 까닭에 다시 또 먹습니다. 그러니 내놓으면 먹게 되고 먹게 되면 내놓고 이러는 작업이 계속되죠. 이 도리를 우리가 상세히 알아야합니다. 과거에 살던 것, 미래로 인해서 오늘 현실에 오는 것, 이 전체를 삼라만상이라고 합니다. 삼세(三世)라고 그러죠. 또 삼심(三心)이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굴러 오면서 교차하면서 살아나온 자기의 인과 업이, 선하게 행을 했다면 선행의 업이 있을 거고 악하게 행을 했다면 악행의 업으로서 진행되는 것이 여러분 몸속에 다 있다는 얘깁니다.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러분한테, 그 구성원들을 교화를 시키는 데 여러분 마음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위로는 일체제불과 둘 아닌 마음을 지니고서 자기 주인공을 진실히 믿고, 아래로는 그 믿는 마음으로써 채찍질을 한다면 아래 내 몸속의 중생들은 스스로 제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도 그런 뜻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죠. 정(定)에 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뜻이 뭐냐? 그냥 정에 들려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고 해서 정에 드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양면을 다 작용하면서, 우리가 지금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정에 드는 방법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작용하는 그 묘법과, 묘용, 광대무변한 법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으로 화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전 세계에서 알면 좋겠는데 가만히 보면 전부 타의에다가 기도하고 상대에다가 빌고 잘되게 해 달라고 하지, 자생을 제도하면서 자기를 자기가 채찍질하면서 자기 완성을 하려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주 적어요. 한다고 해도 그렇게 직접적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마음 자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부처가 되느냐 중생으로 그냥 남느냐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을 깨닫는다고 합시다. 그거를 돈오(頓悟)라고 한다면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자생중생들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점수(漸修)가 또 들어갑니다. 나를 깨우치는 거는 쉬워도 둘 아닌 도리와 둘 아니게 나투는 도리를 포착하려면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자생중생들은 내가 바깥으로 끄달리게 되면 제도할 수 없습니다. 안으로 놓고 들어가야 통신이 돼서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돼서 따라가서 제도가 되는데, 바깥으로 끄달리면 절대로 통신이 되질 않아서 제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안에서 제도가 못 되는데 어찌 내가 제도가 되겠습니까? 상대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대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서로 마음으로 통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통신을 해야 서로 둘 아니게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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